온전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여기뿐이다.
이 좁고 밀폐된 공간이 마치요새처럼 안전하게 느껴진다.

「꿀벌의 실종이 이 모든 것의 발단이네. 공식 기록에 따르면 2047년 7월에 살아 있는꿀벌이 마지막으로 관찰됐다고 해. 그 후로 꿀벌은 자취를 감췄네. 널리 알려진 말처럼4년 동안은 세상이 버텼지. 그런데 4년이 지나자 나비 한 마리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일으킨다는 <나비 효과>와는 급이 다른 <꿀벌 효과가 나타나더군. 한 생물종의 멸종이지금 자네가 본 결과를 초래한 거야.」

결국 식량 부족이 전쟁을 초래한 거군요?

어쨌든 서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세계가 두 진영으로 나뉘었어. 한쪽은 러시아와 중국을 위시해 베네수엘라, 북한까지 가세한 이란  지지 세력이고, 다른 쪽은 미국을 주축으로 유럽과 이스라엘, 한국 등을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지하는 진영이지. 그런데 양쪽 다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단 말이야!

늘어나는 핵무기가 언젠가는 이렇게 한번 쓰일 줄 알았네. 결국 핵전쟁이 일어나고 말더군. 세계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각국의 수도와 대도시가 대부분 파괴되고 나서도 중소 도시와 온갖 벽지에서 전쟁이 계속 이어지고 있네. 세계는 지금 한창 제3차 세계 대전 중일세. 2053년 12월에 말이야! 어디 전쟁뿐인가. 이 겨울에 다들 무더위로 고생하고 있어.  식수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네!

「내가 기억하는 건 제목뿐이야. <꿀벌의 예언>이라는.」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억지로 읽게 하면 시금치처럼 반감부터 생기지. 베샤멜소스와 같이 주면 얼마든지 맛있게  먹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나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그때깨달았지.

이 책은 육신이 파괴된 사자의 영혼이 거치는  여정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 영혼이 물질에서 분리돼 나온다.
두 번째 단계: 사자가 환생에 임할 준비를 마치면 그는 자신의 <본래 영혼의 이름>을 되찾게  된다.
세 번째 단계: 사자는 마침내 존재의 정수를 깨달아 궁극적인 앞에 도달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위인가?」

「오늘날에는 역사를 조금 다르게도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사는 전문가들의 공식 버전들과 인터넷에서 재생산되는 음모론들 사이 에서 찾아지는 절충점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  절충점을 결정하는 것은 소셜 네트워크의 <좋아요> 수일 겁니다.」학생들이 재밌어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알렉상드르가 슬쩍 르네에게 눈짓을 보내 주변 테이블들을 쳐다보게 한다. 음식을 앞에 놓은 학생들이 하나같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일행이 있는데도 다들 휴대폰에 정신이 팔려  있다.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학생들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야기꾼의 역할뿐이야……………」

러시아에서는 혁명으로 2천만 명, 중국에서는  6천만 명이 죽은 걸로 추정돼! 미치광이 독재자들이 공산주의 이상을 실현한답시고 대학살을 자행했는데 그걸 진보라 부르니참………….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또다시 우렁찬 소리가 들려온다.

나 참, 선수를 치는 놈들 때문에 최전선에 다가가 보지도 못하고 뒤에서 조바심치며 기다리는 기사의 심정을 과연 누가 알까?

이게 진정 신께서 바라시는 일일까?

아무래도 때를 잘못 골라 온 것 같아.

신은 그것을 바라시지 않아. 그걸 바라신다면 사랑을 베푸시는 신이 아니지.

세상사라는 게 그래. 누구의 불행이 다른 사람에겐 행복이 되지.

그는 1099년 7월 15일, 예루살렘 함락에 참여한 실존 인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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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이제 눈을 감으세요……. 심호흡을 하시면서…… 몸의 긴장을 푸세요. 술을 드시고 오셨거나 평소 뇌 질환 약이나 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하시는 분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울증이나 화병이 있으신 분도 이번 명상은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다.

「그 사람, 다시 말해 미래의 여러분은 지금의 여러분에게는 없는 지혜를 가지고 있어요. 그걸 느껴 보세요…….」

나이가 더 많은 상대를 향해 저절로 입에서 존댓말이 나온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저한테 어떤 지혜가 필요할까요?」

「운동을 해서 복부 근육을 강화하게.」

지금처럼 계속 미래에 관심을 가지게. 저 나무가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번 생각해 봐. 뿌리는 과거를, 줄기는 현재를, 가지는 미래에 해당한다고 말이야. 과거는 땅에 묻혀 있어 보이지 않지.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보는 대상이 아니라, 머릿속에만 떠올리는 대상인 거야.

과거는 땅속 깊이 뻗어 있는 긴 뿌리들 속에 흩어져 있어. 이런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단단하고 선명하지. 하나의 줄기 속에 들어 있거든. 미래는 나뭇잎이 달린 무수한 가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실현 가능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의미하는 무성한 나뭇잎들은 서로 경쟁하듯 자라나.

그러다가 햇빛과 수액이 부족한 나뭇잎은 말라 죽게 되지. 나뭇가지 전체가 꺾여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이건 어떤 미래의 방향들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지. 하지만 하나뿐인 줄기에서 뻗어 나와 살아남은 다른 나뭇가지들은 눈에 보이는 단단하고 통합된 현재의 연장선에서 계속 자라게 되네. 나무는 계속 자라나. 하지만 이 미래의 나뭇가지들은 굵고 단단해질 수도, 가늘어져 꺾일 수도 있네.

정신적 경험을 공유하는 데는 웃음만 한 게 없어. 앞으로 공연할 때 이 점을 명심해야겠어. 관객들이 진지하기보다 편안해지는 게 더 중요해. 스스럼없이 농담을 섞어 가며 자기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겠어.

〈인구 폭발 시대. 과연 어디가 끝인가?〉 그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어요. 〈이미 150억을 돌파한 세계 인구가 여전히 증가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구가 과연 이 많은 수를 감당해 낼 수 있을까?〉

검사의 지적이 전적으로 틀린 건 아니야. 최면사들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건 큰 문제야. 그들은 최면이 누구에게나 1백 퍼센트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싶어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지 않아. 성공 확률은 50퍼센트야. 그 이상은 절대 불가능해. 하지만 최면사들은 이런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지.

자신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설명〉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화를 내는 것일 뿐이야. 입으로 한참 떠들고 나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애초의 생각에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은 채 내가 옳다는 걸 이제 상대가 깨달았으려니 하면서 얘기를 끝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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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믿기 어렵고 기막힌 일의 사정을 성에 알리는 경위서를 쓰실 때에."

――이 문서 한 마디 한 구절에, 나카노무라 마을과 하뉴다무라 마을 사람들의 목숨이 걸려 있네.

내 말로 영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그 생각을 하면 붓끝이 떨려 글씨를 쓸 수가 없다.

"문서의 맺음말,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라는 문장 위에 땀이 떨어져 버려서 두 번이나 새로 썼다고, 훗날 면목없다는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아, 그랬구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사의 모습이 아닐지.

도미지로는 혼자 흑백의 방에 남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배가 고프다. 오치카도 배 속 아기도 배가 고프겠지. 좋아, 이걸 그리고 나면 쌀과자를 들고 만나러 갈까.

ご遠慮ください。

하뉴다무라 마을은, 에자키 번은 어떻게 되었을까. 지옥 같은 광경 그대로 이 세상에 존재할까. 알 수 없다. 알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결점이 있는 인물이지만 저는 가도야 몬자에몬 씨를 싫어할 수가 없네요" 하고 도미지로는 말했다. "정말로 큰 마을로 나가 돈놀이로 집안을 세웠나요?"

"돌이켜보면 그쪽에서는 ‘인간이 아닌 자’의 재앙이 없었다고 해도 연공 징수에 쫓기고 있었지요. 그것만으로도 이쪽으로 도산해 오기를 잘했다며."

괴물과 나쁜 정치, 사람의 목숨을 뿌리째 베어 내는 것으로는 똑같은 해악이다.

"다시 말해, 그분들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결단에서 옳은 쪽을 고르신 겁니다."

에자키 번 영지민으로서의 인생은 끝났다. 모두 한 번 죽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구자키 번 우도노쇼에서 다시 태어났다.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

"연못 저편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다는 당신의 생각은 옳았어요. 그 무사의 도마루 갑옷에 새겨져 있는 동그라미에 삼나무 잎은, 기노 번의 문장입니다."

"저는 마을로 돌아가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동생을 어깨에 좀 실어 주십시오."

"‘인간이 아닌 자’의 지옥은, 이제 이 영지 내만이 아닌 거지요. 마을 사람들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쓰네키치는 떠나갔다. 비틀거리면서 가끔 멈추어 서서 동생의 몸을 다시 짊어지며 흙먼지가 춤추는 들길 저편으로, 하뉴다무라 마을로.

도마루 갑옷胴丸鎧
보병용 갑옷의 일종으로, 통처럼 몸을 감싸고 등에서 끌어당겨 묶었다. 무게가 가벼워 활동하기 편한 것이 장점

노바카마
옷자락에 넓게 테두리를 댄 무사들의 여행용 바지

"맨 뒤는 저예요. 그 정도는 제 체면을 세워 주세요, 할아버지."

"우리 집의 당주는 아버지예요. 그렇게 벌써 저한테 맡기시면 곤란해요."

"아버지, 뭔가 생각이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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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 2023-08-16 23:52   좋아요 1 | URL
아, 요즘 저도 미미님 책 다시 읽어보고있어요. 저 책은 안읽어 본책인데 읽어봐야겠군요!

대장정 2023-08-17 06:16   좋아요 1 | URL
이번달 새로나온 책인데 무려 576p. 하지만 술술 읽혀요. 좀비물입니다.

jenny 2023-08-17 06:58   좋아요 1 | URL
어쩐지 미미님 좀비물도 다정함이 있을것같아요.

대장정 2023-08-17 07:04   좋아요 1 | URL
그러네요. 다정함. 이웃을 위한 배려랄까요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시간은 4년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099년 7월 15일.

「공격 준비 태세를 갖추어라. 화염과 피와 영광의 순간이 곧 우리에게 펼쳐질 것이다!」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두렵고 떨린다.

〈내일 거대한 운명에 맞설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내가 너를 인도해 주마.〉

난데없이 불청객 하나가 등장한다. 꿀벌. 벌이 투구 앞을 오가며 왱왱거리더니 가로로 딱 하나 뚫려 있는 눈 구멍 위에 내려와 앉는다.

내가 꽃인 줄 알고 꿀을 빨러 왔어.

「진격하라!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하나밖에 없는 침을 잃은 꿀벌은 앞일을 궁금해한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므네모스: 존재의 세 가지 이유

우리가 태어나는 이유는 세 가지 때문이다.

1. 배우기 위해.

2. 경험하기 위해.

3.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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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앞바다
이순신이 학익진 전법으로 한산대첩을 이루어낸 곳.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고 일본군의 수륙 병진 전략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 P146

이순신과 무적 수군 - P147

칠백의총
조헌과 영규 부대는 금산성을 공격하여 치열하게 싸우다 전원이 순절했다. 이에 조헌의 제자들이 조헌 이하 700여 명의 유골을 모아 합동 무덤을 만든 것이 칠백의총이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소재. - P172

진주성
진주 목사 김시민을 중심으로 병사들과 백성이혼연일체가 되어 왜군을 대파한 곳이다. 1593년 6월 왜군이다시 쳐들어오자 군관민이 끝까지 항쟁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경남 진주시 남성동 · 본성동 소재. - P198

진도 명량대첩지
이순신이 13척의 전함을 이끌고 수십 배가 되는 적을 상대로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끌어낸 곳이다. 이 뒤로 일본군은 조선 수군과는 싸우려  하지 않았다. 전라남도 진도군 소재. - P245

일찍 집을 나서 떠나야겠기에 어머니의 빈소  앞에서 울며하직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에 나 같은 이 또 어디있으랴. 어서 죽는  것만 못하다. - P270

저 임진년으로부터 오륙 년 동안 적이 감히
충청, 전라도를 바로 찌르지 못한 것은 우리 수군이 그 길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열두 척이 있나이다.
나아가 죽기로 싸운다면 해볼 만하옵니다.
이제 만일 수군을 전폐한다면 이는 적이 만 번  다행으로 여기는 일일 뿐더러 충청도를 거쳐  한강까지 갈 터인데 신은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옵니다.
전선의 수는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 P272

병법에 이르기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 것이나 살려고 한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다.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막아 지켜도 능히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여러 장수들은 나의 명령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도록 해라.
자! 돛을 올려라! - P274

어쨌든 뻔뻔한 왕과 조정 대신들로 인해 구국영웅들은 죽은 뒤에도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의 고귀한  정신과 활약상은 점점 더 빛을 발해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슴까지 뜨겁게 달군다. - P299

10권은 분량도 많았지만 《실록》의 기록이 너무도 부실하여 애를 먹었다. 사건들은 모호하고 인물들도 뚜렷이 다가오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은 역시 이이와 이순신이었다. 이이에 대해서 필자가 그동안 가졌던 인상은 ‘똑똑하고 참한 선비‘ 였다. 그런데 《실록》을 보면서 ‘시대정신을 바로 읽은 열정적인 개혁정치가‘ 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조광조와 이황을 한몸에 담은 듯한 인물. 누구보다도 시대의 병을 바로 진단했고 가장 뛰어난 처방을 내렸지만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비록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서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표지 모델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인데 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순전히 이순신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실로 하늘이 내린 인물. 그가 아니었다면 조선은 그때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졌거나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리라. 원칙적이고 기본을 중시하는 태도, 피아의 역량과 지형지물을 정확히 판단한 데 따른 창의적인 전략전술, 필사즉생의 정신, 선비보다도 더 선비다운 풍모와 자기 절제, 나라와 백성, 대의를 철저히 앞세우는 모습에서 ‘성웅‘ 이란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은 인물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인물을 조상으로 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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