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도 앞바다 이순신이 학익진 전법으로 한산대첩을 이루어낸 곳.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고 일본군의 수륙 병진 전략은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 - P146
칠백의총 조헌과 영규 부대는 금산성을 공격하여 치열하게 싸우다 전원이 순절했다. 이에 조헌의 제자들이 조헌 이하 700여 명의 유골을 모아 합동 무덤을 만든 것이 칠백의총이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 소재. - P172
진주성 진주 목사 김시민을 중심으로 병사들과 백성이혼연일체가 되어 왜군을 대파한 곳이다. 1593년 6월 왜군이다시 쳐들어오자 군관민이 끝까지 항쟁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경남 진주시 남성동 · 본성동 소재. - P198
진도 명량대첩지 이순신이 13척의 전함을 이끌고 수십 배가 되는 적을 상대로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끌어낸 곳이다. 이 뒤로 일본군은 조선 수군과는 싸우려 하지 않았다. 전라남도 진도군 소재. - P245
일찍 집을 나서 떠나야겠기에 어머니의 빈소 앞에서 울며하직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에 나 같은 이 또 어디있으랴. 어서 죽는 것만 못하다. - P270
저 임진년으로부터 오륙 년 동안 적이 감히 충청, 전라도를 바로 찌르지 못한 것은 우리 수군이 그 길목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열두 척이 있나이다. 나아가 죽기로 싸운다면 해볼 만하옵니다. 이제 만일 수군을 전폐한다면 이는 적이 만 번 다행으로 여기는 일일 뿐더러 충청도를 거쳐 한강까지 갈 터인데 신은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옵니다. 전선의 수는 비록 적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 P272
병법에 이르기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살 것이나 살려고 한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했다. 또한 한 사람이 길목을 막아 지켜도 능히 천 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 했는데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여러 장수들은 나의 명령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도록 해라. 자! 돛을 올려라! - P274
어쨌든 뻔뻔한 왕과 조정 대신들로 인해 구국영웅들은 죽은 뒤에도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의 고귀한 정신과 활약상은 점점 더 빛을 발해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슴까지 뜨겁게 달군다. - P299
10권은 분량도 많았지만 《실록》의 기록이 너무도 부실하여 애를 먹었다. 사건들은 모호하고 인물들도 뚜렷이 다가오지를 않았다. 그럼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은 역시 이이와 이순신이었다. 이이에 대해서 필자가 그동안 가졌던 인상은 ‘똑똑하고 참한 선비‘ 였다. 그런데 《실록》을 보면서 ‘시대정신을 바로 읽은 열정적인 개혁정치가‘ 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조광조와 이황을 한몸에 담은 듯한 인물. 누구보다도 시대의 병을 바로 진단했고 가장 뛰어난 처방을 내렸지만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비록 자신의 철학을 현실에서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표지 모델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인데 려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순전히 이순신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실로 하늘이 내린 인물. 그가 아니었다면 조선은 그때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졌거나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리라. 원칙적이고 기본을 중시하는 태도, 피아의 역량과 지형지물을 정확히 판단한 데 따른 창의적인 전략전술, 필사즉생의 정신, 선비보다도 더 선비다운 풍모와 자기 절제, 나라와 백성, 대의를 철저히 앞세우는 모습에서 ‘성웅‘ 이란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은 인물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인물을 조상으로 둔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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