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 지치지 않는 페미의 대답
오혜민 지음 / 날(도서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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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라고 이야기했을 때 흔히 받게 되는 열여덟 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들을 모은 책이다. 오죽 이런 질문들을 많이 들었으면 제목부터 '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일까. 이 책에 실린 질문 중 '성차별은 다 과거의 일이지 않나요?'는 나도 실제로 회사의 남성 동료에게서 받은 질문이고, 목차의 다른 질문들도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자주 보아온 것들이다. 그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고 싶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6년 동안 페미니즘을 가르쳐온 사람인데, 페미니즘 관련 수업이 필수 과목이었기에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학생들도 많이 만났다. 그렇다 보니 책 전반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 폭력적인 시선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독자에게 '그동안 애써온 당신은 잠깐 쉬어도 괜찮다'며 '이제 제가 조금 답해 보겠다'고 말하는 서문에서부터, 모든 편견과 계속해서 싸우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페미니즘이라면 무조건 적대감과 거부감을 보이는 학생들이나 학교 밖의 사람들도 증오하지 않고, 그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자신과 반대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적대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모습이다.

페미니즘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 자체에는 단호하게 맞서고, 질문 속에 숨은 뒤틀린 의도는 날카롭게 간파한다.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 군대 얘기는 왜 안 하냐'는 질문 뒤에는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하고 군대 얘기를 꺼내는 것일 뿐, 여성 징병과 여군, 군대 내 위계 폭력과 그에 대한 방지법에 관해서는 진지하게 이야기할 열의가 없어 보인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여성과 함께 논의하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가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생각보다 너무 간략하다는 것이다. 한 질문에 대한 답에 주어진 분량은 8페이지 정도인 데다 책 크기는 손바닥 두 개를 합친 것만 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성평등과 군대' 관련 질문에는 그 질문에 깔려 있는 의도를 이야기하면서, '정말 군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다'며 '당신이 군대에 대해 얘기할 준비가 되었다면 그때 말해봅시다'라며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런 저열한 의도가 깔려 있더라도, 여성과 군대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청소년들을 위한 인권 교육 도서 『잠깐! 이게 다 인권 문제라고요?』에서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남성만 징집하는 것이 특정 연령대의 남성만으로도 필요한 군인 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국방의 의무에는 병역뿐만 아니라 군 작전에 협조하거나 전시 근로 동원에 응하는 의무도 있기에, 군대를 가지 않는다고 해서 국방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징병제가 있는 국가들 중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국가는 극히 일부이며, 남성 중심의 현 군 조직에서 병역 의무를 부과했을 때 위계를 이용한 성범죄가 일어날 수 있기에, 여성에게도 군 복무를 부과하기 이전에는 여성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네가 지금 그 질문을 하는 의도를 안다. 네가 제대로 대화할 마음이 나면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고 말하는 대신, 이렇게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래야 서문 마지막에서 저자가 바란 것처럼 '그동안 애써온 독자'가 마음 놓고 잠깐이라도 쉴 수 있지 않겠는가('페미는 ㅇㅇ병'이라는 챕터에서는 두 페이지가 텅 비어 있고 마지막이자 세 번째 페이지에 '모든 질문에 대답할 이유는 없습니다'라는 한 문장만 적혀 있어 당황스러웠다).

질문이 좋아야 답도 좋겠지만 우문현답도 있지 않나. 질문에 담긴 의도를 간파하는 날카로운 감각, 질문의 허점을 찌르는 간결하고 명쾌한 논리,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사람들과 아직 그것들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 모두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예리하고 구체적인 답이 필요하다. 우문현답이 되기에, 저런 질문을 2만 번도 넘게 들어야 하는 독자들의 무기가 되어주기에 이 책의 답은 얕고 뭉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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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제게 그 질문을 한 2만 번째 사람입니다 - 지치지 않는 페미의 대답
오혜민 지음 / 날(도서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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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수많은 편견과 맞서야 하는 사람에게도, 편견에 사로잡혀 올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애정을 보내면서도 혐오와 편견에는 단호하게 맞서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좋았겠다 싶기도 하지만 날카로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을 모두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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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월; 초선전
박서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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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삼국지』를 좋아했던 터라 『삼국지』의 2차 창작들에도 눈길이 갔다. 그러다 발견한 게 중국 작가가 제갈량 휘하의 촉나라 첩보 조직을 상상해서 쓴 『풍기농서』와 이 소설 『폐월 초선전』이었다. '폐월(閉月)'은 달조차 그 아름다움에 부끄러워져 얼굴을 가려버렸다는 뜻으로, 『삼국지』 최고의 미녀 초선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국 작가 박서련은 초선을 한 인간으로서 그려내고 싶었다면서 이 소설을 썼다. 초선의 1인칭 주인공 시점, 그녀 자신의 목소리로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이다. 설정만 들어도 흥미롭지만, 과연 이 소설은 초선을 한 인간으로서 그려내겠다는 원래의 목적을 이루었을까.

도입부부터 후원 연못을 둘러싼 사건까지는 『삼국지』에 없는 부분인데, 딱 그 부분까지는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다. 작가가 초선이라는 인물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리는 초선은 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거짓말로 자기 신분을 속여 상대에게 호감을 살 정도로 영악한 성품을 타고났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이 굶어 죽지 않게 구해주고 돌봐줬던 거지 동료도,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가차없이 버린다. 작가는 밀도 있게 당시의 생활상과 생활감을 그려내기보다는 필요한 장면만 슥슥 스케치하듯 묘사하지만, 초선이 살아갔던 비정한 시대와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비정해져야 했던 초선이라는 인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후반부에서는 『삼국지』의 서사 안에서 초선의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2차 창작 작가에게 원작은 새로운 이야기를 덧붙여 갈 탄탄한 뼈대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자신이 새롭게 풀어가고 싶은 내용을 다 풀지 못하게 하는 틀이 될 수도 있다. 『폐월 초선전』의 경우에는 원작이 뼈대가 아니라 틀이 되었다. 초선은 양부 왕윤의 뜻에 따라 동탁과 여포 사이를 오가며 이간질해, 동탁이 파멸하게 만들었다. 이 서사의 틀 안에서 인간 초선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소설의 작가는 어떻게 했을까? 초선을 왕윤에 대한 맹목적이고 절대적인 애정으로 움직이는 인물로 설정하고, 초선이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던 시기는 초선이 동탁, 여포와 어떻게 성관계를 가졌고 거기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를 중점으로 묘사한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초선이 자신보다 서른 살은 많을 왕윤을 아버지가 아니라 연정의 상대로 애정을 쏟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동탁이나 여포나 잘못 건드리면 자신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와 나라까지 파멸시킬 인물들인데, 그들 사이를 오가던 위태로운 시기의 초선에 대해 할 이야기가 오직 성밖에 없는가? 본문 뒤의 해설에서 평론가는 초선이 동탁과 여포와의 성관계에서 쾌락을 느낀 것을 주체성의 회복으로 보던데, 왕윤의 목적을 위해 이용당하고 동탁과 여포에게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조차 가질 수 없는데 그 상황에서 주체성을 회복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작가의 이 두 가지 선택은 초선을 한 인간으로 되살려 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본다.

작가의 마지막 수는 초선에게 주는 결말이다. 전해지는 초선의 결말은 여러 가지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자결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여포의 아내가 되었다가 여포가 훗날 조조의 손에 죽자 여포를 따라 자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작가가 초선에게 준 결말은, 왕윤의 동반 자결 제의를 거절하고 혼자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는 것이다. 초선은 자신에게 같이 죽자고 하는 왕윤을 보고 나서야 그에게 자신은 언제까지나 이용할 도구일 뿐이고, 그와 함께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했던 왕윤을 버리고서라도 살아남았다. 소설 전반부에서 묘사된 것처럼 영악하고 비정한 초선이라는 캐릭터가 할 수 있는 선택이기는 하고, 동탁과 여포와의 성관계에서 쾌락을 느낀 것은 그 상황에 대한 초선 자신의 방어 기제일 수도 있다. 그게 작가가 『삼국지』라는 틀 안에서 초선에게 줄 수 있던 최대한의 주체성이었을 것이다. 초선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을 때부터 가질 수밖에 없던 한계였지만, 그 한계를 돌파할 다른 방법은 없었을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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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월; 초선전
박서련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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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초선을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고 했던 여인으로 재해석하려는데 왕윤, 동탁, 여포에게 이용당하고 착취당한 원작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으니 그 둘이 서로 어긋나면서 이 소설의 개연성과 완성도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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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사원 풍요의 바다 3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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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본 작품, 『봄눈』, 『달리는 말』의 스포일러 포함


한국어로 읽을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했던 『새벽의 사원』이 두 달 전 드디어 나왔다. 이 책이 속한 <풍요의 바다> 시리즈는 다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제 세 권을 읽었으니 4분의 3까지는 온 셈이다. 민음사가 언제 마지막 권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4분의 1만 남았으니 급할 것은 없다.

『새벽의 사원』의 도입부를 읽을 때는 글만으로도 이 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도입부의 방콕 묘사는 읽는 것만으로 눈부신 햇살과 그 속에서 오색으로 빛나는 사원의 탑들이 눈앞에 있는 듯했고, 온몸을 내리누르는 열기가 느껴졌다. 출장지인 태국에서 기요아키와 이사오의 환생이라고 주장하는 태국 공주 잉 찬을 만난 후, 혼다는 휴가 겸 인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인도 여행을 서사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자세하게 그려서 뜬금없다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내게는 도입부의 방콕 묘사와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었다. 콜카타 칼리 가트 사원의 피 냄새를 풍기는 성스러움,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의 혼돈, 그와 대비되는 아잔타 석굴의 더없이 맑은 고요를 나 또한 경험하는 것 같았다.

환생에 대한 고찰도 흥미로웠다. 친구가 두 번이나 환생했다고 믿는 혼다가 환생의 원리와 법칙을 알고 싶어 불교 교리를 더 자세하게 공부하게 되는데, 혼다가 찾아본 불교 교리 부분은 소설이라기보다 비문학에 가깝다. 불교 교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기는 했지만, 세상의 존재들은 자아나 주체가 아니라 '아뢰야식'이라는 의식을 통해서만 삶을 살아가고 세상을 체험하고 환생을 거듭한다는 대승불교의 유식론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신과 나라는 주체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기독교 교리에 익숙한 나로서는 주체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낯설고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톨스토이의 소설들을 읽을 때처럼 새로운 사상을 소설로 접하는 것도 나름대로 유익한 경험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전편인 『달리는 말』과 같은 지점과 다른 지점에서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같은 지점은 미시마와 혼다가 매혹되는 순수한 이상, 순수한 일본에는 그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 약자들에 대한 연민도 반성도 한 점 없다는 것. 혼다는 진주만 공습이 자기처럼 젊음을 지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눈부신 행위'라고 생각하고, 전쟁이 끝난 직후 군인병원 뜰에서 어슬렁거리는 미군 부상병들을 보면서, 게이샤들은 그들이 입은 부상이 죗값을 치른 것이라고 수군거린다. 모든 일본 문학 작품이 일본의 과오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혼다나 그의 머릿속 생각을 쓰는 미시마나 순수한 일본성이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을 인식하고 분명히 그것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에 매혹되고 미시마는 죽음의 길을 선택한다. 그토록 많은 사색과 상념 속에 일본의 전쟁으로 피와 땀을 흘린 사람들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고, 인물들의 대화에서 '공산당과 함께 일본을 뒤엎으려는 위험한 자들'로 조선인이 두세 번 언급된다. 순수한 이상, 순수한 일본성이라는 허상을 향해 달려가면서 자신이 무엇을 짓밟는지는 의식도 못 하는 것이다.

다른 지점은 혼다의 관음증이다. 앞의 두 책에서 건실하고 성실하고 이성적인 인간으로 묘사되던 혼다는 『새벽의 사원』에서 추악한 이면을 드러낸다. 사실 그는 공원에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을 한밤중에 몰래 엿보는 습관이 있었고, 경찰 단속이 심해진 뒤에야 공원에서의 관음 행위를 그만두었다. 그러나 자기 별장의 손님 방에 구멍을 뚫어놓고 손님들을 훔쳐보는 짓은 은밀히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열아홉 살로 성장한 잉 찬을 만나면서 그의 관음증적 욕망은 폭발한다. 혼다에게 잉 찬은 영원히 닿을 수 없어서 영원히 갈망하는 대상, 그래서 자신이 진정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매개체다. 그러면서 자신의 온갖 환상을 그녀에게 투영한다. 후반부의 대부분은 혼다의 관음증적 욕망을 묘사하는 데 할애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욕망이 어리석고 추악하다는 것을 작가는 직접 언급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보여주면서 찬물을 끼얹는다. 사실 작품 속에서 묘사된 상황만 보더라도 잉 찬은 혼다에게 관심이 없고, 혼다가 접근해 오는 것을 혐오하는 것이 분명히 보인다. 게이코는 혼다의 잉 찬을 향한 욕망을 채워주는 데 협조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이제 그만두는 것이 좋다고 혼다에게 분명히 이야기한다. 그런데도 혼다는 욕망에 눈이 멀어 자기 발에 키스를 하면 잉 찬을 만나도록 도와주겠다는 게이코의 요구까지 들어준다. 그것이 게이코의 조롱이라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 채. 그는 게이코가 연 파티에서 잉 찬의 젊음과 대비되는 노부인들의 노쇠한 모습에 혐오감을 느끼지만, 그 뒤에서 작가는 아내 리에의 시선으로 젊은이처럼 입은 그가 얼마나 볼품없고 우스꽝스러운지 그려낸다. 파시즘에서는 그저 도취되기만 했던 작가가 그래도 관음증에 있어서는 제동 장치를 걸어놓은 셈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감정과 생각을 뚜렷이 드러내고 그에 따라 살아가고 죽었던 기요아키와 이사오와 달리, 잉 찬은 그저 욕망을 일으키는 대상일 뿐이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잉 찬과 게이코의 동성애는 잉 찬을 향한 혼다의 환상과 욕망을 산산조각 내지만, 그들의 동성애 성관계 묘사를 비롯한 에로티시즘은 잉 찬이 그저 욕망되는 몸이라는 것을 더 분명히 보여준다. 잉 찬의 관능적인 육체는 집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하지만 그녀의 내면, 그녀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전혀 묘사되지 않는다(그래서 잉 찬의 시점에서 『새벽의 사원』을 다시 쓰는 것도 해볼 만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온갖 심오한 이론을 갖다 붙여도, 온갖 미사여구와 아름다운 환상을 씌워놔도 혼다가 미성년자에게 관음증적 욕망을 품는 인간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 한 권 『천인오쇠』가 남았다. 그저 욕망의 대상이었던 잉 찬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까. 이 책에서는 어떤 이야기와 어떤 이론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책을 통해 미시마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 마지막 책을 읽어보면 시리즈 전체에서 미시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P. S. 번역본의 문장은 『달리는 말』보다 훨씬 정돈된 것 같다. 관계사로 죽죽 이어지는 영어 문장 같은 문장들은 보이지만(『봄눈』의 번역자들이 원문이 영어 번역체가 심한 편이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문장 성분들이 뒤엉킨 비문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번역자가 이 시리즈에 적응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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