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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어도 힙합
정재환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3년 3월
평점 :
연쇄 살인마 이웃을 잡으려는 다단계 판매원, 촬영 소품이 바뀌는 바람에 조연이 죽자 범인이 주연 배우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단역 배우, 식인귀가 인간 세상을 멸망시키고 있는 와중에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고백하려는 양궁 선수. 뒤표지에 실린 각 단편의 한 줄 요약만 봐도 흥미롭다. 뒤표지에는 '웃음과 서스펜스로 중무장한 요지경의 상상력'이라는 수식어도 적혀 있다. 정말 이 문구처럼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웃음과 서스펜스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을까.
일단 웃긴 것은 사실이다. 화자의 서술이나 등장인물의 대사, 상황이 만들어내는 유머는 타율이 꽤 좋고 불편한 데도 없다. 이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은 첫 번째 단편 「네 이웃을 사랑하라」다. 이 단편에서 다단계 우수 판매원인 1인칭 주인공은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독자에게 설명하면서도 불쑥불쑥 자기가 파는 상품의 우수성을 설명한다. 미국 식품의약국에 세계 바리스타 대회 우승자, 인도의 현자까지 들먹이지만 다 그럴듯한 얘기를 갖다 붙인 거라는 건 뻔하다. 작품 밖 현실 속의 다단계 상품들이 그렇듯이. 현실을 풍자하지만 누구도 불쾌하지 않게 선을 지키는 감각 덕분에 끝까지 유쾌하게 각 단편들을 읽을 수 있다.
서스펜스의 경우는 어떨까. 일단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끌어 가는 것은 사실이다. 트릭 자체가 정교하거나 기발하지는 않지만 독자들이 끝까지 궁금해하면서 이야기를 따라오게 한다. 문제는 뒷심이 약한 것이다. 결말은 예측 가능하거나 다소 힘이 빠진다. 더 나은 결말을 맞을 수 있었는데 욕심 때문에 최악의 결말을 맞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교훈과 서스펜스는 별개니까. 짜릿한 서스펜스와 예상 못 한 결말을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고 가볍게 읽는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