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 잊혀진 전쟁, 반쪽의 기억
박태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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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라고 하면 보통 전황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그 전쟁을 분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사 책에는 전쟁 당사자 양쪽이 어디에 진영을 두었고 어느 방향으로 진격하고 후퇴했으며, 어디에서 승리했고 어디에서 패배했는지 표시한 지도들이 가득 실려 있다. 양쪽이 어떤 무기를 사용했으며 그 무기가 얼마나 강했는지, 어떤 전략이, 어떤 전투가 승패를 판가름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 박태균 교수의 저서 베트남 전쟁에서 주목하는 것은 베트남 전쟁의 전황이 아니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게 만들고 지속되게 한 국내외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상황과 베트남 전쟁이 이후의 역사에 남긴 의미다.

 

저자는 왜 베트남 전쟁의 진행 과정보다는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역사의 큰 흐름과 베트남 전쟁이 역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을까? 베트남 전쟁에 관한 역사적 기억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특정한 방향으로 남아 있어, 그 외의 중요한 기억들이 잊히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베트남 전쟁에 관한 역사적 기억은 베트남 전쟁 특수가 한국의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는 영광스러운 기억이다.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실린 베트남 전쟁 관련 서술에서 전쟁 특수가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베트남 전쟁을 전쟁 특수로 기억하는 것과 달리,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실패한 전쟁으로 기억한다. 잘못된 결정으로 시작해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전술로 싸워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 이 두 역사적 기억의 간극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저자가 찾는 것은 우리가 놓친 중요한 기억들이다.

 

저자는 우선 베트남 전쟁이 시작될 당시의 미국과 한국의 국내외 정황을 살펴보면서, 미국이 왜 베트남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한국이 왜 베트남 전쟁에 파병하기로 결정했는지 각자의 동기를 분석한다. 그런 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의 지지부진한 공격과 미군과 한국군 내의 불평등, 참혹한 민간인 학살, 전쟁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보상 등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를 살펴본 뒤, 베트남 전쟁이 이후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우리가 베트남 전쟁에서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참전자의 증언부터 관련 연구서, 논문부터 미국과 한국의 정부 문서에 이르기까지 10여 년 동안 모은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했고, 미국과 한국,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공과를 밝히고 있기에 이 책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베트남 전쟁 자체를 넘어서서 베트남 전쟁이 있게 한 역사적 흐름과 베트남 전쟁이 역사에 남긴 영향을 살펴보기에, 독자들은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와 그 전후 시기의 한국사와 세계사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생각하는 베트남 전쟁은 시작부터 잘못된 전쟁이다.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부터 사실은 전쟁의 명분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사건이었는데 더 큰 군사적 충돌로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는 공산주의로부터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고 파병했다고 하지만 베트남 전쟁으로 과연 그 목적을 이루었을까? 조목조목 짚어본 뒤 저자가 내린 결론은 아니다이다. 미국은 베트남 내의 정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전쟁을 시작했고 전쟁 중에도 잘못된 전술을 펼쳤기에 그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제대로 된 전공은 세우지도 못하고 철수했고, 한국은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어내려 철수를 미루다가 애꿎은 군인들만 희생시켰다. 양국에서 부유층, 고위층은 베트남전에 직접 참전하길 회피해 사회적으로 그보다 낮은 계층에 있던 사람들이 베트남으로 향하게 되었다. 고엽제 후유증과 PTSD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북베트남군의 포로가 되었는데도 한국군 중에는 포로가 한 명도 없고 실종자는 모두 탈영자들이라며 한국 정부가 외면했기에 고국으로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까지 있다. 사회 한편에는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그런데도 전쟁 당시부터 반전 여론이 거셌으며 베트남 전쟁을 하기로 한 미국 정부의 결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대통령들이 인정한 미국과 달리, 아직 한국에서는 이러한 전쟁의 그림자들은 가려져 있다.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들의 수고와 희생, 그로 인해 얻은 국익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조국과 가족들에게 헌신했다. 그들만을 가해자라고 나무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을 전쟁의 가해자로 만든 것은 국가라고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한국 정부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잃게 했기에, 그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참전자들에 대한 보상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고. 미국 대통령들은 미국 정부의 결정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정부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그곳에 갔던 모든 사람들은 애국자이며, 그들이 나라를 위해 한 노력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고, 이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을 위해 국가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공산주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주국방을 추구해야 한다고만 특별 담화에서 입장을 밝히고, 참전 군인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에 힘쓰지 않았다. 저자가 바라는 것은 베트남 전쟁의 그림자를 직시해 전쟁 특수에만 주목하는 반쪽짜리 기억을 온전한 역사적 기억으로 바꾸고,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이 저지른 과오를 철저히 반성하며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저자는 국민이 지키고 싶은 정부가 되는 것이 곧 안보라고 말한다. 또다시 냉전 논리와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지지 않고, 국민을 지켜주고 국민에게 신뢰를 주어 국민 스스로가 지키고 싶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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