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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 조지 손더스의 쓰기를 위한 읽기 수업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2월
평점 :
이 책은 미국의 소설가 조지 손더스가 대학에서 맡고 있는 소설 창작 수업을 책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될 생각이 없는 나는 왜 이 책을 읽었을까. 내가 인생작이라고 할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졸작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이 많아, 작품을 보는 내 안목에 회의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작품 자체나 캐릭터(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배우)의 매력에 눈이 먼 것일까. 그래서 제대로 작품을 읽는 법을 배워보고 싶었다.
이 책이 어쩌서 독자를 위한 책이기도 한지 저자는 나보다 좀 더 심오한 이유를 말한다. 독자들은 읽기가 자신을 더 포용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고, 삶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고. 읽는 방식을 공부하면 다른 사람(즉 작가)의 정신을 읽게 되고, 더 나아가 현실을 더 예리하게 읽어낼 수 있게 된다고. 읽는 법을 훈련하면 타인과 세상을 읽는 우리의 능력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흠, 솔깃한데. 그러니 작가가 될 마음이 없더라도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충분히 확보했다.
독자는 저자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대문호들의 단편 일곱 편을 읽게 된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가 놓치기 쉬운 것들을 짚어주는 저자를 보면, 문학 작품을 낱낱이 분석해 주는 수능 국어 수업이 생각난다. 물론 수능 국어 수업과 달리 저자의 수업에서는 하나의 정답만 강요하지 않는다. 저자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그것은 당신의 예술적 의지가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니까. 그리고 작품의 어떤 것이 복선이고 어떤 것이 상징이며 주제는 무엇인지 해부하고 분석하는 수능 국어 수업과 달리, 저자는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고, 뻔한 이야기가 될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서 이 이야기를 위대하게 만들었는지 차근차근 보여준다. 저자의 해설을 듣지 않았다면 '이 단편소설에는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게 없잖아', '이 작가는 왜 갑자기 사건을 전개하다 말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전부를 장황하게 소개하지', '이 단편소설은 왜 이렇게 황당하게 전개된담' 이 정도 생각에 그쳤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영어로 번역된 러시아어 단편을 한국어로 또 한 번 옮긴 것이니 원작과 좀 더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러시아인 동료를 통해 자신이 원문의 흐릿한 모방에 불과한 것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데, 한국어로 한 번 더 걸러서 읽게 되는 한국 독자들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번역가가 유려하게 번역했고, 저자가 특정 부분의 각 영어 번역본별 번역을 비교해 주어 우리는 번역들 사이에서 원본의 뉘앙스와 의미를 조금이나마 손에 잡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어로 한 번 더 걸러졌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작가와 그가 그려낸 인물들을 만날 수 있고, 저자의 수업을 통해 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을 더 가까이 느낄 수도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쓴 체호프,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고골 네 작가는 각각의 스타일과 개성을 지니고 있고, 이 책에 실린 단편들만으로도 그것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대문호라 불리는 그들의 작품에도 결점이 있고, 우리가 그 결점 있는 부분을 고쳐 써볼 수도 있다는 데서 우리는 그들과 우리의 격차가 생각보다는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들은 백수십 년 전 러시아 사람들이지만,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우리 자신도 갖고 있는 측면, 우리 자신도 느끼는 감정, 경험, 문제, 모순까지 보여주며 작품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이렇게 우리는 읽기를 통해 타자와 연결된다. 백수십 년의 세월과 수천, 수만 킬로미터의 공간을 뛰어넘어서.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서 타자와 연결됐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 실린 단편의 작가들이 활약했던 문화의 황금기 바로 뒤에 스탈린의 폭정이 이어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리고 소설이 무언가에 효용이 있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그럼에도 저자는 읽고 쓰기를 여전히 사랑한다. 소설은 우리의 마음을 아주 조금씩 바꾸고, 그 변화는 크지 않지만 진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픽션 작품을 보는 내 안목이나, 타인에 대한 내 이해력과 공감 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요소와 원리를 조금은 알게 되었고, 그것으로 내가 어떤 작품을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좀 더 분명히 알게 될 것이며, 그 이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그 사람 자체를 아주 조금이라도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들과 내가 발 붙이고 있는 현실을 더 예리하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 책을 읽기 전과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