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파사 카페 - 네팔, 그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나라얀 와글레 지음, 이루미 옮김 / 문학의숲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네팔 소설이 있다면 믿겠는가. 네팔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영향력이 훨씬 큰 인도의 문학 작품도 그렇게 많이 출간되지 않았는데. 이 소설이 한국에서 최초로 소개된 네팔 문학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그 이후로 네팔 소설이 번역됐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아마 유일하게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네팔 소설일 것이다.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네팔 소설은 이것뿐이라는 것에서 벌써 호기심이 생기는데, 네팔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고 네팔 국내에서 5만 부가 넘게 팔렸다니 더 호기심이 생긴다. 네팔에서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네팔 곳곳에 '팔파사 카페'라는 이름의 카페가 여러 개 생겼다고 한다. 네팔 사람들은 네팔을 대표하는 소설이라며 이 소설을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다. 그런 것들을 떼고 봐도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 시기 동안 화가인 남주인공과 다큐멘터리 감독 지망생인 여주인공의 슬픈 사랑 이야기'라니,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어서였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두 주인공이 실질적으로 함께한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훨씬 결정적이다. 바로 남주인공이 비호감이라는 것이다. 


내가 남주인공을 망설임 없이 비호감이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남주인공의 행적을 살펴보자. 남주인공은 휴양지로 여행을 갔다가, 호텔 주인의 딸이 코코넛 나무에 올라가 코코넛을 따는 것을 지켜본다. 그는 그녀가 바지를 입고 있어 치마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에 실망한다. 미성년자인 소녀(인 척하는 친구여서 다행이었지만)와 채팅하면서 그녀에게 처녀냐고 물어본다. 외국으로 나간 집주인이 맡기고 간 반려견을 집주인에게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주고는, 집주인에게는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한다. 집주인이 잘 관리해 달라고 한 집을 쥐가 들락거릴 정도로 방치한다. 제 버릇 개 못 줘서 산간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 마주친 반군 소녀에게 처녀냐고 물어봤다 사달을 낸다. 스포일러여서 얘기할 수 없지만 더 결정적인 잘못들이 있다. 남주인공이 완전무결하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 모든 게 남주인공의 성격이고 개성인 양 가볍게 다루어지는 것이 문제다. 네팔 문화에서는 그런 행동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이 책의 서평 중 '시대착오적'이라는 평이 이해된다.


내가 남주인공을 견디고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한 것은 여주인공 팔파사와 책 속에 묘사된 네팔 그 자체였다. 팔파사는 주인공에게 아까울 정도로 아름답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팔파사는 남주인공과 그의 예술을 사랑하지만, 그의 한계를 정확히 꿰뚫어본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동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자신의 아름다움만 찬양할 뿐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팔파사의 이 말 때문에 남주인공이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여성혐오를 견딜 수 있었다.


그녀가 겪지 않았어야 할 비극과 남주인공이 여행을 하면서 만난 네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저몄다. 네팔 근현대사의 혼란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떻게 희생되었고, 어떻게 살아남아 슬픔을 떠안게 되었는지 어떤 뉴스나 기사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네팔에서는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작물을 기르고 시골과 도시에서는 각각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를 알게 되었다. 네팔의 참상과  그 속에서도 여전히 일상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초연함, 여전히 그 자리에 묵묵히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대비되어 더 서글펐다. 그래서 네팔에 대한 묘사만큼은 다시 읽으면서 곱씹어 보고 싶어진다. 내게는 두 주인공의 사랑보다는 네팔 그 자체를 만날 수 있게 한 것이 이 소설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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