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생리학 인간 생리학
앙리 모니에 지음, 김지현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자들의 오해가 없도록, 우선 '부르주아 생리학'이라는 제목의 의미부터 풀어보자. '부르주아bourgeois'는 '도시'를 뜻하는 프랑스어 '부르bourg'에서 유래한 말로 '성 안 사람'이라는 뜻이다. 영주에게 귀속된 시골의 농노들과 달리 성 안의 자유 시민인 부르주아들은 성 안의 온갖 산업, 상업의 주체로 활동하면서 세력을 키워갔고, 결국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이후 가장 유력한 사회적 계급이 되면서, 부르주아는 이전 체제의 귀족들을 흉내 내는 기득권 세력이 되고 말았다. '생리학'은 생물 유기체의 구성과 조직,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18세기 말 유럽의 지성인들은 인간의 육체적인 구조나 생리적 변화가 인간의 감정이나 지성,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정신까지 생리학의 연구 대상이 되었고, 1840년대에는 다양한 인간 유형을 제시하고 그 유형의 속성을 관찰하고 풍자하는 '생리학'이라는 장르가 프랑스 문학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19세기 프랑스의 풍자화가이자 희극 작가 앙리 모니에Henry Monnier가 부르주아를 파헤친 책 『부르주아 생리학』도 그러한 '생리학' 문학 중 하나이다.



『부르주아 생리학』의 한 대목과 그가 직접 그린 삽화

풍자랍시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가지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앙리 모니에는 자신과 같은 계층인 부르주아를 풍자한다. 그 자신이 부르주아였기 때문에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그들의 생태를 관찰하고 그 속에 숨은 허영과 모순을 포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예술가들)에게 부르주아라는 단어는... 하나의 욕지거리이다. ... 어떠한 신통찮은 화가라도 부르주아로 취급되기보다 차라리 가장 끔찍한 흉악범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천 배는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니에는 이렇게 자기가 속한 계층을 멸시하는 시선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며 자녀 교육, 사업, 사교 생활, 가정 생활, 문화 생활, 은퇴 후의 생활까지 부르주아의 삶 구석구석의 단면들을 꺼내놓고 풍자한다. 책 속의 부르주아들이 자신들끼리,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는 지금의 한국 독자들도 웃길 수 있을 정도로 신랄하고 코믹하다. 희극 작가로서의 장점을 이 풍자 에세이에서도 발휘했나 보다. 그가 직접 그린 삽화는 본문에서 그려지는 부르주아들의 캐리커처로 등장하며, 당시 부르주아들의 모습을 한결 더 생생하게 느껴지게 한다.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부르주아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기분 나쁘게 듣지 않았으면 해요'라고 하고 나서는 꼭 상대방이 기분 나쁠 말을 하는 이상한 버릇부터 자신은 누구보다 선량하고 현명하고 안목이 높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웃는 얼굴로 서로에게 비수를 날리는 독설가 기질에 자질구레한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허영까지. 무슨 질문을 해도 자신의 집 주소만 대답하는 부르주아 소년의 모습에서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아파트 광고 문구와, 초등학생들도 거주하는 집 형태를 두고 상대방을 놀리거나 따돌리는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 행태가 왜 잘못된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과거의 부르주아들에게서 우리는 적어도 스스로를 풍자할 줄 아는 그 동력을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역자 서문의 마지막 문장에 동감하게 된다.

백수십 년 전을 살아갔던 사람의 풍자가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풍자가 그만큼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풍자가 백 년이 넘은 지금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니 슬픈 일이다. 세상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변해서 그의 풍자가 아주 먼 옛날의 먼지 쌓인 유산으로 느껴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

P. S. 지금의 한국 독자도 배경 지식 없이 웃을 수 있을 만큼 모니에의 풍자는 이해하기 쉽고 유쾌하지만, 당시의 프랑스 사회와 정치 상황, 문화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다. 번역가가 서문(본문의 첫 문장을 패러디한 첫 문장에서 번역가의 유머 감각을 느낄 수 있다)과 각주로 수능 강사만큼이나 친절하고 자세하게 '부르주아'와 '생리학'이 어떤 것인지, '생리학'이라는 문학 장르가 생겨난 배경과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프랑스의 정치, 사회 상황을 설명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맛깔나게 번역해 작가의 신랄하고 유쾌한 풍자를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