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황모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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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0년 한국에서는 많은 여자아이들이 태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남아 선호 때문에 배 속의 아이가 딸인 경우 지우라고 주변에서 종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해는 특히 백말띠의 해라 이 해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팔자가 사납고 드세다는 이유로 더 많은 여자아이들이 세상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들이 모두 죽지 않고 태어난 평행우주가 있다면 어떨까. 소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바로 이런 상상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이 상상은 두 가지 면에서 내 흥미를 끌었다. 하나는 나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 평행우주를 상상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종종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우리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평행우주를 상상했었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평행우주가 존재한다. 1990년에 여자아이들이 낙태되지 않고 모두 태어난 평행우주와, 1990년에 여자아이들이 낙태된 우주(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로 보면 될 것이다). 2007A우주에서 평범한 고2로 살아가는 여자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B우주에서는 없는 사람이다. ‘내가 없는 평행우주라는 개념까지만 떠올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상상하지 못했던 나는, 이 두 우주가 어떻게 서로 접하게 되고 충돌하게 될지가 궁금했다.


 또 하나는 ‘1990년의 백말띠 여자아이들과 내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1990년생은 아니지만 그 또래의 여성이고, 내 친할머니는 내가 딸이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둘째인 나도 딸인 걸 미리 알고 이번 애는 지우자고 며느리인 엄마에게 강요했다면, 나는 ‘1990년의 여자아이들처럼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나 자신도 어쩌면 살아남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딸이 아니면 지우라고 종용하는 사람들의 가족이 아니었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으니.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었던 주인공 채진리의 일상이 조금씩 뒤틀리더니 결국은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과정은 흥미롭게 그려진다. 다정했던 남자친구와 정다웠던 남자 동급생들이 여자아이들을 갑자기 무시하고 거칠게 대한다. 집에 돌아가니 집 주소와 아버지의 직업이 바뀌어 있다. 누군가 진리와 단짝친구 해라 앞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하더니 갑자기 진리의 눈앞에서 해라가 사라진다. 해라뿐만 아니라 동갑내기 여자아이들이 한 명씩 사라지는데, 그 애들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부모조차 그런 애는 없다고 한다. 존재 자체가 지워진 것이다. 진리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진리가 겪는 공포와 혼란은 서서히 차오르다 어느새 턱 밑까지 온 물처럼 독자들을 오싹하게 한다.


 하지만 진리와 달리 현실에서의 1990년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짐작하게 된다. 진리가 사는 세상은 1990년에 낙태됐던 여자아이들이 모두 태어난 평행우주구나. 진리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동갑내기 여자아이들과 출산 통계 자료를 찾아보고, 지하실 냉장고를 통해 원래의 세계, 1990년생 여자아이들이 낙태됐던 B우주에 가 옛날 뉴스와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독자들의 짐작은 사실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A우주는 B우주의 영향을 받아 뒤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진리가 A우주가 B우주의 영향을 받게 된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는 과정이 펼쳐진다. 그런데 왜 그런 상황이 되도록 만들었나는 설명되지만 어떻게 그런 상황이 되게 했나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진리의 노력으로 조정자를 설득한 덕분에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90년생 여자아이들의 운명을 건 결정을 바꾸었지만, A우주는 이전의 A우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SF로 보았을 때 과학적인 설정이 구체적이거나 치밀하지 않고, 이야기도 촘촘히 짜여 있다기보다 성큼성큼 진행되는 느낌이다. 장편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중편소설이라고 보는 게 더 좋을 만큼 분량이 적은데, 분량을 좀 더 늘리고 이야기를 더 촘촘하게 짰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상상보다 훨씬 더 탄탄하고 흥미로운 평행우주 이야기를 기대했던 면에서는 아쉬웠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무사히 태어난 사람으로서 무사히 태어나지 못했던아이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작가는 낙태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니 무조건 나쁜 것이다라며 낙태를 했던 산모 개인을 비난하지 않는다. 대신 1990년이라는 특정 연도에 여자아이들만 그렇게 많이 죽어야 했나라는 의문을 품고, 그런 상황이 되도록 만들었던 사회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폭력성이 20여 년이 지난 2007년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7B우주에서 A우주로 넘어온 남자아이들은 원래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들이 설친다는 이유로 A우주의 여자아이들을 무시하고, A우주의 모든 것을 자신들만이 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남자아이들만 필요하니 여자아이들은 지워도 그만이다라는 폭력적인 사고방식이, 그다음 세대들에게 이어져 여성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존중하지 않게 만든 것이다. 그로부터 10여 년 뒤인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런 폭력성은 남아 있다. A우주에서 여자아이들과 자신들의 틀에 맞지 않는 소수자들을 무시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B우주 아이들의 모습은 소설 밖의 현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런 폭력에 맞서 진리가 한 행동은 어렵고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라진 친구들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이 모든 일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진심으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한 것. 진리의 행동이 큰 변화를 이끌어 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진리는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더 좋게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하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작가가 말하는 희망은 이렇게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분량이 적고 간략한 것의 단점이 여기에서도 드러나기는 한다. 진리와 사라진 친구들의 관계, 같은 우주에 존재할 수 없는 엄마와의 관계, 새로 만나 연대하게 된 친구들과의 관계가 좀 더 쌓였다면 결말 부분의 감동이 더했을 것이다. 하지만 ‘90년생 백말띠 여자아이들과 멀지않은 사람, 살아남은 사람으로서는 나름대로 여운이 남는다. A우주의 그들도, 여기 이 세상의 우리도 씩씩하게 잘 살아남고, 잘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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