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아트 쿡북 - 고흐의 수프부터 피카소의 디저트까지
메리 앤 코즈 지음, 황근하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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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과 관련된 맛깔난 글을 읽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 나는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한 블로거 분이 쓴 '우하'에 대한 글을 읽는다. 우하는 러시아식 생선 수프인데, 그 글에서 주인공이 추운 겨울날 새벽 친구 집에 찾아가자 친구는 냄비에 남아 있는 우하를 데워준다. 이건 크림이 든 우하라고, 크림 없는 맑은 우하를 달라고 툴툴대던 주인공은 한 번 맛보더니 열심히 우하를 먹는다. 나는 우하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지만 무심한 듯하면서도 따뜻한 그 글의 분위기가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그 글을 처음 본 이후로 나는 수프뿐만 아니라 국, 라면, 라멘 등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 글을 읽곤 한다.


  이 책도 그런 방식으로 읽었다. 엄마가 끓여준 따끈한 수프를 읽을 때면 수프 챕터를, 도톰한 계란말이를 먹을 때면 달걀 챕터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산 케이크와 와인을 먹을 때는 디저트 챕터와 음료 챕터를. 이 책은 애피타이저, 수프, 달걀, 생선, 육류, 야채, 곁들임 요리, 빵과 치즈, 과일, 디저트, 음료, 이렇게 서양 식사의 순서대로 챕터를 나누고 각 챕터에 관련된 서양 문학 작품과 명화, 서양 작가들과 화가들이 사랑했던 음식의 레시피들을 모아놓았다. 레스트랑에서 코스의 순서를 따라 식사를 하는 것처럼 책의 순서에 따라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자기가 읽고 싶은 부분부터 읽어도 상관은 없다. 기승전결에 따른 구성도 아니고, 그 챕터에서 다루는 음식과 관련된 글과 그림, 요리법을 무작위로 모아놨기 때문이다. 성의 없고 엉성한 구성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구성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감자 수프를 먹으면서 (책에서는 두 번째 챕터지만) 수프 챕터부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해스는 수프를 먹는 온전한 경험을 이렇게 시로 표현했다고 한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

따뜻한 곳에 옹송그리고 앉아

한 숟가락 듬뿍 뜬다. 먹는다. 


늦은 아침으로 나 혼자 수프를 먹으면서 이 구절을 읽었지만, 마지막 구절처럼 한 숟가락씩 듬뿍 뜨면서 맛있게 먹었다. 혼자 먹어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것처럼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 그가 알려주는 양파 수프 조리법은 읽는 것만으로 맛과 냄새가 상상된다. 감자 수프를 먹고 있는데 치즈가 듬뿍 든 양파 수프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올리브 오일과 버터를 두른 두툼한 팬에 채 썬 양파를 넣고 볶다가 달콤한 포트와인과 소고기 육수를 넣고 뭉근한 불에 끓인 다음, 그뤼에르 치즈 다진 것을 뿌리고 그 위에 구운 빵과 잘게 채를 친 삼소 치즈를 수북하게 올리고, 다시 그 위에 녹인 버터를 뚝뚝 떨어뜨려 황금빛이 돌 때까지 오븐에 익힌다.


제프 쿤스, <케이크>, 1995-1997.


  달콤한 분홍색으로 가득 차 있고 케이크 시트의 결이 느껴지는 제프 쿤스의 그림을 바라보며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먹었고(내가 먹은 케이크는 갈색으로 덮여 있었지만) 피카소가 사랑했다는 '고양이 네 마리 식당'의 상그리아 레시피, 마티니(진에 베르무트를 섞고 올리브로 장식한 칵테일)와 압생트(향쑥을 주 재료로 해서 만든 초록색 술)를 찬양하는 시들을 읽으며 크리스마스 와인을 마셨다. 8월에 크리스마스 풍경들을 떠올리는 로버트 해스의 시 <8월의 크리스마스>(영화 제목은 이 시에서 따온 걸까.)에서 정성스럽게 크리스마스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만났다. 때로는 이미 읽은 부분이어도 그 부분과 관련된 음식을 먹고 있기에 다시 읽기도 했다. 빵을 구울 때 겉에 계란 물을 발라 더 반짝이게 하는 것처럼 건조한 일상이 글과 그림으로 윤기를 입는 것 같았다.


백석은 시 <선우사>에서 혼자 쓸쓸히 저녁밥을 먹을 때 흰밥과 가재미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반찬도 밥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데 책이 밥 친구가 못 될 이유가 없다. 음식 국물이나 소스가 책에 튀는 것만 조심한다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밥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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