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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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라는 단어 자체를 올해 개봉한 영화 <코다>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2014)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것인데, 청각장애인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과 꿈을 좇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코다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길보라 감독도 코다이다. 저자는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로서 장애인이 경험하는 세계와 비장애인이 경험하는 세계의 사이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장애라는 주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성별, 젠더, 성정체성, 장애 유무, 인종, 민족, 계급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며 그 사람의 삶과 경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정체성만으로 그 사람의 삶과 그 사람만의 고유한 세계를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저자는 코다이면서 여성으로서, 지금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30대 청년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질문을 던지고 목소리를 낸다.

나와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그로 인해 다른 경험을 쌓아온 사람을 통해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된다. 비장애인 가족들과 살아온 비장애인인 나는 코다인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청인(聽人)’이라고 하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신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수어)와 문화(농(聾)문화)를 지닌 사람을 ‘농인(聾人)’이라고 한다(저자는 이렇게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인식하는 사람들을 ‘청각장애인’ 대신 ‘농인’으로 지칭한다. 이런 용어 사용에서부터 그들을 ‘장애’를 가진 결핍된 존재로 정의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의도가 보인다). 청인들은 모든 농인들이 간절히 소리를 듣고 싶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농인 부모는 이런 고정관념을 깬다. 그들은 아름다운 음악 소리, 새 소리, 물소리가 궁금하긴 하지만 자신이 농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시 태어나도 농인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오만하게도 나도 청인으로서 농인들이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고, 그들만의 문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머릿속의 편견 하나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TV 뉴스나 정부의 코로나 관련 정책 브리핑에 수어 통역사가 나올 때는 그저 ‘청각장애인들에게도 보도 내용이 잘 전달되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어 통역사가 나오는 삽입 화면이 너무 작거나, 수어 통역의 질이 좋지 못해 정작 농인들은 뉴스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다. 수어에서는 손동작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손동작과 얼굴 표정이 모두 잘 보이도록 해야 하는데, 뉴스에 삽입되는 수어 통역 화면은 그 둘을 알아보기에 너무 작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수어에는 음성 언어의 문법과 어순을 그대로 따르는 ‘수지한국어’와 농인들만의 문법으로 구성된 ‘한국수어’가 있는데(예를 들어 ‘짧게 수어 얼굴 표정 사용 좋아’라는 한국수어는 음성 언어로 옮기면 ‘수어와 얼굴 표정을 사용하면 짧게 말할 수 있어 좋아’라는 뜻이다.) 수어를 늦게 배웠거나 평소에 음성 언어로 말하는 농인들에게는 수지한국어가 내용 전달에 유리하지만 그렇지 않은 농인들은 수지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뉴스 보도의 수어 통역에서는 둘 중 어느 것을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게다가 수어를 모르는 사람은 알아채지 못하지만 수어를 아는 저자의 눈에는 수어 통역의 질이 들쭉날쭉한 것이 보인다. 저자는 청인들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수어 통역을 농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라 청인이 베푸는 ‘혜택’으로 생각하고, 정작 그들에게 필요하고 마땅히 누려야 할, 국민으로서의 알 권리는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이런 문제 제기를 통해 세상에는 내가 당연히 누리고 있기에 그것을 누릴 수 없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다른 정체성을 지닌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몰랐던 다른 세계를 알게 된다면, 나와 같은 정체성을 지닌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내 정체성으로 인해 직면하는 문제에 함께 공감하고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그에 관련된 사회 문제를 이야기하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페미니즘인데, 같은 여성으로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다. 저자가 성인이 되기도 전부터 겪은 성추행과 성희롱은 나도 오래전부터 겪어온 것이다. 저자는 딸이라는 이유로 할머니가 지우라고 한 아이였다는데, 내 할머니는 지우라고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딸이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낙태를 해본 경험도 없고 처음에는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지도 몰라 두려워하다 임신이 아닌 것을 알고 안도하는 친구를 보면서 낙태를 반대했던 신념을 버리게 되었다. 나는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나의 경험을 저자의 경험과 겹쳐 보고 저자에게 공감한다. 누군가가 저자에게 “임신중지나 몰카, 페미니즘 말고 가벼운 글을 쓰면 좋겠다.”고 했다지만, 계속해서 말하고 쓰고 투쟁하겠다는 저자의 결심을 응원하고 동참하려 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주제 중 마음 깊이 공감한 또 한 가지는 청년들의 불안정한 삶이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은 자기 집을 마련하기는커녕 고시원과 고시원만큼이나 좁은 집을 전전하며 소득의 상당 부분을 월세로 써야 한다. 청년을 위한 공공주택들이 지어지고 있지만, 저자는 공공주택의 입주자 자격을 얻기 위해 가난을 증명하고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자기 몸 하나 뉠 집이 없어 불안한데, 자기 몸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 한국에서는 개인이 보험설계사와 논의하면서 보험을 직접 설계하는데, 네덜란드에서는 국가에서 의료 시스템의 품질을 책임지고 개인의 소득에 따라 보험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의 친구는 “왜 개인이 보험을 들고 그 세부 내용을 선택해야 하느냐. 그건 국가와 사회가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축과 연금만으로는 노후를 대비하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시세 차익으로 돈을 버는 투자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그러면서 집값과 전세 가격은 올라가고, 실제로 살기 위해 집을 사려는 사람, 전세 집을 구하려는 사람의 형편은 더 어려워진다. 또한 저자는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없거나 투자를 할 종잣돈조차 없는 사람들이 이러한 투자 열풍 속에서 소외될 것을 우려한다. 모두 국가가 개인이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안정적으로 누리고 살 수 있도록 보호해 주지 못하기에 생겨난 풍경들이다. 이러한 현실에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기본 소득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 몸은 국가와 사회가 지켜주어야 하지 않을까? 주식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치권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 작게나마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 보장에 어긋나는 법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 청원을 올리는 것, 성범죄에 부당한 판결을 내린 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을 박탈하라는 국민 청원에 동의하는 것, 성 평등을 위한 법안을 추진하는 국회의원에게 응원 문자를 보내는 것, 블로그나 다른 SNS를 통해서 성 불평등과 성범죄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적는 것. ‘나보다 앞서 간 사람들이 해온 말과 행동 위에 내가 있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 위에 나보다 나중에 오는 이가 서게 될 것이기에’, 저자는 먼저 용기 있게 말했던 사람, 당신을 이어 말한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 서평을 씀으로써 짧게나마 저자를 이어 말한다. 누군가가 이 책을 읽거나 이 서평을 읽고 이어 말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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