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이게 다 인권 문제라고요? - 새로운 인권 감수성으로 만나는 청소년, 디지털, 기후위기, 젠더, 장애, 난민 이야기, 2021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2021년 (사)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곰곰문고 6
김도현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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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을 읽기에는 쑥스러운 나이가 되었지만, 청소년 책들을 살펴보면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들이 보인다. ‘이런 책이 내가 청소년일 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고 한탄이 나올 정도다. 잠깐! 이게 다 인권 문제라고요?도 그런 책이다.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집필되고 편집되었지만, 어른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남겨주는 책. 인권 문제에 나름대로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도 살아가면서 지나쳤던 인권 관련 이슈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첫 챕터인 청소년 인권 문제부터 내가 평소에 의식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 챕터를 읽으면서 내가 청소년 시절에 겪어온 것들이 인권 침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간 자율학습이라고 했지만 예체능계가 아니면 무조건 밤 열 시까지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해야 했고, 점심시간에도 자율 학습을 해야 했다. 성인 노동자에게는 식사 시간을 포함한 휴식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미성년자인 학생은 휴식할 권리도 없단 말인가. ‘생활 지도라는 명목으로 교사가 학생에게 감정을 실어 체벌을 할 때가 많았고, 수업 시간에 학생에게 네 가슴 사이즈는 A컵쯤 되겠네하고 성희롱을 하는 교사도 있었다. 이렇게 자기 권리가 침해되는데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교사의 통제를 따르며 입시 준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학교 풍경을 바꾸기 위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생 인권조례에는 나와 내 또래 사람들이 학창 시절에 겪었던 인권 침해들을 방지할 수 있는 조항들이 있었다. 학생의 쉴 권리와 모든 종류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개성을 추구할 권리도 보장하고 있었다. 저자는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가 문제 제기를 하고 자신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청소년이었던 사람이고 지금의 청소년들이 겪었던 억압과 인권 침해를 경험했으면서 그 모든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소년 자신이 자신의 인권을 놓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청소년들의 인권이 좀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을 뿐. 청소년들을 학생인권조례의 시혜 대상으로만 생각했을 뿐 그들을 그들 자신의 인권을 스스로 지키는 주체로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겪고 있지 않은 인권 문제에 무심했을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기도 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인터넷을 하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사람이 그 연예인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올린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같은 팬들이 보면 좋아하겠다 싶어 그 졸업 사진을 팬 사이트에 올리고 고등학교 때는 이랬네하고 웃고 떠들었다. 내 행동은 명백히 그 연예인의 초상권과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동이었다. 이 책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사생활을 침해하면 그 행위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고 지적했는데, 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인터넷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정보가 올라와 있기 때문에 누구나 검색해서 볼 수 있는 것누구나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이라고 착각한다는데, 나도 그런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안일하고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인권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인권 관련 이슈에 대해 대답하기 난감했던 질문에 어떻게 답할지 힌트도 얻게 되었다. 우선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은 역차별이 아니냐는 질문. 이 책에서는 남자만 군대에 가는 것이 역차별이 아닌 이유를 조목조목 밝힌다. 역차별은 부당한 차별을 받는 쪽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나 장치가 너무 강해 오히려 반대편이 차별을 받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남성만 군인으로 징집하는 제도가 여성을 보호하고 우대하기 위한 것일까? 이 책은 국방부에서는 남성만 징집하는 것이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정 연령대의 남성만으로도 필요한 군인 수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국방의 의무에는 병역뿐만 아니라 군 작전에 협조하거나 전시 근로 동원에 응하는 의무도 있기에 군대를 가지 않는다고 해서 국방의 의무를 지키지 않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여러 차례 병역 부과 대상을 남성으로 한정한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판결했고, 징병제가 있는 70여 개 국가들 중에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는 국가는 극히 일부이며 남성 중심의 현 군 조직에서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했을 때 상명하복과 권력관계를 이용한 성희롱 등의 범죄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남성의 병역 의무는 역차별, 평등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물론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든 국민이 군 복무를 하는 것으로 병역법이 바뀔 수 있지만 그 전에 여성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남성만 징집하는 한국 병역법이 역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근거를 정확히 알지 못했는데, 이렇게 근거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니 막혔던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질문은 혐오 표현도 표현이니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이들 중에서는 교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를 해도 처벌받는 것이 아니냐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동성애가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동성애가 싫다는 말은 이성애자로서 차별당하지 않는 안전한 위치에 있으면서 동성애자라는 소수자는 불안에 떨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리고 혐오 표현은 특정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계속 쓰다 보면 그 말에 담긴 증오에 물들어, 그 대상을 진심으로 증오하게 되고 폭력도 서슴없이 가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근거를 들어도 이해가 안 된다면 역지사지를 하게 하면 된다. 외국에 나갔을 때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백인 우월주의자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양인은 싫어라는 소리를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어떤 논리적 근거를 들어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역지사지의 태도를 취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신문 기사를 보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시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이 삭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보장해 달라며 시위를 했는데, 시민들은 그들을 조롱하고 경찰이 그들을 끌어내자 환호했다는 것이다. 더 슬프고 답답했던 것은 그 기사에서조차 장애인들을 조롱한 시민들을 비판하기는커녕, ‘자기 권리를 찾겠다고 다른 사람의 이동까지 방해해서야 되겠냐며 장애인들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린 것이었다. 청소년들이 지금 당장 내가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인권을 생각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사는 게 벅차다며 다른 사람의 인권까지 챙기기는 힘들다는 어른이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바꾸기 위해 이런 책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조건, 사회적 위치 때문에 인권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우리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것도 인권 문제였구나하고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그런 문제를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데 이 책이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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