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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ㅣ 띵 시리즈 9
윤이나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평점 :
“이 책은 라면 1인분을 끓이는 과정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나에게 가장 맛있고 간편한 한 끼를 먹이는 일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 이렇게 선언한다. 라면을 제대로 된 한 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만 작가는 라면이야말로 가장 저렴하고 간편한 한 끼이며, 제대로 끓이면 맛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양 균형은 다른 끼니에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먹어서 맞추면 된다며. 라면을 어엿한 한 끼로 대우하는 작가의 패기가 엿보인다.
책의 주제에 대해 쓴 여러 글들을 아무렇게나 모아둔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달리, 논문처럼 라면의 A부터 Z까지 차근차근 정리한 목차 구성도 돋보인다. 라면을 끓이기 전 라면을 낱개로 구매할지 번들로 구매할지부터 고민하고, 라면을 고른 뒤, 라면을 끓이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점검한다. 라면 조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 조절과 끓이는 시간. 그 두 가지를 잘 해내서 맛있게 먹고 나면, 앞으로도 계속 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건강관리를 꾸준히 한다. 이런 체계적인 구성만 봐도 작가가 라면에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책에 실린 열두 편의 글이 라면을 제대로 고르고 맛있게 끓여먹는 실질적인 팁으로 시작한다. 이 실용적인 도입부를 지나면 라면 이야기인 듯 라면 이야기가 아닌 듯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지만 결국에는 라면으로 돌아오니 기승전라면, 수미쌍라면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입맛이 없다고 누워 있다가도 라면을 끓인다고 하면 슬그머니 일어날 정도로 라면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작가와 닮은 아빠, 이제는 라면도 먹을 수 있다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조카와의 추억이 있는가 하면, 매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워킹홀리데이 시절의 기억이 있다. 한강공원 수영장의 라면 자판기에서 친구와 끓여 먹던 ‘계란이 잠영하는 라면’은 코로나로 수영장이 폐쇄되면서 다시 오지 않을 여름날의 추억이 되었다. 삶의 여러 순간에 라면을 먹었을 우리는 작가가 라면과 함께한 순간들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의 편집자는 서문에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오로지 나의 의지로 재미있고 맛있는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인생은 마치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1인분의 라면과 닮아 있다’고 말한다. 정찬이 아니라 라면 한 그릇에도 끓이는 사람만의 비법과 정성, 의지가 들어 있다. 나를 위해 1인분의 라면을 정성껏 끓여내고, 1인분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