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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 : 내가 사랑하는 빨강 ㅣ 띵 시리즈 8
허윤선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평점 :
태어나서 훠궈를 먹어본 적은 딱 한 번이다. 아직까지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함께 회사 근처의 훠궈 식당에 갔었는데, 동료들은 초심자인 나를 위해 제일 순한 맛으로 주문했다. 그래서인지 마른 두부가 많이 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순두부찌개와 다를 것이 없는 맛이었다. 처음 먹은 훠궈는 내게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일부러 훠궈를 찾아 먹은 적은 없는데도 이 책을 읽었다. 책 소개 글에서부터 작가의 훠궈 사랑이 강렬하게 느껴졌고, 훠궈에 읽힌 중국어권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끌리고, 코로나 때문에 어느 나라로도 떠나기 어려운 지금이라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니까.
이 책에 실린 첫 글은 훠궈 재료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리 시간에 대한 글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주문한 훠궈 재료가 나오고 냄비의 육수가 끓기 시작하면 채소의 반을 쏟아 넣고, 그다음에 고기를 넣는데, 이렇게 하면 먼저 집어넣은 재료가 냄비 바닥에서 곤죽이 되어버린다고 한다. 이런 훠궈를 생각하면 슬퍼서 도무지 견딜 수 없다며, 작가는 어떤 재료를 먼저 넣어야 하는지, 오래 끓여도 되는 재료는 무엇이고 오래 끓이면 안 되는 재료는 무엇인지 설명해 나간다. 이 첫 글에서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훠궈를 다른 사람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 뒤로도 맛있는 소스들을 찾고 내 입맛에 딱 맞게 배합하는 법, 작가가 좋아하는 훠궈 식당과 메뉴, 집에서 혼자 훠궈 만드는 법 등 훠궈를 즐기는 데 도움이 되는 팁들이 이어진다. 훠궈를 먹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작가는 왜 다른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어할 정도로 훠궈를 사랑하는 걸까?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에도, 추위가 점점 깊어지는 겨울에도, 혼자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때도, 사람들과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때도 위장이, 온몸의 세포들이 훠궈의 얼큰하고 매운 맛을 요구하니까. 잡지 마감 날 새벽 모든 일을 마치고 새벽에 조용히 먹는 따뜻한 훠궈도 좋고, 각자의 개성과 입맛에 따라 다양한 소스와 재료를 넣어 먹는 훠궈도 좋으니까. 훠궈를 사랑하면서 쌓아간 작가의 추억들은 작가의 마음뿐만 아니라 독자의 마음속에서도 따뜻한 온도로 다가온다.
작가가 진짜 로컬 훠궈 맛집을 찾아다녔던 홍콩의 뒷골목 이야기는 여행이 그리운 마음을 달래준다. 동네 칼국수집처럼 친숙한 홍콩의 가게들, 음식 사진 하나 없이 온통 한자로만 쓰여 있어 한자알못인 관광객들을 당황하게 하는 메뉴판, 낯선 식재료와 디저트들이 즐비한 골목, “왜 이렇게 뜸했어! 한국에 간 줄 알았잖아.”라고 인사하는 단골 식당 사장님(오죽 자주 갔으면 한국에서 오는 건데 한국에 갔다 온 거라고 생각했을까.)까지 낯선 풍경인데 친숙한 정이 느껴진다. 작가도 나도 마음 놓고 그 풍경들에 발을 다시 들여놓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훠궈는 ‘내가 사랑하는 빨강’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사랑하는 빨강’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좋아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랑스러우니까. 혼자든 함께든 훠궈를 사랑하면서 즐거움을 누리는 날이 그녀에게 계속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