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를 하다 - 우리의 몫을 찾기 위해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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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때 사회 교과서에서 정치의 정의를 처음 봤을 때 의아했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자원을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활동이라니정치는 선거에서 뽑힌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 아닌가뭔가를 나눠주는 게 어떻게 정치가 되는 거지어른이 되고 세상을 알아가면서 깨달았다파이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누구에게얼마만큼 나누느냐가 중요하다는 걸어떻게 파이를 나눌 것인가를 놓고 수많은 갈등이 일어나고 있고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의 입장을 조율해 가는 것이 바로 정치라는 걸그리고 파이가 공평하게 나눠지지 못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고제 몫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으며 그 중 하나가 내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정치는 몫 없는 이들의 몫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장영은 작가는 랑시에르가 말한 정치의 정의에 동의하며 정치하는 여성의 범위를 더 넓게 잡았다국회의원이나 장관총리대통령 등 정치 지도자가 되어 나라를 이끌어간 여성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몫 없는 사람의 몫여성의 몫을 찾기 위해 사회적 실천을 했던 여성들로그런 기준으로 선정한 여성 정치인’ 21명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 여성정치를 하다이다.

 

  물론 장관이나 총리 등 나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올라몫 없는 사람을 위한 법과 정책을 만들어낸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권력다툼의 한복판인 정계에서 몇 번이고 좌절했다 다시 일어나 권력을 쟁취하고 그 권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는 여성들의 모습은 존경스럽다하지만 높은 자리에 앉지 않고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친 여성들더 넓은 의미에서의 여성 정치인들의 이야기는 정치가 나와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나 자신도 실천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열한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여성 교육을 금지하는 탈레반의 만행을 고발하며 개발도상국의 여자아이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싸운 말랄라 유수프자이그림을 통해 노동자들이 겪는 불평등한 현실을 폭로하고 전쟁을 반대한 독일의 화가 케테 콜비츠자신의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강의와 저술을 통해 여성과 노동자흑인 등 미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을 대변한 헬렌 켈러 등낮은 곳의 여성 정치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그녀들은 여성이라는 것이 핸디캡이 되고 루머나 신체적인 위협비협조적인 사회 분위기 등 온갖 어려움이 따라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끝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이들의 용기와 결단행동력은 힘없는 나 하나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절망하고 무기력해진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이들 모두가 생전에 자신이 한 정치의 성과를 본 것은 아니다여성의 참정권을 찾기 위해 평생을 싸워온 영국의 사회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결국 21세 이상의 모든 여성이 참정권을 가질 수 있다는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독일의 정치인 페트라 켈리는 사회의 약자들을 대변하고 생태 친화적인 정치를 추구하는 녹색당을 주요 정치 세력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했지만녹색당이 내분에 휩싸이고 자신도 녹색당에서 퇴출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하지만 저자는 이들을 실패자로 낙인찍지 않고이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실천했고그들이 뿌린 씨앗이 이후에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돌아본다여기에서 이 책에 실린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사려 깊음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각 인물을 그렇게 깊이 있게 다루지 않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한 명 한 명의 분량이 열 페이지 남짓인데 책의 판형도 작아 각 인물의 삶과 업적영향은 간략하게 설명된다특히 마거릿 대처의 경우에는 정책적인 면에서 과오도 많은데 그녀의 독선적인 면만 조금 언급된다책에서 소개하는 인물의 단점을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면 독자들의 동기 부여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오히려 그 인물의 한계까지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그 인물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이 책에 실린 글들이 원래 한정된 신문 지면에 싣는 칼럼이어서 그런지 문장과 문장 사이 몇 문장이 편집된 것처럼 연결이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들도 있다이렇게 책의 완성도에서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책에 실린 21명의 여성 정치인의 삶과 정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한다또한 책의 맨 뒤에는 각 인물의 이야기를 쓰는 데 참고한 책들의 목록이 실려 있어각각의 인물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을 또 다른 책들로 이끌어 준다여기에 이 책의 의미와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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