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
바네사 스프링고라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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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77년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에는 미성년자와 성인 사이의 성관계를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공개 서한이 실렸다. '아이들은 폭력의 희생자이기는커녕 스스로 동의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면서. 68 혁명(1968년 프랑스에서 기성 세대와 국가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일어났던 시민 혁명) 이후 70년대 프랑스에서는 모든 육체가 자유로운 성생활을 누려야 한다는 풍조가 일어나면서 청소년의 성생활을 막는 것을 사회적 억압으로 보는 시각까지 생겼다. 이 공개 서한도 그런 풍조의 일환이었다. 14살 소녀 바네사 스프링고라를 연애라는 명목으로 성적, 정신적으로 학대한 작가 가브리엘 마츠네프도 그 서한에 서명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바네사는 수십 년 뒤 자신이 겪은 폭력을 자전적 소설로 기록해 출간했다. 그 소설이 『동의』이다.

바네사는 자신이 어떻게 마츠네프의 덫에 걸려 들었는지, 마츠네프의 손아귀에 있는 동안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이야기하고, 마츠네프에게서 벗어나서 온전히 홀로 서기 위해 방황했던 날들을 이야기한다. 이혼한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로 외로웠던 바네사는 잘생긴 데다 유명 작가인 마츠네프가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애정을 표시하자 그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 첫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이 멀어, 50살이나 먹은 남자가 14살밖에 되지 않은 자신을 유혹한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바네사가 아직 마츠네프의 진짜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을 때도 그의 추악함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고대에는 어른이 젊은이로 성으로 인도하는 일이 의무였다는 궤변과, 어린 바네사와 성관계를 맺으려고 늘어놓는 온갖 사탕발림들 속에서. 독자들은 그의 추악함을 눈치챘지만 바네사는 눈치채지 못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해도 더욱 강해지는 사랑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가 계속되면서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고, 바네사는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네사를 매혹시켰던 그의 탄탄한 몸매와 매끈한 피부는 겉멋 부리기의 결과였고, 그는 자기 외모뿐만 아니라 바네사의 외모까지 관리하려 들었다. 그는 바네사가 또래의 남자아이들과 콘서트에 가는 것도 반대하고, 모든 생활을 통제하려고 들었다.

마츠네프가 바네사를 어떻게 통제했는지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둘이 함께 작문 과제를 하는 장면이다. 마츠네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승마 실력을 사람들 앞에서 뽐냈던 일을 자랑하며, 그 이야기를 받아 적어서 작문 과제로 제출하라고 한다. 바네사가 거부하자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거냐고 상처 받은 척하고, 네가 쓴 것처럼 보이게 쓸 수 있다고 구스른다. 결국 바네사는 마츠네프의 글을 받아 적어 과제로 제출하고 좋은 점수를 받지만, 그것은 바네사의 글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때부터 자신을 잃어간다. 작문 과제뿐만 아니라 그와 주고받는 편지까지 그의 문체와 닮아갔다. 바네사는 그 후 자신뿐만 아니라 마츠네프와 연인 관계였던 소녀들이 하나같이 그와 같은 문체로 편지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아직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청소년들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는 것을 즐겼던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네사는 마츠네프가 상상 이상으로 추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출장을 간다고 하고 거리에서 다른 여자아이와 팔짱을 끼고 걷는 모습을 마주치고, 그가 쓴 소설과 일기에서 그가 필리핀에서 열한 살짜리 어린 소년들과 성관계를 가지고 난교 파티를 즐겼다는 대목을 발견한다. 바네사는 자신이 그에게 결코 특별하지 않았고, 그가 자신에게 하는 행동이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도 그의 추악한 행동에 가담한 공범이라는 생각이 들어 괴로워하고 빠져나오고 싶어했을 때, 아무도 바네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부모도 친지도 선생님도.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기에, 바네사는 스스로 마츠네프를 떠난다.

마츠네프를 떠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곧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츠네프와 사귀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의 눈총을 견디기 힘들었고, 자기 자신에게 죄인, 낙오자, 창녀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질 때에도 스스로가 쾌락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한 도구, 장난감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헤어지고 나서 10여 년 동안 마츠네프는 바네사를 모델로 한 소설, 바네사가 보낸 편지들을 포함한 일기, 서간집을 쉬지 않고 출간했다.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 바네사는 자신이 채 형체가 갖추어지기도 전에 그가 자신을 말들의 감옥에 가두었다는 것을 깨닫고, 문학 자체에 환멸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바네사는 오랜 방황을 끝내고 대학에 진학했고, 출판계에서 경력을 쌓아 출판사 대표가 되었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도 낳고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츠네프는 계속해서 바네사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려고 했다. 그는 자기 전기를 출간하겠다며 바네사의 사진을 실어도 되겠느냐고 편지를 보냈고, 바네사의 사진을 포함한 옛 연인들의 사진을 자기 공식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심지어 길이 남아야 할 문화유산인 양 바네사의 편지가 포함된 연애 편지들과 원고를 출판 기록물 연구소에 기증했다. 출판사 편집자였던 어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책과 문학을 가까이 했던 바네사는, 마츠네프를 통해 책과 문학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바네사는 오히려 책과 문학을 자신의 무기로 삼아 복수를 한다. 마츠네프의 추악한 진실은 『동의』로 박제되었다.

2013년 에세이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으면서 마츠네프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술 작품을 그 아름다움이나 표현력이 아니라 윤리성 혹은 비윤리성을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대단한 바보짓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과 명성을 위해 아이들을 성적, 심리적, 문학적으로 착취하는 그를 보면서 바네사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문학은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가?"

나는 단호히 답하겠다. 문학이, 예술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예전에 한 교수님은 예술가들은 우리와 피 자체가 다르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술가 또한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다. 어떤 예술도 인간의 존엄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다. 마츠네프가 문학상을 받고 어린 아이들을 성폭행했던 로만 폴란스키가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게 지금의 현실이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문학, 예술 뒤에 숨어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세상은 점점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동의』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문학과 예술은 피해자가 반격을 하는 데에도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동의』는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아 오던 작가 마츠네프가 사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어린 아이들에게 욕망을 쏟고 그들을 통제하는 것에서 기쁨을 얻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폭로한다. 마츠네프가 그 누구의 동의도 없이 피해자들의 신상과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그의 행적을 기록한 이 책도 남아 사람들이 그의 추악함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가해자와 세상이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가하는 폭력을 견디면서 더욱 단단해졌던 바네사의 품위와 존엄함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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