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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 밤의 미술관 - 하루 1작품 내 방에서 즐기는 유럽 미술관 투어 ㅣ Collect 5
이용규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1월
평점 :
한 출판사 면접에서 ‘요새 미술 분야 베스트셀러 1위가 뭔지 아느냐’, ‘그 책을 읽어 봤느냐’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이후로, 지금 미술 분야에서 인기가 있는 책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사 책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책에만 관심이 있었지 독자들이 좋아하는 책에는 너무 관심이 없었다. 여러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들을 훑어보면서 공통적으로 미술 분야 베스트셀러로 꼽힌 책이 『90일 밤의 미술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평소에는 읽지 않는 ‘하루 1페이지 OO’ 유의 책이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지 직접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국은커녕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도 망설여지는 이 때, ‘하루에 한 작품 내 방에서 즐기는 유럽 미술관 투어’라는 이 책의 콘셉트는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은 유럽 곳곳의 유명 미술관에서 가이드 투어를 진행해 온 현직 도슨트docent(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엄선한 작품 90점을 90일 동안 한 점씩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각 나라별로 챕터가 나누어져 있고, 각 나라별 챕터 안에는 각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한다고 추천하는 작품들이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런 구성이 각 나라, 각 미술관을 차례대로 방문하면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챕터 앞에는 그 나라에 있는 주요 미술관들이 어떤 곳인지 간단하게 설명되어 있고, 챕터 마지막에는 미술관 전경을 담은 사진이 들어가 가이드북을 들고 여행하는 느낌을 더한다. 외국 여행이 그리운 독자들은 간접적으로나마 유럽 미술관 기행을 하는 셈이다.
유럽 미술관들에서 직접 가이드 투어를 진행해 온 도슨트들이 각 작품을 해설한다는 데서 독자들은 신뢰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쓴 다섯 명의 도슨트들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동안 유럽 각지의 유명 미술관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여행자들에게 미술 작품을 설명해 왔다. 특별히 독창적인 시선으로 각 작품을 새롭게 해석하지는 않지만, 그 작품을 볼 때 알아두면 좋은 배경 지식과 그 작품 자체의 특징 모두를 충실하게 설명한다. 해설이 존댓말로 쓰여 있어 도슨트들의 해설을 옆에서 바로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도슨트들이 각 작품의 해설 끝마다 붙여 놓은 감상 팁들도 그림을 감상하는 데 좋은 힌트가 된다.
한 작품에 대한 해설은 4, 5페이지 정도이다. 4, 5페이지면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자기 전에 잠깐 짬을 내어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다. 하루에 그림 하나와 4, 5페이지의 글. 그만큼의 위로와 교양이 지친 하루의 끝에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 많은 그림을 보려고 애쓰기보다는 그림 하나에 집중하며 그 그림이 전해주는 아름다움과 감정에 위안을 얻는다. 아주 적은 양이어도 지식을 쌓았다는 것 자체가 작은 성취감을 준다. 하루치씩 작품 해설을 읽을 때마다 목차와 찾아보기의 체크박스에 체크를 할 수 있게 해, 이 작은 성취가 눈으로 보이게 한다. ‘사는 게 쉽지 않을 때 이 노래를 꺼내 먹어요’라는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지치고 힘들 때 이 책을 꺼내 교양 한 스푼, 위안 한 스푼씩 떠먹게 하는 게 이 책의 의도가 아닐까. 그 의도가 독자들에게 와 닿기에 호응을 얻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이 요즘 서점에 넘쳐나는 ‘하루 1페이지 OO’, ‘365일 OO’ 유의 책 중에서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큼 특출나지는 않다. 도판의 화질도 도슨트들이 설명하는 디테일을 볼 수 있을 만큼 좋지는 않다. 직접 그 미술관에 가서 작품 실물을 보고 확인하라는 의도라 해도 코로나든 재정 상황이든 미술관에 직접 가기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서, 본문에 설명된 디테일을 포착한 세부 도판을 넣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좀 더 깊이 있게 미술사 지식을 쌓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가볍고 얕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하루에 필요한 만큼의 위로와 지식을 주는 것도 책이 할 수 있는 소중한 역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