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그림과 서양명화 - 같은 시대 다른 예술
윤철규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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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미술사가 전공이지만 한국미술사 과목들도 들었는데,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릴 때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해했던 적은 없다. 서양미술사도 한국미술사도 각각 공부할 내용이 많아 공부하기에 바빴을 뿐. 그런데 이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 옛 그림과 서양 그림의 대조표를 만든 사람이 있다. 동양 미술 전공자인 그는 그림의 소재와 주제, 화가 자신의 개인사, 그려졌을 당시의 시대상, 미술사에서의 위상 등을 연결고리로 삼아 60쌍의 조선 그림과 서양 그림을 엮어냈다. 그렇게 엮은 조선과 서양의 명화들을 이야기한 책이 『조선 그림과 서양명화』다. 


  책을 읽기 전 가장 염려되었던 것이 ‘아무리 봐도 서로 연관성이 없는 조선 그림과 서양 그림을 짝지어서 억지로 비교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을까’였다. 저자 자신도 조선 그림과 서양 그림을 어떻게 짝 지을지 고심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우선 현재 남아 있는 우리 그림이 서양 그림들에 비해 너무 적어 짝을 지을 그림을 찾기 쉽지 않고, 동서양의 미술관이 너무 달라 섣불리 연관시키고 비교할 수 없다.


 (위) 정선, <금강전도>, 18세기. (아래) 카날레토, <대운하 입구>, 1730년경.

정선과 카날레토는 18세기 조선과 유럽에서 일어난 여행 붐 속에서 실제 풍경을 토대로 자신들만의 기법을 활용한 풍경화를 그려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소재와 주제가 겹치는 조선과 서양의 그림들이 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림에는 화가와 주문자와 얽힌 인간사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그 그림이 그려진 시대와 사회의 사상과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같은 소재를 그린 두 그림(불교의 지옥을 그린 작자 미상의 <지장시왕18지옥도>와 기독교의 지옥을 그린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최후의 심판>)을 엮기도 하고 같은 주제를 그린 두 그림(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구원을 주제로 한 이자실의 <도갑사 관음32응신도>와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을 엮기도 한다. 둘 다 봄 풍경을 그렸지만 말년의 운은 서로 정반대였던 조선의 화가와 서양의 화가(<탐매도>를 그렸다고 전해지는 신잠과 <프리마베라>를 그린 산드로 보티첼리)를 비교하기도 하고, 여행 붐의 시대에 실제 경치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더한 풍경화를 그려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두 화가(<금강산도>를 그린 정선과 <대운하 입구>를 그린 카날레토)를 비교하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 연결될 수 있는 그림들을 찾으려다 보니 다른 미술사 책에서는 많이 언급되지 않았던 작품들(조선 불화나 행사 기록화들)이 담기게 되어, 독자들에게 다소 낯선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저자는 한 쌍의 조선 그림과 서양 그림을 깊이 있게 비교 분석하기보다는, 조선 그림을 먼저 설명한 뒤 그와 비교되는 서양 그림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 주제당 4, 5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니 한 작품당 2, 3페이지 정도의 설명이 들어가는 셈이다. 조선에서 이런 그림을 그렸을 때 서양에서는 이런 그림을 그렸구나, 이런 면에서 두 그림이 한 쌍으로 엮였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각 작품의 조형적 특징과 그 작품이 그려진 시대상이 충실하게 설명되어 있어 미술사뿐만 아니라 역사도 함께 공부하는 느낌이다. 저자가 동양 미술 전공자이기 때문에 서양 미술사 쪽 설명이 상대적으로 부실할까 걱정했는데, 서양 쪽 작품들도 작품의 특징과 배경 모두를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조선 미술 부분과 서양 미술 부분의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조선 미술과 서양 미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도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저자는 조선 미술이 서양 미술보다 우월하다고도 자랑하지도 않고, 서양 미술보다 못하다고 열등감에 빠져 있지도 않다. 그저 조선의 화가들이 이 시기에 이런 그림을 그렸고, 동시기에 서양 미술가들은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할 뿐이다. 독자들이 우리 것과 남의 것 모두를 잘 알기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균형 잡힌 시선이다.


각 주제의 첫 페이지에는 각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던 그림들의 제작 연도가 정리된 연대표가 있어, 조선 미술사와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나란히 볼 수 있다. 

출처: 인터넷 서점 해당 도서 상세 이미지

 

  독자들이 우리 미술과 서양 미술 모두를 잘 알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각 주제 첫 페이지의 연대표이다. 이 연대표에는 그 주제 안에서 비교되는 한 쌍의 조선 그림과 서양 그림, 비슷한 시기의 그림들이 시각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두 그림뿐 아니라 두 미술사의 흐름까지 나란히 비교해 볼 수 있다. 다만 각 시기(고려 말과 조선 전기, 조선 중기, 조선 후기)별로 나눠진 각 챕터 앞에 각 시기의 조선 미술사와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정리하는 글이 있었다면 두 미술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또 한 가지는 풍부한 도판이다. 너무 어둡게 인쇄되어 디테일이 잘 보이지 않는 <수월관음도>, 해상도가 작은 도판을 확대해서인지 네모난 픽셀이 그대로 보이는 <독조도>를 제외하면 도판들의 화질도 좋은 편이다. 책 자체의 판형이 크고 도판도 큼직큼직하게 배치해 그림을 감상하기에도 좋다. 본문에서 설명하는 부분만 따로 클로즈업한 세부 도판도 함께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조선 그림과 서양 그림의 심도 깊은 비교 분석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서양  화가들이 이런 그림을 그릴 때 우리 화가들은 이런 그림을 그리며 한국 미술사를 이루어갔다는 것을 확인해 보는 것만으로 흥미롭다. 각 그림이 그려질 때의 시대상도 충실하게 설명되어 우리 역사의 흐름과 서양 역사의 흐름도 비교해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독자 스스로 또 다른 주제나 연결고리로 조선 그림과 서양 그림을 짝지어 보고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P. S. 정작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된 <모나리자>는 본문에서 조선 그림과의 비교 분석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모나리자>가 1503년에서 1506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니 이 책에 실린 조선 그림들 중 이상좌의 <나한도>나 신잠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탐매도>가 비슷한 시기에 그려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둘 다 <모나리자>와 짝을 짓기에는 성격이 너무 다른 작품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모나리자>와 짝지을 만한 조선 그림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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