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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에 대한 생각 - 세계는 점점 더 부유해지는데 우리의 식탁은 왜 갈수록 가난해지는가
비 윌슨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2월
평점 :
스마트폰의 헬스 앱으로 매일 그 날 먹은 음식들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입력한 음식들의 정보를 바탕으로 앱에서는 그 날의 영양 균형 점수를 매기는데, 내 평균 영양 균형 점수는 5, 60점대다. 포화 지방과 나트륨은 매일 과다하게 섭취하는데 비타민 A, 비타민 C, 칼슘, 칼륨, 철분 같은 필수 영양소는 하루 권장량의 절반도 섭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삼 시 세 끼 굶지 않는 수준을 넘어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칼로리를 섭취하는데 정작 내 몸에 꼭 필요한 영양은 부족하다.
너무 많이 먹는데 정작 영양이 부족하다는 모순은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십억 명이 겪고 있는 문제다. 농업 기술의 진보로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과식과 영양 부족이 동시에 나타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잘못된 식습관으로 인해 고혈압, 제2형 당뇨병, 뇌졸중, 각종 암에 걸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영국의 음식 작가 비 윌슨Bee Wilson은 『식사에 대한 생각』에서 우리가 지금 왜 이렇게 먹게 되었는지를 파헤친다.
미국의 영양학자 배리 팝킨Barry Popkin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인간 식단의 변화를 4단계로 분류했다. 1단계는 인간이 아직 농경을 시작하기 전 사냥과 채집으로 식량을 구했을 때다. 최초의 인간은 자연에서 구한 다양한 채소와 야생 짐승 고기로 저지방 식사를 했고, 대체로 영양 결핍을 겪지 않았다. 2단계는 기원전 2만 년경 농경과 함께 시작되었고, 이 시기 인간의 식단은 곡물 위주로 바뀌었다. 농경으로 여분의 식량이 생기면서 문명을 발전시킬 여력도 생겼지만, 기근이 들었을 경우 식사의 양과 질이 떨어져 인간은 결핍성 질환들에 시달리게 되었다. 3단계에서 농업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더 다양하고 풍성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더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게 되면서 결핍성 질환 대부분이 줄어들었다. 우리는 지금 4단계에 위치해 있고, 이전의 1, 2, 3단계 시기와 달리 농업의 기계화, 대규모 국제 식품 산업의 발전으로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지방과 육류, 설탕을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먹고 섬유질은 덜 먹고 있어 영양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고, 이 불균형이 우리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지금의 4단계를 넘어서 5단계로 가길 바란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5단계는 채소 같이 몸에 좋은 음식으로 건강하게 식사를 하되, 즐거움을 위해 가끔 입에는 달지만 몸에는 좋지 않은 음식도 먹는 것이다. 누군가는 다이어트 때문에 고민하는데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는 굶주리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서, 이 세상의 모두가 건강하게 먹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에서 식사에 대한 저자의 모든 고민과 분석, 성찰, 제안이 시작된다.
우리가 5단계로 넘어서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더 기름지고 더 달콤한 음식에 대한 욕망 때문에 건강한 음식을 포기하는 우리 개개인의 의지 부족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의 정부들이 전쟁으로 고통 받은 국민들에게 더 많은 양의 식품을 제공하는 데만 힘썼을 뿐, 식품의 질에는 그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다. 거대 다국적 식품 기업들은 칼로리는 높지만 지방과 당분만이 가득한 가공식품, 패스트푸드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고, 매스미디어로 끊임없이 광고를 내보내 소비자들이 어린 시절부터 건강에 나쁜 자기들의 상품에 입맛을 들이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의 정부들, 특히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국민들이 건강에 좋은 식품을 먹을 수 있도록 돕기보다는 자기 나라에까지 침투한 다국적 식품 기업들의 이윤을 얻는 데 더 힘을 쏟는다. 빈민층은 비싼 채소와 과일 대신 값싸고 입을 즐겁게 하며 칼로리도 채워주는 패스트푸드,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전 세계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먹고 살지 못하는 것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고, 더 근본적이고 뿌리 깊은 사회 구조적인 원인이 있음을 저자는 분명히 밝힌다.
하지만 더 많이, 더 기름지게, 더 달게 먹는 현재의 추세를 부추기는 정부와 기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도록 도우려는 정부들과 단체들의 노력을 이야기한다. 칠레 정부는 2016년 설탕이 들어간 탄산음료에 18퍼센트나 되는 세금을 물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시리얼 상자에서 모든 만화 캐릭터를 없애는 식품법도 통과시켰다. 아이들이 설탕이 가득 든 시리얼을 먹게 유혹하는 데 만화 캐릭터들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고-설탕 함유량 높음’, ‘경고-포화지방 함유량 높음’ 등 꼭 필요한 내용만 눈에 띄도록 식품 라벨을 단순화시켜 식품을 구매하는 시민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했다. 암스테르담 시의회는 과체중 아동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2012년부터 건강 체중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현재 암스테르담의 학교들에서는 아이들이 교내에 케이크, 초콜릿, 심지어 당분이 많은 과일 주스를 가지고 올 수 없다. 암스테르담 내 120개의 ‘특별 개입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생일에도 케이크와 과자 대신 채소 꼬치를 친구들과 나누어 먹는다. 영국의 자선 단체 푸드 파운데이션Food Foundation은 농부와 병원, 슈퍼마켓, 출장 요리사 등과 협업하며 영국 사람들이 채소를 더 많이 먹을 수 있도록 홍보하고 있고, 또 다른 자선 단체인 알렉산드라 로즈Alexandra Rose는 지역 시장에서 과일과 채소를 무료로 살 수 있는 상품권을 런던의 가정들에 전달했다. 외딴 섬나라나 산간벽지까지 다국적 기업의 가공식품이 침투한 지금의 세상에서, 이러한 활동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먹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저자는 정부나 단체의 노력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 또한 제시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건강한 식사 전략은 아주 당연하고 단순한 것들이다. 간식보다는 식사에 집중하는 것, 다양한 품종의 채소와 과일들을 먹어보는 것, 자기 손으로 자신이 먹을 음식들을 직접 만들어 보는 것, 오감을 활용해 자신이 먹을 식재료들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는 것. 그러면서 특정한 슈퍼푸드 몇 가지만을 강조하거나 모든 음식이 건강하지 않은 음식인 양 엄격한 식단만을 강조하는 태도는 경계한다.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기보다는, 몸에 좋은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어 먹도록 권유한다. 저자는 독자들이 편식하는 아이들인 양 훈계하는 대신, 자연스럽고 건강하고 즐겁게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하고 있다. 그 조언 중 독자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야기는 그냥 넘겨버리라고까지 말한다. 이런 저자의 균형 잡히고 유연한 태도 덕분에, 저자가 훈계하거나 설교하는 것을 싫어하는 독자더라도 자연스럽게 ‘이제부터는 더 건강하게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고기나 가공식품, 패스트푸드를 완전히 끊지는 못하지만 고기를 먹을 때 배추쌈이나 상추쌈, 나물 반찬을 더 많이 먹는 식으로 작은 노력이나마 더 하게 되었다. 싫어하는 반찬을 억지로 삼키기보다는 내가 잘 먹지 않았던 채소 반찬들도 나름대로 맛이 있고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이렇게 책을 읽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노력들이 이어질 때 저자가 바라는 모두가 건강하게 먹고 건강하게 사는 세상에 한 걸음씩 더 가까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