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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
박찬효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1월
평점 :
*영화 <언니는 말괄량이>(1961) 스포일러 포함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남자 상사와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이 내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지금은 딱히 성차별이라는 게 없지 않나요? 오히려 여자들한테 더 유리한 세상이잖아요?” 나는 이렇게 되물었어야 했다. 면접 볼 때 “결혼할 나이인데 앞으로 결혼할 계획 있나요?”라는 질문 받아본 적 있어요? 집 앞 골목에서 갑자기 모르는 남자한테 끌려가서 강간당할 뻔한 적 있어요? 글을 쓸 때 조금이라도 페미니즘 성향이 드러나면 악플을 받을까 두려워서 자기 자신을 검열해 본 적 있어요? 하지만 그때 나는 뜻하지 않은 질문에 당황해 논리적으로 답하지 못하고 두서없이 몇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한국의 가족과 여성혐오, 1950~2020』는 내가 정확히 답하지 못했던 그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표면적으로는 여권 신장이 된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경쟁 상대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미디어에서는 그 사실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가 사실은 이전 시기부터 지속되어 왔던 것이고, 각 시기마다 국가가 가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가족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달라져 왔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1950년대부터 2020년 현재까지 신문, 잡지, 영화, 드라마 등의 미디어에 이러한 여성혐오가 어떻게 반영되어 왔는지 추적한다.
1950, 60년대의 한국 영화에도 자기주장이 강해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실질적으로 가부장제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여성상을 상상한 존재에 불과했기에, 그저 과장되고 희화화된 가상의 캐릭터로 남았다.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해 실질적으로 가부장제 질서를 흔들 가능성이 있는 여대생은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사치스러우며 정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1950, 60년대 미디어에 나타났다. 똑같이 고향을 떠나 먼 타지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공부하는데도, 남자 대학생들은 자신의 발전을 위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 여대생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지고 치정 사건에 휘말리는 부정적인 모습이 부각되었다. 기혼 여성은 사회 활동을 해도 ‘가정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서 해야 했다. 부업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은 여러 신문 기사들에서 장려되었지만, 기혼 여성이 자아실현을 위해 사회 활동을 해야 한다는 언급은 당시의 신문 기사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가정의 번영이 곧 기혼 여성의 자아실현으로 여겨졌으며, 사회에서 명성을 드날릴 만한 재능을 갖고 있어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보다는 주부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 더 중요시되었다.
1980, 90년대에는 여성에게 불리했던 법들이 개정되는 등 표면상으로는 여권이 신장되는 듯했지만, 모든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가부장 권위의 추락과 여권 신장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경제력과 도덕성을 모두 갖추고 가족을 모범적으로 이끄는 가부장은 현실에서 존재하기 어려웠기에, 실제로 모범적인 가장이 되기보다는 가족 제도를 무너뜨릴 위험이 있는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가부장제라는 신화를 지키려고 했다. 사회에 진출해 남성들의 경쟁자가 될 여대생에게는 ‘학업을 소홀히 하고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남성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추구한다’는 편견이 씌워졌고, 이혼녀는 과거의 여성들처럼 인내하지 않고 이기적인 이유로 이혼을 하고, 자녀들도 돌보지 않으며 성적으로 문란한 이미지로 미디어에서 그려졌다. 사회 활동을 하려는 여자들을 가정에 묶어두려는 전략도 나타났다. 1990년대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여주인공 박지은(하희라)은 대학원에 진학할 정도로 공부 욕심도 많고 당찬 여성이었지만, 남주인공와 사랑에 빠지면서 공부를 중단하고 모범적인 전업주부가 된다. 딸의 재능을 알고 딸이 사회 활동을 할 것을 기대했던 여주인공의 어머니(윤여정)가 결혼을 말리며 하는 말은 2020년인 지금에도 와 닿을 정도로 현실적이고 절절하다.
“제발 넌 공부해. 공부해서 엄마가 못 가진 또 하나의 널 확실하게 빛내면서 살란 말이야. 나처럼 결혼이란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져서 나 자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이렇게 되지 말고. 엄마 친구들 지금 사회적으로 한다 하는 친구들 더러 있다. 걔들 만나면 다르다. 빛이 나. 후광 같은 게 있단 말이야. 자신 있고 당당하고. 엄만 그런 친구들 만나면 참 비참해져. 아는 게 살림밖에 없으니까. 화제도 궁색하고, 자신도 없고. 엄마 죽고 싶어. 너 그렇게 되고 싶어?”
그러자 여주인공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하는 사람 열심히 뒷수발해 주는 거 얼마나 아름다워? 사회활동이 반드시 더 가치가 있는 건 아니잖아. 내 가정 하나 잘 꾸리는 게 가장 근본적인 사회 기여, 국가 기여야. 혼신을 다해서 어른 모시고, 남편 비뚜로 안 나가게 내조하고. 아이들 문제 안 만들고. 그게 얼마나 가치 있고 아름다워?”
행복한 결혼이 여성에게 진정한 자아실현이며, 주부로서의 헌신이 무엇보다 위대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각각 약사와 모델이라는 직업을 통해 경제력을 갖추고 경력을 쌓아 나가던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결혼 전에는 자기중심적인 철부지였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렇게 신세대에 속하며 학력이 높거나 경제력이 있는 여성들조차 가족 제도로 포섭하려는 모습이 당시 미디어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남성보다 우월한 능력을 지닌 알파걸, 따뜻한 모성과 사회적 능력을 모두 갖춘 워킹맘이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며, 2010년대 이후로는 국가 차원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 방지를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언뜻 보면 국가가 여성의 활발한 사회활동을 지원하면서 성 평등을 실현하려는 것 같지만, 더 복잡한 맥락이 숨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지금까지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면서 아버지의 경제력만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워져, 가족 제도를 지탱하는 데 여성의 경제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도 부부의 가사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직장 일과 가정 일을 병행해야 하는 기혼 여성이 남성만큼 자아실현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공론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로 진출한 여성들이 경쟁상대로 떠오르자 20대 남성들 중 상당수가 자신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반페미니즘 정서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군대를 다녀온 학점 3.5점인 남자와 학점이 4.0인 여자 중 취업이 더 잘 되는 것은 남자이고,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놓인다.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가 OECD 국가 중 가장 크고, 재력과 권력을 놓고 사회 최상층에서 싸우는 경쟁은 남성과 여성 사이가 아니라 주로 같은 남성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런데도 미디어에서는 성공한 전문직 기혼 여성의 모습이 부각되고 여학생의 취업이 쉬운 것으로 왜곡되며, 전업주부가 남편의 경제력에 기생하는 존재로 그려져, 남성의 적이 여성이라고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
저자는 더 나아가 여성 혐오가 남성과 여성 간의 대립뿐만 아니라 여성 안에서의 갈등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대학 진학, 취업에서의 경쟁이 심해지고 경제적 문제로 결혼과 육아가 힘들어진 지금, 가정을 지탱하고 더 나아가 자식들을 통해 더 나은 사회적 지위로 올라가려는 모성 경쟁이 심해질 것이다. 여성혐오의 최종 도착지는 여성 간의 갈등과 경쟁의 심화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가부장제 질서가 유지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개인은 각 시대의 사회 질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국가는 그 사회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며 미디어는 그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이용되어 현실을 왜곡하곤 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남편, 여대생, 전업주부, 취업주부 등 다양한 존재들이 각 시기의 상황에 따라 특정한 역할을 요구받아 왔다. 우리가 누구여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규정하는 사회 질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고, 신자유주의 시대인 지금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며, 나보다 우위에 서서 내 밥그릇을 빼앗는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분노와 혐오를 쏟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평등하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