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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
하현 지음 / 빌리버튼 / 2019년 2월
평점 :
영어는 내게 외국어라기보다 생존 수단이다. 취업과 재취업을 위해서는 영어 점수가 있어야 되는데 토익, 토플, 텝스, G텔프 등 각종 영어 능력 시험들은 유효 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는다. 싫어도 2년에 한 번씩은 영어 시험을 봐야 하는 나로서는 영어 공부가 의무였기에, 낯선 언어를 새롭게 배우는 설렘은 느낄 수 없었다.
그런 설렘을 느끼게 해 준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대학원 때 불문과 교수님의 조교로 일하게 되면서 프랑스어를 알아두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부에서 진행되는 교양 프랑스어 수업을 청강했다. 막상 조교로 일하고 보니 프랑스어가 그렇게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예전부터 호기심과 호감을 느끼고 있던 언어였기 때문에, 청강을 마치고 나서도 독학을 했다. 문법 위주로 독학해 말하기와 듣기는 잘 못하지만 프랑스어 텍스트를 어느 정도 독해할 수는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예전이라면 그냥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였을 각종 프랑스어 텍스트들을 직접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기쁨이 생겼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더 넓어졌다는 기쁨이었다.
‘낯선 언어를 배우면서 만난 의외의 기쁨’을 담았다기에,『어쩌다 보니 스페인어였습니다』도 내가 느낀 것 같은 기쁨을 이야기하는 책인 줄 알았다. 읽어 보니 이런 기쁨이 나오기는 한다. 저자는 길에서 지나쳤던 작은 카페의 이름이 스페인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TV에 나오는 스페인어권 사람들의 말에서 아는 단어가 들릴 때, 배움의 결실을 확인하는 작은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궁금해 하고 기대했던 스페인어와 스페인어권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었다. ‘rr’은 그냥 ‘r’로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혀를 굴려서 ‘ㄹㄹㄹㄹ’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 스페인어에서 의무를 나타내는 표현에는 개인의 의무를 말하는 것과 공공의 의무를 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Mi amor(내 사랑)’ ‘Mi cielo(내 하늘)’, ‘Mi vida(내 생명)’, ‘Mi tesoro(내 보물)’ 같은 미사여구로 연인을 부른다는 점에서 스페인의 정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소울메이트를 ‘Media naranja(오렌지 반 쪽)’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와 닿는 사랑스러운 표현이라고 느꼈다.
같은 라틴 계열 언어권이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프랑스어와 비슷한 점들이 많아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었다. 일반적인 것에 붙는 부정관사 ‘a/an’과 특정한 것에 붙는 정관사 ‘the’, 두 개의 관사만 알면 되는 영어와 달리, 스페인어와 프랑스어 모두 여성형과 남성형, 단수형과 복수형으로 관사가 나뉜다. 그리고 두 언어 모두 영어와 달리 반말과 존댓말이 있고, 반말과 존댓말에 해당하는 인칭과 동사 형태가 따로 있다. 또한 스페인어에도 프랑스어에도 그냥 ‘나는 옷을 입는다/샤워한다/면도를 한다’고 해도 될 텐데 직역하자면 ‘나 자신이 입게 한다/샤워하게 한다/면도를 하게 한다’는 ‘재귀’의 개념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스페인어를 제대로 공부한다면 프랑스어에서 공부한 문법 개념들이 꽤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들 중 어떤 이야기를 해도 몇 발자국만 나아가고 만다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주제들은 더 깊이 파고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제들이다. 스페인어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기본형은 남성 단수형인데, 왜 여성은 기본형이 될 수 없는가 하는 의문. 사용자가 수천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으로서 영어나 스페인어 같이 전 세계 수십 개 국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쓰는 ‘강한 나라의 말’이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러움. ‘존재’와 ‘상태’를 나타내는 be 동사가 따로 있다는 것. 정말 흥미롭고 더 깊게 풀어낼 여지가 많은 주제들인데, 그에 대해 사유를 하기보다는 상념들을 늘어놓는 데 그친다. 좋은 에세이집은 책 한 권을 관통하는 주제에 집중하고, 책에 실려 있는 각 글마다 주제가 다르다면 에세이집이 아니라 잡문집이나 일기라고 한다. 이 책은 작가의 머릿속을 흘러가는 상념들을 풀어놔서인지 스페인어나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 외에 너무 많은 것들을 쏟아 놓아 '스페인어' 또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나'에 대한 에세이집이라기보다는 잡문집이나 일기장에 가깝다.
이 책이 '스페인어'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작가가 스페인어에 대해 호기심은 있지만 열의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그저 배워 본 적이 없는 낯선 언어이고, 가까운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언어가 스페인어여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기로 선택했다. 함께 학원을 다니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스페인어권에 여행을 가기나 유학을 갈 생각도 없고, 스페인어를 아주 잘 하겠다는 생각도 없다. 그래서 복잡한 동사 변화나 시제 같은 스페인어의 어려운 부분을 공부하기 싫어한다. 학원에 가다 쓰러지기까지 해 ‘자체 여름방학’을 한 달간 가진다. 몸에 무리가 가서 쉰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방학 동안 스페인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아 남들에게 뒤쳐져 의욕도 잃어가는 심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딱히 아프거나 중요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마지막 수업도 가지 않는다. 마지막 수업을 가지 않았다는 말 뒤에 ‘아, 역시 놀러가지 말고 학원에 갔어야 하는데...’라는 문장이 붙은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아들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그렇게 가고 싶어 했던 마지막 외국어 수업에 참석하지 못한 한 영화 주인공을 생각하면 이런 태도가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내가 스페인어라면 작가에게 “너 나한테 관심이 있기는 해?”라고 물었을 것이다. 작가 본인도 이야기한다. 스페인어를 사랑하지 않고 약간의 흥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사랑은 노력 밖의 영역이라고.
물론 작가의 말대로 배움이 숭고할 필요는 없고, 외국어를 배우는 데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도 않다. 라틴어 전문가인 한동일 교수도 『라틴어 수업』에서 있어 보이려고 라틴어를 공부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했고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작가는 이 책에서 스페인어 자체보다는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고 궁금한 것은 마음껏 질문할 수 있게’ 된, ‘조금 더 뻔뻔해지고 자유로워진’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하고.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해서 성과를 얻어내려는 일에 지친 사람들은 별다른 열의 없이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려는 마음에 공감하고,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위로를 얻고, 꼭 스페인어가 아니더라도 사소한 것에 새롭게 도전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것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ㅇㅇ해도 괜찮아’ 류의 에세이는 이미 충분히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일상을 좀 더 새롭게 만들면 돼.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내게 남는 게 있을 거야. 이런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열정을 강요하는 꼰대도 아니다. 누구나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니 공감할 수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글 쓰는 사람이라면 남들과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생각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을 놀랍도록 날카롭게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포착하는 글을 읽고 싶다. ‘내가 이래서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 읽는 사람이구나’를 실감하게 하는 글을 만나고 싶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책으로 쓰기로 한 소재나 주제에 대해 호기심 이상의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자신이 정말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쓸 수 있는 소재를 골라야 했다. 애정이나 열정이 아니라 증오나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더라도 한 권의 책으로 만들 만큼 강렬한 감정과 집중력을 끌어내는 소재여야 했다. 자신에게 한 책을 관통하는 열정과 애정도 이끌어내지 못하는 소재를 골랐으니, 그 소재를 깊게 파고 드는 대신 자신이 일상에서 느끼는 상념들과 뒤섞인 잡문집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독자인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쉽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