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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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다 보니 디지털 미디어가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에 회의적이게 되었다몇 년째 위층 주인집의 층간소음에 시달려 온 나는세입자가 피해자일 경우 층간소음에 대응하기가 더 어렵기에 세입자를 층간소음에서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청와대 청원을 올렸다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단 15명이었다작년 10월에는 나를 포함해 20만 명이 넘는 소비자들이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에 동의했지만올해 진행된 도서정가제 관련 민관 합의에는 그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엠네스티 같은 국제 NGO 단체에서 이메일로 서명 운동의 링크를 보내줄 때마다 꼬박꼬박 참여하지만너무 먼 곳의 일이라 과연 이게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는 일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렇게 실망이 거듭되다 보니 내가 뭔가를 해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점점 줄어들었다. “세상의 변화는 당신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이 책의 홍보 문구도 와 닿지 않았다나 같이 이름도 없고 다른 사람을 끌어 모을 매력이나 재주도 없는 사람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블로그에 글을 올려도 좋아요’ 한두 개나 받을 뿐이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이야기한다세상의 변화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미국의 다섯 살 어린이 캐서린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말라리아로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아프리카에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막아줄 모기장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했다캐서린과 가족들은 피자 상자와 인형망사를 이용해 모기장으로 보호 받는 아프리카 가족 이야기를 다룬 인형극을 공연하면서 기부금을 모았다이 이야기가 주요 언론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퍼져 나가면서 모기장 보내기 운동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세네갈 가구의 80퍼센트가 모기장을 갖게 되고 말라리아 발병 건수가 1년 만에 41퍼센트 줄어드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평범한 다섯 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문제 해결은 요원하지만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소개한다지금 이란의 이슬람 정권은 최고 지도자나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긴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고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나 사람들의 발언을 엄격하게 검열하고 있다그럼에도 이란 국민들은 시위를 하다 정부군의 총탄에 죽어간 사람의 모습을 유튜브에 올리고여러 나라의 음악가들은 <아자디-이란의 자유를 위한 노래 모음>이라는 앨범을 만들어 웹사이트에 올리는 등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중국 공산당 정부는 구글유튜브페이스북위키피디아트위터를 만리방화벽으로 막고 200만 명이 넘는 정규직 인터넷 경찰들이 인터넷을 검열하게 하고 있다심지어 네티즌들이 시진핑 주석을 곰돌이 푸 캐릭터에 비유했다는 이유로 자국 내 온라인 사이트들에서 푸 이미지를 모두 삭제해 버리기까지 했다그럼에도 중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소셜미디어에서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북한의 김씨 정권은 70년이 넘도록 집권하면서 주민들의 삶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지만주민들이 북한 외부 세계를 알 수 있도록 캐나다 댈하우지 대학에서는 외부 세계의 모습이 담긴 USB를 물병에 쌀과 함께 넣어 황해에 띄워 보내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이 세 나라의 억압적인 정권이 무너지고 국민들이 자유를 찾는 것은 아직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하지만 이 세 나라에서 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저자는 지금의 변화로 인해 자유와 진실을 막는 장벽이 언젠가 반드시 무너질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의 힘을 믿지만 그것의 위험성 또한 잊지 않는다인터넷 세상에 공짜가 있다면 바로 당신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섬뜩하게 다가온다우리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온라인 쇼핑을 하고 SNS에 게시물을 올리면서 거대 디지털 미디어 기업에 우리의 성별나이주소전화번호주민등록번호개인적인 취향 같은 개인정보를 거리낌 없이 노출한다저자는 실제로 수백만수천만 명의 평범한 사람들의 개인정보가 해킹으로 노출된 사례들을 이야기하면서디지털 매체의 강점이 악용된다면 인권 증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정부와 거대 디지털 미디어 기업범죄 조직테러 집단이 인터넷을 이용해 빅 브라더처럼 수백만수천만 명을 감시할 수 있는 요즘우리 모두가 기본권인 사생활권을 보호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그는 이야기한다그럼에도 개인에게 모든 사람의 인권을 증진하기 위한 구체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가장 많이 주어진 시대가 지금이라고 그는 믿는다.


  디지털 미디어를 악용해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할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지만우리 또한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 그들에게 맞설 수 있다그리고 내가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지금은 조회수도 낮고 별 호응도 없어도우연히 그 글을 읽은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지금 당장 변화를 체감할 수 없는데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고 믿고 노력하기는 쉽지 않지만매일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조금씩 한다면 그 노력들이 쌓여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더 큰 성과로 돌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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