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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개츠비 ㅣ 웬일이니! 피츠제럴드 X시리즈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맥스웰 퍼킨스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6월
평점 :
친애하는 H군
코로나 때문에 요새 도서관엔 못 가고 있어. 대신 사 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던 책이 여덟 권이나 돼서, 두 달 정도는 이걸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얼마 전 피츠제럴드의 여정을 따라가는 책을 읽고 났더니 피츠제럴드와 담당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가 나눈 편지를 모은 서간집도 읽고 싶어졌어. 작가와 편집자가 나눈 이야기니 이제 막 편집자가 된 나로서 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사 놓은 지 몇 달 만에 이 책을 읽게 됐지.
그런데 의외의 진입 장벽이 나를 가로막았어. 바로 돈 이야기. 피츠제럴드는 한때 작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누렸지만, 사치스러운 생활과 아내의 병 때문에 자신이 번 돈을 탕진하고 평생 빚에 허덕여야 했어. "편집자님, 돈 좀 빌려 주세요.", "편집자님, 돈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책 전체에 걸쳐서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피츠제럴드가 아무리 재치 있는 문장으로 이야기해도 돈 빌려달라는 얘기는 유쾌하지 않아. 텍스트로만 보는 나도 짜증이 나는데 퍼킨스는 한 번도 짜증내거나 꾸짖지 않고 돈을 빌려주더라. 그걸 보면서 편집자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인내심이 아닐까 싶었어.
그래서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나도 퍼킨스처럼 피츠제럴드의 돈타령에 익숙해지더라. 내가 지금 출판사에서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고민을 이 사람들도 하고 있으니 공감도 됐고. 표지는 어떤 색으로 하고 어떤 그림, 어떤 홍보 문구를 넣을 것인지. 어떤 단편을 싣고 어떤 단편을 싣지 않을 것인지. 어떤 장면을 살리고 어떤 장면을 버려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지. 책의 제목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 피츠제럴드는 이 표지 그림은 등장인물을 정말 정확히 표현했다, 이 홍보 문구는 너무 식상해 보인다, 이 제목보다는 저 제목이 좋겠다, 이 장면은 작품의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에 절대 삭제할 수 없다는 식으로 자기 작품에 대해 퍼킨스와 함께 고민해 왔어. 서로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지만 둘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피츠제럴드는 퍼킨스의 글 보는 눈과 작품에 대한 통찰력을 신뢰하고, 퍼킨스는 작가의 소신을 자신이 꺾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노력해. 편집자로서 이렇게 함께 좋은 책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작가를 만나고 싶어.
그런데 이들이 이야기하는 작품 중 내가 읽어 본 거라곤 '위대한 개츠비'와 '벤자민 버튼'밖에 없으니,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아무래도 내가 읽어 봤기에 잘 알고 있는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부분에서 집중도가 높았지. 이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놓고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고.(특히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을 둘러싼 둘의 의견 차이가 흥미로웠어. 피츠제럴드가 제안한 제목('트리말키오', '웨스트에그로 가는 길', '높이 뛰어오르는 연인' 등등)들은 정말 무슨 책인지 감도 안 오고 어려운데, 퍼킨스가 제안한 '위대한 개츠비'는 지금까지도 '개츠비가 정말 위대한가, 정말 위대한 거면 왜 위대한 건가'를 놓고 독자들이 끊임없이 토론하게 만들었거든.) 내가 영문학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피츠제럴드와 퍼킨스가 이야기했던 피츠제럴드와 당시의 다른 미국 작가들의 작품을 직접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특히 피츠제럴드의 단편들. 피츠제럴드는 단편보다 장편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단편을 생계 수단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장편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을 것 같아. 그리고 헤밍웨이의 에세이집 '호주머니 속의 축제'도 읽어볼 생각이야.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보기로 몇 페이지 읽었다 반해서 사 뒀거든.)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둘의 편지에서 서로와 동료 작가들에 대한 감정이 엿보여서 흥미로웠어. 출판사에 불만이 있을 때 퍼킨스에게 툴툴거리긴 했어도 피츠제럴드는 자신과 헤밍웨이, 토머스 울프를 퍼킨스의 '아들들'이라고 할 정도로 퍼킨스를 믿고 따랐어. 다혈질이고 욱하는 성격의 헤밍웨이와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토머스 울프에 대한 마음의 앙금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둘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하고 아끼는 피츠제럴드의 마음이 느껴지더라. 퍼킨스는 그들 중간에 서서 그들 모두를 존중하면서 그들에게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내가 볼 수 있는 건 편지 속 그들 인생의 단편들이지만, 그 단편들을 가지고 그들의 삶과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게 흥미로웠어.
나는 앞으로 어떤 작가들을 만나고 어떤 글들을 만나게 될까? 이렇게 좋은 작가들을 만나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겠지. 그들이 살고 있던 당시의 미국 출판계와 내가 몸 담고 있는 한국 출판계는 정말 많이 다를 거고. 환상을 가지지는 않으려고 해. 그래도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함께 고민해 온 사람들이 있었고, 나도 함께 좋은 책을 만들어갈 작가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소망해. 좋은 편집자가 될게. 너도 좋은 작가가 되어줘.언젠가 좋은 편집자와 좋은 작가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