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
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1월
평점 :
왜 100년 전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관련 기사를 분석했을까?
너무 다른 나라의 시선을 의식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나라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치는지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세계 속에서 수많은 나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그 나라들에게 비치는 이미지가 세계 속 우리의 위상과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니까.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보는 시각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100년 전 영국 언론의 시각으로 본 조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100년 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서구를 포함한 전 세계에 문을 열었던 시기이고, 외세의 부당한 개입으로 국권을 잃어갔던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가 당시의 우리나라를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보면서, 당시 조선이 저지른 실책과 과오를 돌아보고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경계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는 왜 100년 전에 있었던 세계의 수많은 언론 중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관련 기사에 주목했을까? 『이코노미스트』는 1843년 창간되어 지금까지도 간행되고 있는 영국의 경제 전문지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00여 년 동안 세계 각지의 주요 정보를 전달해 왔으며, 자유경제가 기본 논조이기는 하지만 찬반양론을 모두 다루며 비교적 균형 잡힌 시각에서 사건을 보고 해석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이코노미스트』가 조선을 보는 당시 세계의 시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저자는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의 『이코노미스트』를 보면서 한국 관련 기사가 거의 없다는 점에 놀랐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강화도 조약,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개혁, 대한제국 성립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났지만, 국제적으로는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다. 100년 전의『이코노미스트』에서 조선 이야기가 많이 나올 때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역학 관계에 조선이 얽힐 때였다. 국가 경제 규모도 수출입 규모도 중국, 일본에 비교할 수도 없이 작은 나라, 제국주의 국가들이 탐내는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 나라였던 조선은 오직 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역학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 『이코노미스트』는 안중근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고 ‘한 한국인’으로 지칭하며 이토의 삶과 업적만 자세하게 다루었다. 일본의 근대화와 세계화에 기여하고 말이 통하는 외교 파트너였던 이토에 비해, 안중근은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심지어 “조선은 차라리 외국으로부터 현대적 행정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것이 조선 국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도 이것이 조선인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정치적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라고 일본의 조선 통치를 옹호했다. 아예 인종이 다른 서구 국가들보다는 같은 동양인인 일본이 조선을 통치하는 게 더 쉬울 것이라고 예상하기까지 했다.『이코노미스트』에 담긴 제국주의 국가의 시선은 이렇게 놀랍도록 차갑다. 그들은 타인에게 강제로 점령당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세상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무관심하고, 선의만으로 타국을 돕는 나라는 없다. 복잡한 역학관계에서 살아남으려 할 때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지금도 우리는 세계의 강대국들과 복잡한 역학관계로 묶여 있다. 그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남으려면 100년 전 조선은 세계의 이해관계 속에서 철저히 외면당했고, 조선은 그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의 예상을 깬 나라
“지난 몇 년간 이뤄진 일제의 가혹한 군국주의 통치는 원래부터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은자의 나라의 국민에게서 반항할 만한 기질과 여력을 모두 빼앗아 가버렸다.”
100년 전의『이코노미스트』에게 조선은 무기력하고 나약해, 다른 나라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마땅한 후진국이었다. 차라리 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 현대적 행정 제도와 정치 제도의 수혜를 입는 것이 도움이 되는 나라.
하지만 조선과 그 뒤를 이은 한국은『이코노미스트』의 예상을 깼다. 1919년 3.1 운동으로 한일합병은 조선 사람들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는 독립을 원한다는 것을 세계에 선포했고, 끊임없이 일본에 저항했다.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던 한국인들은 광복 이후 한국 정부가 세워지고 나서 수십 년 동안 정치적 자유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정치적 자유를 얻어냈다. 너무 자만하고 나태해져서도 안 되겠지만, 100년 전『이코노미스트』의 선입견을 깨고 국가의 정치적 독립과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이룬 것은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
이 책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의 『이코노미스트』속 한국 관련 기사 한 꼭지씩 원문과 함께 소개하고,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을 해석하는 『이코노미스트』의 시각, 그 시각에 대한 저자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개항 이후부터 한일합병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고, 본문 뒤에는 연표와 연도별 주요 역사적 사건이 정리되어 있어 당시의 한국 근현대사를 정리하기에 좋다. 그때의 조선이 어떤 점에서 세계사의 흐름에 대처하는 데 미흡했는지도 명쾌하게 짚어낸다.
하지만 현재의 『이코노미스트』속 한국 관련 기사는 100년 전과 비교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더 언급했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서문에서 지금도 『이코노미스트』에는 한국 관련 기사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 언급하지만, 100년 전의 한국 관련 기사와 지금의 한국 관련 기사를 비교 분석해 보면 『이코노미스트』를 역사의 거울로 삼아 보려는 의도가 더 잘 살아나지 않았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