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 -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 클래식 클라우드 12
최민석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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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반 고흐 투어'다.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에서 시작해서 그가 새로운 미술을 접했던 파리, 가장 뜨겁게 창작열을 불태웠던 아를,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그림을 그렸던 생레미를 지나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오베르 마을까지. 그렇게 다른 누군가의 흔적을 따라 여행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시리즈를 만났다. 문인, 화가, 사상가, 학자 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기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관심이 가는 인물을 다룬 편들부터 하나씩 읽어나갈 생각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읽게 된 편은 《피츠제럴드》 편이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 를 며칠 뒤에 보려고 했는데, 원작은 이미 읽었으니 원작자인 피츠제럴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다. 피츠제럴드와 그의 담당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서간집 《디어 개츠비》 를 사 놓고 읽지 않았는데, 그 책과 함께 읽으면 피츠제럴드를, 《위대한 개츠비》 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위대한 개츠비》 속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와 참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높이 올라가려고 했지만 결국은 저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는 점에서. 계급이라는 장벽을 넘으려고 몸부림쳤지만 결국은 넘지 못했다는 것. 가난했던 개츠비는 부유한 집안의 딸 데이지에게 다시 닿기 이해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데이지의 남편 톰에게 천박한 졸부 취급을 당한다. 부잣집 자제가 아니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두 번이나 실연을 당하고, 유명한 작가가 되면서 사랑도 되찾고 부도 얻었지만, 결국 그 부를 탕진하고 잊혀진 작가가 된 피츠제럴드. 그들의 욕망과 좌절은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아서 더 씁쓸하다. 


피츠제럴드의 흔적을 찾아가는 작가마저 이런 계급의 장벽을 느낀다. 피츠제럴드가 다녔던 프린스턴 대학에는 '코티지 클럽'이라는 식사 동아리에서 작가는 오랜 계급의 장벽과 마주친다. 식사 동아리라고 해서 밥 한 끼 같이 먹는 소박한 동아리가 아니다. 식당뿐만 아니라 응접실과 독서실, 당구장까지 갖춘 건물 하나를 따로 가지고 있고, 그곳에 매일 출장 요리사가 와서 성대한 만찬을 차린다. 학생들은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만찬을 즐기면서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이들은 졸업 후에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상류 사회의 운명 공동체가 된다. 백인 상류층 자제들이 100여 년 동안 주도해 온 클럽이기에 21세기가 된 지금도 흑인 멤버는 두 명밖에 없으며 동양인 멤버는 한 명도 없다. 피츠제럴드는 이곳에서 보잘것없는 자신의 출신 성분을 자각하며 상처를 받았다. 역시 백인 남성인 클럽 학생회장은 취재하러 클럽에 온 작가를 예의바르게 대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겉치레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여러 번 경험했지만, 백인 남성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건, '어서 나가라'는 뜻이다.") 피츠제럴드가 즐겨찾았던 호텔 커피숍에서 웨이터들은 백인들에게 잘 웃어주고 메뉴도 친절하게 설명하지만, 동양인인 작가에게는 전혀 웃어주지 않고 메뉴 설명도 하지 않는다. 백인인 피츠제럴드와 달리 작가와 우리는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차별을 겪겠지만,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시대나 우리가 사는 지금이나 계급은 존재한다. 지금의 계급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교묘하고 잔인하게 사람들을 가른다. 


이렇게 씁쓸함을 남기지만 《위대한 개츠비》가 아름다운 문체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통찰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처럼, 피츠제럴드의 여정을 따라가는 것 자체는 흥미롭다. 피츠제럴드의 인생 이야기와 얽힌 그의 작품 이야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만나는 멋진 건축물, 아름다운 풍경들까지. 그래서 이 여행기는 피츠제럴드의 작품처럼 달콤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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