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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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포물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보기왕이 온다』의 책 예고편을 보고는 호기심이 생겼다. 주인공 히데키는 어린 시절 외갓집에서 '그것'을 처음 만났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고, 현관문 너머로 키가 큰 회색 형체가  보였다. 외할머니를 찾던 '그것'은 외할머니가 지금 집에 없다고 하자 외삼촌을 찾았다. 그런데 외삼촌은 수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히데키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외삼촌도 없다고 하자 '그것'은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세 번이나 불렀다. 그러자 가만히 누워있던 외할아버지는 현관문 너머의 존재에게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 히데키에게 말했다. 문을 열어서도, 대답해서도 안 된다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 히데키에게 '그것'이 다시 찾아온다. 그 뒤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궁금해졌고, 도서관에서는 항상 대출 중일 정도로 인기가 많은 책이라 어떤 책일지 더 궁금해졌다. 그러다 드디어 이 책을 손에 넣어 읽게 되었다. 


​  첫 장에서 느낀 공포는 비현실적인 공포다. 히데키를  위협하는 '그것'은 '보기왕'이라는 괴물이다. 자신에게 대답한 사람을 산으로 끌고 가 버린다는 보기왕은, 수십 년에 걸쳐 히데키를 찾을 정도로 집요하다. 안심하고 있으면 다시 돌아와 히데키와  그의 가족들을 노리기 때문에 안심할 수 없다. 보기왕과 접촉했던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면서 공포는 점점 더 커진다. 보기왕이 존재하고 자신에게 점점 더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의 정확한 정체를 알 수 없어 더 두려운 것이다. 


​  공포가 가장 극대화되는 순간은 마침내 히데키가 보기왕과 대면하게 되었을 때이다. 히데키가 자신을 도와주는 퇴마사 코토코의 지시대로 가족들을 집에서 내보내고 보기왕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 전화에 코토코가 남긴 음성 메시지는 정반대다. 당신을 집으로 오게 한 건 보기왕의 함정이고, 지금 당장 집에서 빠져나와야 된다는 것이다. 음성 메시지를 믿지 말고 자신의 지시를 계속 따르라는 핸드폰 속 코토코의 목소리와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음성 메시지 속 코토코의 목소리. 도대체 둘 중 어느 것을 믿어야 할까? 히데키는 핸드폰 속 코토코를 선택한다. 


​  히데키가 이제는 괜찮다고 안심하고 읽는 독자도 마음을 놓았을 때,  작가는 뒤통수를 친다. 핸드폰 속 코토코는 사실 보기왕이었고, 핸드폰 속 코토코가 내린 지시도 보기왕을 퇴마하는 것이 아니라 히데키를 유인하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속임수였다. 보기왕은 히데키 앞에서 무시무시한 이빨을 드러낸다. 그래도 주인공이자 서술자이고, 영화판에서는 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하는 캐릭터인데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몰랐다. 이제 겨우 작품의 3분의 1 지점인데. 설마 정말로 죽었을까 싶었는데, 다음 장에서 무언가에 머리의 반을 먹힌 처참한 모습으로 히데키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히데키가 정말 죽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  비현실적인 존재 보기왕이 불러일으키는 첫 장의 비현실적 공포와 달리, 두 번째 장에서 느끼는 공포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두 번째 장에서 서술자가 히데키에서 그의 아내 카나로 바뀌면서, 그들의 결혼 생활이 히데키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히데키는 자신이 누구보다 헌신적인 아빠이고 적극적으로 육아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나가 생각하는 히데키는 자신이 좋은 아빠라는 생각에 도취된 사람이었다. 카나는 죽을 힘을 다해 아이를 낳았는데, 히데키는 속 편하게도 카나가 순산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를 돌보느라 책 한 페이지 읽기도 힘든데 히데키는 온갖 육아 서적을 사와서 읽어보라고 강요한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용변을 치우는 일처럼 정말 힘들고 귀찮은 일은 하지 않으면서 아이와 함께 노는 자신의 모습을 블로그에 올리고, 아빠 모임에 참여하는 데만 열중한다. 


​  여기에서 내가 느낀 공포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여자로서 느끼는 공포다. 연애할 때는 누구보다 자상하고 다정했던 사람이라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기는 힘들다는 것. 출산과 육아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도와주는 것은 '남'의 일에 힘을 보탠다는 것이지 자신의 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같이 하려는 사람을 만나기 참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운데 남편은 아이와의 행복한 모습만 블로그 포스트로 올려놓은 것을 보고 카나는 폭발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녀와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워졌다. 사회와 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카나나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들이 이런 공포를 느낄 것이다. 


​  또 하나는 관계에서 느끼는 공포다. 히데키는 카나와의 결혼 생활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카나는 히데키가 처참하게 죽었는데도 아무런 슬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져 있었다. 나는 상대방에게 잘하고 있고 나와 상대방의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상대방은 나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둘의 관계는 겉보기에만 괜찮지 속으로는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내게도 그런 관계가 있을까 두려웠다. 그리고 히데키처럼 '상대방에게 잘해주는 나'의 모습 자체에 도취되어 정작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는 배려하지도 않고 상대방을 더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지 두려워졌다. 


​  보기왕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인 공포도 피부로 와 닿을 만큼 생생하게 구축되었지만,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뒤흔드는 것은 이런 현실적인 공포였다. 히데키 가족을 돕는 퇴마사 일행은 말한다. 보기왕은 사람 마음의 빈 틈을 파고 든다고. 보기왕이 히데키를 죽이는 데 성공한 것도 히데키와 카나 사이의 감정의 골을 교묘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에 틈이 생기면 어떤 슬프고 끔찍한 것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결국 모든 공포의 근원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그러나 세 번째 장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전개는 이런 주제의식을 흐려놓는다. 수십 년 동안이나 히데키와 가족들을 쫓아다니며 자신과 접촉한 사람들을 끔찍하게 죽이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속일 정도로 교활하고 악랄한 보기왕은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다. 그러나 퇴마사 코토코는 그렇게 무서운 존재인 보기왕을 너무나 쉽게 제압한다. 코토코가 진작에 나섰으면 히데키가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 딸 치사가 보기왕에게 끌려가지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토코를 의심하던 형사가 코토코가 경찰청의 높으신 분과 친분이 있는 관계라는 것을 알고 굽신거리는 모습은 일본 만화에서 너무 많이 보아왔던 클리셰라, 진지했던 소설의 분위기가 한 순간 우습게 느껴졌다.  


  코토코의 활약으로 보기왕에게 끌려갔던 치사가 무사히 엄마 품으로 돌아오는 결말에서 이제까지의 어두움과 공포가 모두 걷혀 개운했다. 하지만 보기왕이라는 존재가 자아내는 공포와 그 공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주제의식을 끝까지 끌고 나가는 뒷심이 부족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결정적인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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