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장수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 누구의 엄마도 아니다. 지금 나 한 사람의 삶만으로 벅차고, 앞으로 엄마가 될지 되지 않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렇지만 엄마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싶었다. 우리 엄마부터 엄마가 된 친구들, 선후배들, 지인들, 그리고 내가 공공장소에서 마주치게 될 이름 모를 엄마들까지, 나는 수많은 엄마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는 거야."라고 말하는 대신 "엄마로 사는 게 나한테는 이래."라고 말하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다. 이 책은 MBC 라디오 PD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삶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놓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모성애를 무조건적으로 찬양하지도 않고, 비혼과 비출산을 결심한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고 키우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나는 엄마가 된 게 이렇게 좋은데 너는 이 행복을 모르겠지. 넌 왜 결혼 안 하니? 왜 아이를 안 낳니?"라고 말하는 친구나 친척을 만났을 때의 곤혹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기에, 엄마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이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나는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당신을 응원한다. 지지한다. 그 선택에 따르는 행복을 충만하게 누리길 기원한다. ...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 아니듯 아이는 행복의 증명이 아니며, 당신이 선택에 따르는 무게를 감당하는 딱 그만큼 나 역시 내 선택의 대가를 치르며 살고 있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을 늘어놓듯이, 비혼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 역시 그만의 행복을 나열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내 글이 '결혼과 출산이 정상적인 삶'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공고화하는 데 일조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결혼과 육아가 부담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보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로 한 선택의 대가가 더 와 닿을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태동을 처음 느꼈을 때, 첫째가 갓 태어난 동생을 처음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볼 때의 뭉클함에 공감하기는 어렵다. 아이가 없고 고양이를 키우는 나로서는 아이의 몸짓 하나 하나가 신기하고 사랑스럽다는 이야기에 내 고양이를 대입해 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와 사람 대 사람으로 소통하면서 느끼는 감동은 고양이와는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반면 나 혼자 살아가기도 빠듯한 경제적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막막해지고, 공공장소에서 도무지 통제가 안 되는 아이들을 마주치면 저 아이들을 집에서 키우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지 두려워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문제들은 다양하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아이에게 먹일 돈까스를 튀기다 기름이 튀어 화상을 입는 것 같은 사소하고 사적인 문제들이 있다. 다른 한편 아빠와 엄마의 육아와 가사 배분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문제, 노동 시간은 긴데 정부에서는 보조금만 지원해 주니 아이와 지낼 시간이 부족해지는 문제처럼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도 있다. 저자는 사적인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는 분노한다. 사회과학 서적이 아니니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거나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친밀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부모가 아닌 사람들은 부모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충을 헤아려보고 그 고충을 자아낸 원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모로서가 아닌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 중에서도 공감되는 것들이 있다. 마침 회의에서 바보 같은 소리만 하다 나온 것 같았을 때, 회의가 성공적으로 끝났어도 나 자신이 기여한 건 없는 것 같아서 좌절감을 느낀다는 구절을 읽었다.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한 건가 싶어 자책하다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게 위로가 됐다. 좀 더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은 먹는 것과 같고 그 감상을 글로 쓰는 것은 똥을 싸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에도 공감했다. 많이 읽고 보기만 했지 아무 것도 쓰지 않으면 뭔가 묵은 것이 내 안에 쌓인 것 같다. 저자가 말하는 '글 마렵다'는 감각이 어떤 것인지 안다. 머릿속에 묵혀 뒀던 글을 마침내 썼을 때의 후련함도. 또한 요즘 같이 다양한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그만큼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때에 글을 쓰는 사람의 두려움도 공감한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의 서평을 썼다가 정말로 악플이 달리고 나서부터는 더 두려워졌다. 하지만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글이 과연 좋은 글일까? 그런 글을 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글을 쓰는 것의 목표는 욕을 먹지 않는 게 아니다, 글을 쓰면서 욕을 먹을까에 신경 쓰는 것, 실수할까 걱정하느라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이 책의 이야기에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은 육아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는 책도 아니고, 육아의 꿀팁을 제시해 주는 책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이자 엄마로서 살아가는 삶을 털어놓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가 없는 나는 아이가 있는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이 책이 모든 엄마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와 다른 사람,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한 타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가 몰랐던 세상 한 귀퉁이를 보게 되고, 세상을 점점 더 많이 알아가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