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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일러스토리 1 - 모든 것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ㅣ 인문학 일러스토리 1
곽동훈 지음, 신동민 그림 / 지오북 / 2017년 6월
평점 :
저자 소개를 읽었을 때 이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궁금했었다. 의학과 사회학을 전공했고 인터넷 문화잡지와 웹디자인 전문지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한국어, 영어를 포함해서 섭렵한 언어가 13개나 되고, 저서나 번역한 책도 그 분야가 제각각이다. '광범위한 분야의 지식을 대중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지식의 큐레이터'이자 '다양한 분야에 대한 무절제한 호기심 때문에 온갖 종류의 지식을 쌓은 딜레탕트(dilettante, 예술이나 학문을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애호가로서 하는 사람)'라니, 수십 가지 메뉴를 팔지만 그 중 맛있는 메뉴는 하나도 없는 식당 같은 사람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 염려는 책을 읽으면서 사라졌다.
'모든 것이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는 부제처럼, 이 책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입문서이다. 200여 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입문서답게 아주 깊이 있게 들어가지는 않지만,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 중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잘 정리했다. 이 책으로 공부한 뒤 고대 그리스 영역 시험을 본다면 괜찮은 점수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마냥 요약정리만 잘 해 놓은 책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작가 나름대로의 시선도 있는데, 그 시선이 재기발랄하다. 저자는 플라톤 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저서『국가』 가 정작 중심 내용인'올바르게 국가를 다스리는 법'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가치 있는 책이라고 이야기한다. 플라톤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를 지키는 방위자들은 잡스럽고 시끄러운 음악도, 거짓 이야기인 서사시도 들어서는 안 되며 동료들과 아내와 자식을 공유해야 한다. 게다가 "개나 새들을 교배시킬 때 혈통 좋은 것끼리 짝을 맞추는 것처럼 사람도 뛰어난 남녀를 짝지어 주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우생학을 주장하고 있으니,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표현처럼 "꼴통 같은 소리"다. 저자는『국가』를 스승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그에 대비되는 스파르타의 전체주의에 대한 호감이 낳은 미숙한 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의와 권력, 국가, 교육 등 주요 사회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논의되고 있는 것들의 시초가 『국가』에 담겨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상대에게 질문을 하면서 상대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소크라테스 철학 특유의 철학적 문답법으로 전개된다. 정치, 철학, 윤리, 논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후세에 영감을 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범접할 수 없는 고전으로만 느껴졌던『국가』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평가를 보고 나니, 오히려 더 알고 싶고 읽고 싶어진다.

『인문학 일러스토리 1』의 일러스트들. 간결하고 발랄한 삽화가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미지 출처: 신동민 일러스트레이터 갤러리(http://new.picturebook-illust.com)
그리고 본문만큼이나 재기발랄한 일러스트가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면서 재미도 더해준다. 중요한 내용을 깔끔하게 그림으로 정리하면서 때로는 본문 내용을 보충설명하는 역할도 한다. 본문 옆의 작은 글상자에 담긴 용어 설명과 때때로 지은이가 개입해서 하는 보충 설명에도 많은 정보가 들어 있다.
이 책이 고대 그리스 문화로의 좋은 입문서 역할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요소가 챕터 끝마다 있는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같은 고대 그리스 당대의 저작부터 니체의 『비극의 탄생』, 홉스의 『리바이어던』 같이 고대 그리스 문화를 분석하거나 영향을 받은 책들까지 고대 그리스를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추천하고 있다. 왜 그 책을 읽어야 하는지이유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얇지만 고대 그리스로 떠나는 플랫폼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