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작품, 『전쟁과 평화』 스포일러 포함 

  「데카브리스트들」은  『전쟁과 평화』 를 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험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전쟁과 평화』 가 이 작품을 쓰려다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톨스토이는 원래 당대 러시아의 혁명가들이었던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했었다. 데카브리스트들은 농노제 폐지와 입헌군주제 실시를 목표로 1825년 황제 니콜라이 1세(재위 1825~1855)에게 봉기를 일으켰다 진압당했고, 30여 년 동안 시베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데카브리스트들 중 주요 인물인 세르게이 볼콘스키, 세르게이 드루베츠코이와 먼 친척이었던(톨스토이의 어머니가 볼콘스키 가문 출신이고 외할머니가 드루베츠코이 가문 출신이었다.) 톨스토이는 어릴 때부터 데카브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1855년 니콜라이 1세가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에 새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특별 사면령을 내려, 데카브리스트들이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로 돌아오자, 톨스토이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고 했다.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들이 어떻게 혁명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들의 젊은 시절인 1812년 나폴레옹과 러시아의 전쟁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다. 젊은 귀족이었던 데카브리스트들은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지만 프랑스군을 쫓아 프랑스에 가게 되면서 프랑스의 자유주의, 민주주의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더 발전시켜  『전쟁과 평화』 를 썼고, 정작 쓰려고 했던 데카브리스트 이야기는 미완성으로 남겨놓았다. 그 미완성작이 바로  「데카브리스트」들이다.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지 않은 줄 알았는데, 2010년에 출간된  『톨스토이 중단편선』 1권에 이 단편이 실려 있어 읽어보았다. 

  이름까지 따 왔지만(안드레이의 성 볼콘스키Bolkonsky는 첫 글자만 세르게이 볼콘스키Sergei Volkonsky와 다르다.) 안드레이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었고, 보리스 드루베츠코이는 데카브리스트인 세르게이 드루베츠코이와 달리 권력에 영합하는 인물이다. 니콜라이 로스토프는 열렬히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으니 톨스토이가 원래 의도대로 썼다면 데카브리스트가 될 인물은 피에르 베주호프밖에 없다. 에필로그에서 피에르는 비밀 정치 결사 활동을 해 니콜라이에게 의심을 받고, 피에르를 무척이나 따르는 니콜루슈카(안드레이의 아들)는 피에르와 혁명을 일으켰다 니콜라이에게 진압당하는 꿈을 꾼다.  피에르가 에필로그 시점(1820년)에서 5년 뒤 데카브리스트의 봉기에 가담할 복선이라고 볼 수 있다. 

 「데카브리스트들」 의 주인공은 1856년 새 황제의 특별 사면으로 모스크바에 돌아온 데카브리스트 표트르 이바노비치 라바조프와 그의 가족들이다.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탈리아고, 부부는 서로를 '피에르'와 '나타샤'라고 부른다. 피에르 라바조프는 『전쟁과 평화』 의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다. 모든 사람에게 다정하고 친절하지만, 자기 주장을 펼칠 때는 물러서지 않는 성품은 베주호프와 꼭 닮았다.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능력은 안드레이에게, 이미 다른 사람의 약혼녀인 나탈리아와 사랑에 빠지는 무모함은 아나톨리에게 간 것 같지만. 라바조프의 아내 나탈리아는 검은 눈의 미인에 사랑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정열적인 면, 피에르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나타샤를 연상시킨다.  동생 라바조프와 30여 년만에 상봉하는 누나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베주호프의 친척 누나 카치슈가 세월이 지나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카치슈는 방탕한 데다 사생아인 베주호프를 친척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냉대했지만, 결말 부분에서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베주호프와 화해한다. 

  미완성작이다 보니 이야기는 라바조프와 가족들이 마리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끝난다. 기승전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하지만  『전쟁과 평화』  속 피에르가 데카브리스트가 되었다면, 피에르와 나타샤가 시베리아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나탈리아는 라바조프가 시베리아 유배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1분도 망설이지 않고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 시베리아의 라바조프에게 갔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혹독한 기후, 무거운 수감 생활을 견뎌내고 나탈리아와 라바조프는 두 남매를 낳고 수십 년 동안 행복하게 살아왔다. 나타샤도 피에르가 유배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시베리아 생활이 혹독해도 피에르와 나타샤 부부는 강인하게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다만 피에르 라바조프와 나탈리아의 아이들이 시베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과 달리, 피에르 베주호프와 나타샤의 아이들은 데카브리스트의 봉기 이전에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랐을 것이다. 에필로그 시점에 이미 아이들이 태어나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갓집인 리셰 고리에서 지내고 있었으니까.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 중에서는 아이들을 친정이나 친척집에 맡기고 남편에게 달려간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상상한 뒷이야기에서 피에르와 나타샤의 아이들은 외삼촌 니콜라이와 외숙모 마리아에게 맡겨진다. 아버지의 자유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아이들은 황제에게 충성하는 외삼촌 니콜라이와 갈등을 겪고 헤어진 부모를 그리워하지만, 막상 30여 년만에 부모가 돌아오자 낯설어한다. 안타깝게도 내 필력은 30여 년에 이르는 거대한 이야기를 쓰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 피에르의 이야기를 끝내 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이 짧은 미완성작을 통해 피에르와 나타샤의 노년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고, 돌아온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당대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의 귀족들에 비하면 초라한 라바조프 가족의 행색을 보고 은근히 무시하던 숙박업소 사장과 직원들은, 라바조프가 데카브리스트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을 깍듯하게 대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의 귀족들에게는 데카브리스트들이 돌아온다는 것이 큰 뉴스이고, 라바조프를 역사의 산 증인이자 뉴스거리로 대한다. 그들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뜻을 마음 깊이 되새기기보다는 그들을 무료하고 지루한 삶의 활력소로 여긴다. 하지만 작가는 "(18)56년도에 러시아에서 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감히 말하겠다."고 말할 만큼 그들의 귀환에 큰 의미를 둔다. 이 짧은 부분만 보더라도 데카브리스트들의 귀환을 대하는 다양한 반응들을 생생하게 묘사했는데, 이야기가 완성됐으면 데카브리스트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살아남은 의미를 더 생생하게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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