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안 나이트 - 러시아 전문가의 시베리아 이야기
박대일 지음 / 미래터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전쟁과 평화』스포일러 포함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데카브리스트. 나는 이 둘에 마음에 끌린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모스크바까지 가 보는 것이 내 오랜 꿈이었고, 톨스토이의 소설『전쟁과 평화』덕분에 데카브리스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시베리아 평원을 가로질러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달린다. 9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부터 동쪽 끝까지 가로지르는 것이다. 데카브리스트들은 농노제 폐지와 입헌군주제 실시를 목표로 1825년 혁명을 일으켰다 실패하고 시베리아로 유배 간 혁명가들이다.『전쟁과 평화』의 결말에는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가 데카브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암시가 숨어 있다. 이 둘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에 호기심이 갔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노선도. 이르쿠츠크는 횡단철도의 중간지점이다.

출처: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04443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간까지만 다루고 있다. 작가가 살고 있는 지역이 이르쿠츠크이고 자주 오가는 지역이 이르쿠츠크부터 그 동쪽에 있는 지역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르쿠츠크 서쪽의 역들이 궁금하다면 다른 책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책들에서는 다루지 않는 작은 역들까지 이야기하고 있고, 그 역에 얽힌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특히 항일 독립운동과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에 얽힌 이야기가 많아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작가가 횡단열차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이야기도 다채롭고 생생하다. 


 데카브리스트들의 이야기도 내가 만족할 만큼 잘 정리되어 있었다. 톨스토이는 원래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소설을 쓰려고 했다 그들의 젊은 시절에 해당하는 시대의 이야기『전쟁과 평화』를 쓰게 되었다. 정작 데카브리스트들에 대한 소설은 미완성으로 남겨 두었지만,『전쟁과 평화』의 주인공 피에르 베주호프가 데카브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암시도 결말에 남겨 두었다. 톨스토이 작품의 주인공들 중에서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피에르가 데카브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데카브리스트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공인물 때문에 실존인물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다니 뭔가 주객전도된 느낌이지만, 이게 문학의 힘이 아닐까 싶다.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에 반대해서 봉기를 일으켰다 실패한 데카브리스트들은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유배되어 그곳에서 수십 년 동안 유배되어 살아간다. 아직 횡단철도도 깔리기 전인 그 시대에 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은 시베리아까지 남편을 찾아갔다. 정부에서는 국가 반역 죄인인 데카브리스트들과 혼인 관계를 파기하지 않는다면 모든 귀족 칭호와 특권을 박탈하고 시베리아에서 낳는 아이는 농노 신분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지만, 아내들은 끝까지 남편의 곁을 지켰다. 데카브리스트들과 그들의 아내들, 그들이 시베리아 곳곳에 남긴 흔적들을 보면서 피에르와 그의 아내 나타샤가 어떻게 시베리아에서 지냈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바이칼 호수의 풍경. 이 책에서는 한 챕터에 걸쳐 바이칼 호수와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출처: BK 투어서비스. BK 투어서비스는 작가가 운영하는 시베리아 지역의 여행사이다.


  이 책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데카브리스트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사람들의 생활, 시베리아에서도 가장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바이칼 호수 등 다양한 시베리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작가의 필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고, 신선한 시각이나 깊이 있는 통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컬러 도판을 담고 있고 특히 바이칼 호수의 풍경을 비롯한 시베리아의 자연 풍경 사진들은 마음을 사로잡지만, 너무 작은 도판들도 많다. 특히 데카브리스트들의 유형지 현황을 담은 지도들은 도판이 너무 작아 정보 전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베리아를 다룬 다른 책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아니면 집 안에서 광활한 시베리아를 상상하면서 읽기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