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그림일기
이새벽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7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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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 갔을 때 느끼는 가장 큰 즐거움이 생각지 못한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이다. 지난 주에 내가 사는 지역 중앙도서관에 가서 고른 책을 가지고 나오다가 서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고양이를 키우고 나서부터 고양이에 대한 책이라면 너무 사족을 못쓰는 게 아닌가 싶어 잠깐 망설였다. 하지만 책을 펼치고 몇 페이지를 살펴보고 나서 나는 이 책과 사랑에 빠졌다. 주인공이 집 밖에서 외출고양이(집 밖을 자유롭게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양이) 흰둥이를 만나 반가워하고, 정답게 손을 잡고 집까지 같이 왔다가 정작 집에 도착하니 서로 뻘쭘해져서 다시 헤어지는 장면을 본 순간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고른 책들에 이 책 한 권을 더 얹어서 도서관을 나왔다.


『고양이 그림일기』의 표지. 찬장에서 캔을 꺼내고 있는 사람이 작가이고, 찬장 위의 줄무늬 고양이가 장군이, 바닥에서 뭔가를 먹고 있는 얼룩무늬 고양이가 흰둥이이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가 고양이 장군이와 흰둥이와 함께 보낸 날들을 그림일기로 기록한 것이다. 노란 수컷 고양이 장군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작가의 손에서 자란 집고양이이고, 얼룩무늬 수컷 고양이 흰둥이는 작가의 집 마당에 드나들던 길고양이였다 외출고양이로 작가네 집에 정착했다. 장군이는 뱃속에서부터 까칠한 성격을 타고 났지만 섬세하고, 흰둥이는 무던하고 생존력이 강하다. 작가는 입맛부터 성격, 습성까지 서로 다른 두 고양이와 함께 한 날을 담담하고 소탈하게 그려나간다. 


7월 7일의 일기. 비가 들이친다고 누군가 창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흰둥이는 작가가 그림 그리는 책상 옆 창문까지 올라와서 울었다. 


  고양이들과 함께 한 날들은 소소한 추억들로 채워진다. 어느 날은 투닥거리던 두 고양이가 같이 밤 외출을 하고 똑같이 오른쪽 귀가 까매져서 왔다든지, 올해 들어 처음 익은 멍석딸기를 장군이에게 먹였다든지. 어떤 날은 단 한 줄만, 어떤 날은 여러 문단에 걸쳐 하루를 기록한다. 그림체도 글도 간결하고 담백하다. 분량이나 형식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더 흥미진진하거나 더 화려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그래서 작가가 고양이와 함께한 일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 그림일기에서는 고양이들뿐 아니라 집 안팎의 식물들 또한 섬세하게 그려진다. 


  작가가 보낸 나날들은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식물과 함께한 나날들이기도 했다. '고양이와 식물을 기르며 기록하는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소개에 걸맞게 작가는 식물에도 많은 애정을 쏟는다. "4월 6일. 따뜻한 봄, 여러해살이풀이 올라오는 속도는 무척 빨라 아침에 나가면서 봤던 키와 들어오면서 보는 키가 다르다. 그 중 둥글레가 유독 빠르다. 흰둥이는 그것을 앞발로 톡톡 쳐 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 없던 자기 영역의 땅에 갑자기 솟아난 무언가가 신기한가 보다." "7월 3일. 매년 이맘때면 꽃나무를 번식시킨다. 번식시켜 1-2년을 키운 뒤 나눔을 한다. 가지를 잘라 깨끗한 흙에 꽂고, 줄기 아랫부분에 뿌리가 날 때까지 매일매일 물을 주면 기다린다." 작가가 고양이뿐만 아니라 식물의 생태에 관심이 많고 식물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유달리 크다는 것이 보인다. 작가가 고양이들과 식물과 함께한 날들은 고요한 듯하면서도 소소한 변화로 가득차 있다. 그런 소소한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유머감각이 배어 있어 읽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된다.


스포일러

 따뜻하고 소박한 일상만 계속될 줄 알았는데, 슬픈 사건이 생긴다. 장군이가 외출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때 장군이는 여덟 살이었다. '장군이가 사고당하기 전날 밤'이라는 말만으로도 불안했는데, 그 다음날 일기에 장군이의 죽음이 적힌 것을 보고 먹먹해졌다. 그림과 함께 실린 다른 날의 일기와 달리 장군이가 죽은 날은 아무 그림 없이 글로만 장군이의 죽음을 전한다. 장군이의 죽음을 담담히 털어놓고 있지만 그 때 작가가 겪었을 슬픔은 헤아릴 수 없다. 

  그 이후는 남겨진 작가와 흰둥이 둘의 이야기다. 장군이가 떠난 뒤로도 씨앗에서는 새싹이 돋아난다. 장군이 귀신이 흰둥이에게 "쟤(작가)는 원래 아무 일 없어도 징징거리는 놈이었어"라고 투덜거리는 장면이 잠시나마 위안이 됐지만, "8년이 정말 순식간이었어."라면서 장군이의 무덤을 목도리로 덮어주는 작가의 모습에 다시 먹먹해진다. 

 

 

펼친 부분 접기 ▲


  책의 만듦새도 깔끔하다. 사람들은 하얗고 매끄러운 종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재생용지로 만든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이 책은 재생용지로 만들었는데도 산뜻한 느낌이다. 하얗고 매끄러운 새 종이보다 가볍고 오래된 느낌이 일기장이라는 컨셉트에도 잘 어울린다. 1년에 한두 번씩 이 책의 수입금에 따라 사료를 적립해 유기동물 보호소에 보낸다는 취지도 좋다. 곁에 오래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진다. 책 마지막에 다음 책을 예고했는데, 다음 책이 나온다면 역시 곁에 두고 싶다. 


* 작가의 블로그. 이곳에서 작가의 근황과 이후에 쓴 그림일기들을 볼 수 있다. 

https://blog.naver.com/ohmyge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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