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에서의 일 년 - 칼리프의 집 동방문학총서 2
타히르 샤 지음, 알이따르 옮김 / 훗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영화 <카사블랑카> 때문에 카사블랑카는 많은 사람들에게 낭만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실제로 그곳에 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영국의 작가 타히르 샤는 영화보다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떠났던 모로코 여행에서 영향을 더 받기는 했지만, 그 또한 카사블랑카에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라면 "아치와 주랑이 있고 향기로운 참죽나무로 만든 높은 문과 숨겨진 정원이 있는 안뜰, 마굿간과 분수, 과일나무가 있는 과수원, 그리고 수십 개의 방이 있는 제대로 된 집으로의 탈출"이 가능할 거라고. 그래서 주변의 동료, 지인들의 만류도 듣지 않고 카사블랑카의 대저택 다르 칼리프(Dar Khalifa, 아랍어로 '칼리프(이슬람 사회에서 상당한 정치 세력을 거느린 지도자)의 집'이라는 뜻)를 사고 가족들과 그곳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이사 온 첫날 밤 환상은 박살난다. 


  이사 온 첫 날 밤, 오래 전부터 저택을 관리해 온 관리인들은 진(Jhin, 알라가 불에서 만들었다는 정령으로, 무슬림들이 진들이 인간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들을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도 가지 않고 한 방에 석탄 덩어리로 원을 놓고 그 안에서 자야 한다고 말한다. 첫 날 밤을 무사히 보낸 뒤로도 관리인들은 툭하면 진을 핑계대면서 말을 듣지 않는다. 심지어 작가의 가족들이 사는 것을 진들이 원하지 않으니 퇴마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근처에 사는 조폭 두목의 아내는 작가가 다르 칼리파의 집 문서를 찾아내지 못한 것을 알고 가끔씩 찾아와서 협박한다. 집안 관리를 위해 데려왔던 비서 조흐라는 작가가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모함했다고 자신의 수호 정령이 말해줬다며 작가의 계좌에서 4천 달러를 인출해서 도망친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저택을 보수하기 위해 건축가에게 보수공사를 의뢰하지만, 건축가가 보낸 인부들은 공사를 개판으로 하고 있고, 건축가에게 따져도 건축가는 나 몰라라 한다. 


  작가는 아버지 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혈통이고 어린 시절 아버지와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이슬람 세계의 문화와 전통을 조금이나마 체험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쭉 생활해 왔기 때문에 다른 영국인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현대 서구인인 작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환장스러운 상황의 연속에서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두 번째 비서 카말이다. 카말은 미국에서 여러 해 살다 와서 영어에 능통하고 업무 처리에 있어서도 유능하다. 그러면서도 모로코인으로서 같은 모로코인들의 사고 방식, 삶의 방식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작가와 가족들이 모로코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를 유연하게 해결해 간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법적인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세상 물정 모르는 주인공에게 혀를 끌끌 차면서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때로는 어둠의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 캐릭터는 소설이나 영화, 만화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현실에도 있었다. 작가와 카말이 모로코 생활을 하면서 닥쳐오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모습(더 정확히는 카말이 문제를 해결하고, 작가가 카말의 수완에 감탄하거나 경악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자신이 간 장소를 여행자보다는 밀접하게 현지인보다는 낯설게" 바라본다는 작가 소개처럼, 작가는 여행자보다는 더 가까이서, 현지인보다는 더 멀리서 카사블랑카와 모로코를 바라본다. 카말이 건축가를 해고하고 새로 데려온 건축공들은 놀랄 만큼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저택을 탈바꿈하지만, 저택 공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관리인들은 툭하면 진 핑계를 대면서 말을 듣지 않지만, 자신들이 받은 월급의 3분의 1을 작가의 이름으로 근처 학교에 기부해 마음을 찡하게 한다. 클럽에서 만난 모로코 여자에게 반해 이슬람 이단 종파의 일원이 된 미국 청년의 모습에 혀를 차다가도,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냈던 모로코 사람들에게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추억에 잠긴다. 아름다운 풍경과 따뜻한 인정, 속물 근성과 뒤틀린 자본주의가 뒤섞인 모로코에서 좌충우돌하며 일 년을 보낸 뒤, 작가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무엇보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우리가 모로코와 관리인들에게 그리고 칼리프의 집에서 마침내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작가의 블로그와 홈페이지, 페이스북을 찾아보니 작가는 지금도 다르 칼리파에서 살고 있다. 관리인들과도(심지어 돈을 들고 튀었던 조흐라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나름의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이 모든 상황들을 감당할 가치가 있었다고 할 만큼 다르 칼리파는 아름답다. 작가와 가족들, 그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다르 칼리파에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행복하게 지냈으면 한다. 


다르 칼리파의 문패가 걸려 있는 하얀 담장


모자이크로 장식된 음수대. 숙련공들이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도자기 조각 수천 개로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타히르 샤의 서재. 시더나무로 만든 24미터 길이의 책장이 들어서 있다. 현대적인 가구들과 아랍 전통무늬가 새겨진 저택의 문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주황색 양탄자와 커튼, 우아한 곡선의 가구들로 꾸며진 거실


푸른색 타일과 모자이크로 장식된 욕실


사진 출처: 타히르 샤 블로그(http://www.tahirshah.com/blog/)

http://artnlight.blogspot.com/2008/09/dar-khalifa-caliphs-house-in-casablanca.html

http://digma.lt/interjero-dizainas-interjeras/kalifo-rumai/dar-khalif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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