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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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군에게 

  북클럽에서 활동한 적 있어? 난 두 번 있어. 교회 안의 북클럽에서 활동했었는데 멤버는 세 명뿐이었지만 정해진 규칙 없이 책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좋았어. 그런데 그 작은 북클럽 안의 인간관계가 꼬이면서 북클럽도 해산돼 버렸어. 몇 년 뒤에 단골이었던 작은 책방의 북클럽에서 활동했는데, 그 책방이 문을 닫으면서 북클럽도 사라져 버렸지. 그 이후로는 북클럽에서 활동하지 않지만 여전히 사람들이랑 책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볼 때마다 마음 깊이 공감하고. 


건지 섬의 세인트피터 항구. 2차 세계대전 당시 건지 섬의 아이들은 이곳에서 배를 타고 영국 본토로 피난을 갔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은 책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끌렸던 책이야.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름부터 참 특이한 북클럽이지. 건지Guernsey는 영국 해협에 있는 섬들인 채널 제도Channel Islands 중 한 섬이야. 나치가 1940년부터 1945년 5월까지 5년 동안 이 섬을 점령했던 거 알고 있었어? 영국 본토를 점령하기 위한 거점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대. 식량과 물자를 나치가 빼앗아간 데다 나치가 이 섬을 봉쇄하고 있어서 구호물자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으니, 건지 섬 사람들은 그 5년 동안 곤궁한 삶을 살았지.  그때 책으로 5년을 버텨온 사람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서 이 책이 시작됐을 거야. 

 이 책은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나는 전쟁 직후 우연히 건지 섬의 북클럽에 대해 알게 된 작가 줄리엣의 이야기. 다른 하나는 나치 점령 5년 동안의 건지 섬 북클럽 사람들 이야기. 온 영국이 전쟁의 상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던 1946년, 작가 줄리엣은 건지 섬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아. 줄리엣이 팔았던 책이 건지 섬까지 흘러들어갔는데, 그 책을 손에 넣은 건지 섬의 주민 도시(이름이 도시Dawsey야. City가 아니라.) 애덤스가 책에 적힌 줄리엣의 이름과 주소를 보고 편지를 보낸 거지. 전쟁 때문에 섬에 남아 있는 서점이 하나도 없으니, 대신 찰스 램의 책을 구해달라는 편지였어. 그 편지에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잠깐 언급되어 있었어. 줄리엣은 이름도 특이한 북클럽에 호기심을 느끼고 북클럽 이야기를 해 달라고 답장을 보내. 

  사실 건지 섬 사람들이 처음부터 북클럽 활동을 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 나치군이 섬 안의 가축들을 식량으로 쓸어갔고, 가축 한 마리까지 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섬 주민 아멜리아가 몰래 돼지 한 마리를 숨겨놨었어. 아멜리아는 이웃들을 불러 신나게 돼지고기 파티를 했지만, 파티를 하고 돌아가던 사람들이 나치의 통금시간 검문에 딱 걸린 거야. 돼지고기 파티를 하고 왔다고 할 순 없으니까 사람들은 북클럽 활동을 하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둘러댔지. 그때는 섬 안의 소규모 동호회까지도 나치에게 신고하고 등록해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말로 북클럽 활동을 해야 했어. '감자껍질파이'는 북클럽 모임이 있을 때마다 함께 먹었던 파이에서 따온 이름이고. 감자로 파이 소를 만들고 밀가루 대신 감자껍질로 파이 껍질을 만들었다는 데서 섬 사람들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보이지. 

  줄리엣은 북클럽 사람들과 건지 섬 사람들의 5년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북클럽 사람들을 비롯한 건지 섬 사람들이 나치 점령 5년 동안 겪은 일들과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편지에 써서 줄리엣에게 보내. 이 책은 줄리엣이 주변 사람들이나 건지 섬 사람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을 모아 놓은 형태야. 줄리엣이 런던에서 작가로서 살아가는 이야기와 줄리엣의 책 이야기가 한 축, 섬 사람들의 전쟁과 책 이야기가 다른 한 축이 되어 이 책을 엮어가고 있어. 건지 섬 사람들의 이야기에 푹 빠진 줄리엣이 건지 섬에 직접 가게 되면서 줄리엣의 이야기는 건지 섬 사람들과 더 긴밀하게 엮이게 돼. 

  나치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 하지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겹이 쌓이면서 전쟁 속에서, 침략자의 점령하에서 사는 게 어떤 것인지 점점 더 알아가게 돼. 건지 섬에 끌려온 포로를 숨겨주었다 유럽에 있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사람, 아이들을 영국 본토로 피난 보내고 5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던 부모들, 독일군과 사랑에 빠졌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 여인까지. '건지 섬은 1940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의 점령하에 있었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어. 그 이야기를 그 사람들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거지. 

  북클럽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작품 중 내가 읽은 작품은 많지 않아. 대부분이 영문학 작품인데, 나는 영문학에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거든. 그래도 나는 북클럽 사람들의 책 이야기를 좋아해. 북클럽 사람들은 자기가 이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 작품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고 자랑하지 않고 자기가 느낀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니까. 나는 지식 자랑보다 이렇게 솔직한 감상들이 모이는 게 더 좋아. 그리고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책에서 위안을 얻으며 책 밖의 현실을 버텨가는 모습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이덕무는 '공자가 아니었으면 내가 발광하여 달아났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나나 건지 섬 사람들이라면 '책이 아니면 내가 발광하여 달아났을 것이다'라고 말할 거야. 책이 현실을 바꿔주진 않지만, 적어도 현실을 버틸 수는 있게 해줘.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줄리엣과 건지 섬 사람들의 편지도, 그들의 책 이야기도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돼. 거기에 나의 책 이야기들도 보태고 싶고.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종이 위의 글자만으로도 바닷바람 부는 섬, 다정한 사람들, 정다운 수다가 생생하게 느껴져서 내가 그곳에 있는 것 같아. 건지 섬 북클럽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나의 책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너의 책 이야기도, 다른 사람들의 책 이야기도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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