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포함

  한 소녀가 투신자살했다. 소녀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성추행범으로 무고했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고, 소녀의 신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소녀는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받아 왔었다. 소녀의 언니는 동생이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믿고 수수께끼 같은 사립탐정과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홍콩의 작가 찬호께이의 소설  『망내인網內人 은 '네트워크 안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뜻대로 인터넷 네트워크 안의 여론으로 인한 자살 사건을 그리고 있다. 소녀를 모함한 글을 쓴 범인은 IT 기술을 교묘히 사용해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그러나 해커 출신의 사립탐정 아녜阿涅는 천재적인 해킹 기술로 범인의 정체를 파악해 간다. 소녀의 언니이자 또 다른 주인공 아이阿怡를 아직도 폴더폰을 쓰고 아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는 직장인 도서관의 도서 대출 시스템밖에 없는 컴맹으로 설정해, 아녜가 아이에게 범인이나 자신이 사용하는 기술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트릭에 사용된 IT 기술을 설명한다. (그것도 모자라 소설에 언급된 과학기술과 컴퓨터 관련 자료 목록을 부록으로 넣었다.)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는 아이와 아녜의 이야기와 함께 출세를 꿈꾸는 IT 기업 직원 스중난施仲南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스중난은 머리가 비상하고 야심으로 가득한 인물로, 출세를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비정하다. 어느날 세계적인 IT 기업 SIQ의 공동 창립자 스투웨이司徒瑋가 스중난의 회사를 투자 대상 후보로 지목하면서, 스중난은 사장과 동료들을 제치고 스투웨이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스투웨이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도대체 이 이야기가 아이의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두 이야기는 결말 부분에서 교묘하게 이어진다. 이 서브플롯에서도 인터넷 기술과 인터넷 산업의 발전과 전망 등이 자세하게 설명된다. 

  두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터넷의 명암을 파헤친다. 스투웨이는 네티즌들이 SNS를 통해 대형 언론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소식을 전한 사례를 통해 인터넷 언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 반면 아녜와 아이는 인터넷 안의 잘못된 소문들이 상상 이상으로 빠른 속도로 수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범인을 알아낸 아녜는 범인의 수법을 역이용해 범인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자살 직전까지 가도록 몰아붙인다. 범인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대신 정신적으로 공격해 무너지게 만드는 방법은 일본의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을 연상시킨다.(이 책은 소설 안에서 언급된다.) 인터넷에서 사소한 이유로 트집을 잡혀 여러 사람에게서 악플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피해자 소녀와 범인이 겪었을 공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직접적으로 설명하고 메시지를 주입식으로 전달한다는 생각이 든다. 상황 자체를 보면서 독자 스스로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데, 작가는 아녜의 입을 빌어 인터넷과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위험한지 구구절절이 설명한다. 혹시라도 독자가 놓칠까 봐 트릭 하나 하나를 놓치지 않고 설명한다. 작가 자신도 생각보다 분량이 너무 많아져서 마감기한을 몇 번이나 늦췄다고 고백할 정도다. 좀 더 내용을 쳐내고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여백을 남겨뒀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녜가 지나치게 전지전능해 걸어다니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보인다. 소설 중반까지는 아녜가 SIQ의 또 다른 창립자 이노우에인 줄 알았는데, 아녜가 주범에게 복수하기를 포기한 아이에게 공범에게 복수하자고 제안하고 갑자기 잘나가는 CEO로 변신할 때부터 아녜가 스투웨이와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아녜는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모든 곳을 관찰하고 모든 진실을 밝혀내며, 모든 상황을 조종해 복수를 성공시킨다. 아녜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도 거의 없다.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만 보다 오랜만에 전지전능한 주인공을 보니 통쾌하고 신나기는 하다. 하지만 이게 인터넷 생태계의 실태를 비판하는 소설인지 '아녜영웅전'인지 헷갈리게 된다. 

  게다가 아녜와 아이의 관계는 후반으로 가면서 할리퀸 로맨스로 변한다. 가난한 여주인공을 데리고 인형놀이라도 하듯이 고급 옷을 입히고 화장까지 직접 해 주는 재벌 남주인공.(연애가 아니라 복수를 위해 위장하려고 그런 것이지만) 차갑고 오만한 그가 여주인공에게 못되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온갖 방법으로 챙겨준다. 나중에는 사건 의뢰비를 내는 대신 자기 집(정확히는 자기 소유 건물의 한 층)에 들어와 집안일을 하라고 한다. 컴맹인데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아이가 아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아이가 아녜의 완벽함을 빛나게 하는 도구로 느껴진다. 아이도 아녜를 놀라게 할 만큼 당찬 면을 보이기도 하지만 아녜의 심부름과 요구를 군말없이 따르고 나중에는 집안일까지 하게 되니 결국은 수동적인 신데렐라 캐릭터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녜라는 캐릭터와 아녜-아이사이에 싹트는 로맨스에 설레니 작가에게 졌다는 기분이 든다. 

  인터넷 네트워크와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한 고찰이 후반에서는 아녜 캐릭터의 전지전능함에 묻힌 감이 있다. 하지만 IT 분야에 대한 디테일과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 압도적이다. 인터넷과 그 안의 인간 군상에 대해 좀 더 깊은 고찰을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재미와 디테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소설이다.

* 소설 속 인물들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표준중국어(북경어) 발음으로 표기되었다. 아이의 본명인 어우야이區雅怡는 광동어 발음으로 아우응아이, 피해자인 동생 어우야원區雅雯은 아우응아만, 어우야원의 애칭 샤오원은 시우만이다. 샤오원의 메일 주소 aungamanman에도 어우야원의 광동어 발음인 아우응아만이 들어가 있다. 탐정 아녜阿涅는 아닙(요즘 홍콩 사람들은 초성이 N인 글자를 L이 초성인 것처럼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니 아립으로 발음될 수도 있겠다.), 그의 진짜 정체인 스투웨이司徒瑋  씨토우와이, 그에게 처절하게 응징당하는 스중난施仲南은 이쭝남으로 발음된다. 광동어 발음이 북경어 발음보다 더 낯설게 느껴진다.

광동어 발음은 이 곳에서 찾았다. 


광동어 발음 사전: http://m.yueyv.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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