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식사의 문화사 Breakfast
헤더 안트 앤더슨 지음, 이상원 옮김 / 니케북스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버터를 얹은 노릇노릇한 토스트가 하얀 바탕 위에 놓여 있는 표지부터 눈길을 끌었다. 책을 펼쳐 보니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들과 아침식사에 대한 온갖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읽게 되었다. 언제부터 아침식사를 먹게 되었는지, 아침식사 메뉴로 어떤 음식들을 먹었는지 등등, 너무 일상적이어서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아침식사 속에는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다. 


소박한 빵과 음료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중세시대 농민들, 14세기 프랑스의 『모뒤스 왕과 라티오 왕비의 책』에 실린 삽화다.


  근대 이전 동양에서 하루 식사는 아침과 저녁, 두 끼였다. 점심을 정식 식사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근대 이전까지 아침식사를 먹는 것을 죄악으로 여겼다고 한다. 모든 쾌락이 억압되었던 중세시대에 교회에서는 아침식사를 하는 것을 탐식의 죄로 여겼다. 가벼운 점심과 그보다 더 든든히 먹는 저녁 두 끼면 하루 식사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농민이나 육체노동자, 어린이나 병자 같이 몸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아침식사를 먹는 것이 허용되었다. 아침식사는 신분 낮은 육체노동자들이나 병자, 어린아이들이나 먹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반인들은 아침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숨겼다. 그러나 15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상류층 사람들은 아침식사를 금기시하는 관습을 신경쓰지 않고 아침식사를 했다는 기록을 남겼고, 17세기 신대륙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낡은 옛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18세기 중반에는 아침식사의 인기가 높아져 부유한 사람들은 집에 아침식사를 위한 전용공간까지 마련했다. 교회가 아침식사를 허용하지 않았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아침식사를 할 때 술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는데, 사람들이 해외무역을 통해 들어온 커피와 차를 술 대신 아침식사 때 마시자 교회는 아침식사를 금지할 이유가 없어졌다. 이렇게 아침식사는 하층민들이 먹는 천박한 끼니가 아니라 사회 모든 계층이 누리는 합리적인 식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사탄이 마녀들을 위해 차린 식사'는 수프와 오트밀, 빵, 우유, 치즈였다. 참 소박하고 가정적이다. 


  그럼 아침식사로 무엇을 어떻게 먹었을까? 죽은 비교적 저렴하고 만들기도 쉽고, 아침에 먹어도 소화하기 힘들지 않아 전세계에서 사랑 받아온 아침식사 메뉴다. 심지어 17세기 말 스웨덴에서 열린 사탄의 파티에서도 사탄이 마녀들을 위해 손수  수프와 오트밀을 차렸다고 한다. 사탄의 파티 음식 치고는 참 소박하고 가정적인 음식이다. 이웃끼리 같이 먹고 마시는 소박한 식사까지도 사탄과 마녀의 파티로 몰아붙인 것은 아닌가 싶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베이컨과 달걀, 팬케이크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 왔지만 19세기 후반 도덕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자는 '클린 리빙 운동'이 일어났다. 이들은 아침 식단을 단순한 곡물 중심으로 대체하자고 주장했고, 식탁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혼합 곡물 시리얼이 개발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리얼을 오래 보관하고, 시리얼의 주된 고객인 어린이들의 입맛을 겨냥하기 위해 시리얼에는 많은 양의 설탕이 들어가게 되었으니 사실상 건강식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럼에도 시리얼은 여전히 건강식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최초의 전기 토스터인 제너럴 일렉트릭 사의 토스터 D-12. 1909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전기 토스터는 번거로운 토스트 굽기를 간편하게 만들어주면서 아침 식탁에 혁명을 불러왔다.


  한편 아침식사의 변화를 통해 변화해 가는 시대상도 엿볼 수 있다. 전기가 널리 보급되고 아침식사를 위한 가전제품들이 부엌에 자리잡으면서 아침의 주방 풍경은 크게 변화했다. 전기 토스터가 생기기 전 토스트의 양면을 적당히 노릇노릇하게 굽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어서 여성의 살림 솜씨를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인 1909년 최초의 전기 토스터가 출시되고, 1926년에는 빵이 다 구워지면 자동으로 툭 튀어 오르는 토스터가 최초로 출시되었다. 커피메이커, 토스터, 달걀과 소시지를 굽는 전기팬까지 20세기 전반기 동안 아침식사를 편하게 하는 각종 가전제품들이 등장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 아이 혼자 우유에 타먹을 수 있는 시리얼, 인스턴트 커피, 팬케이크 믹스 등도 아침 식사를 만들 때 수고를 덜어주었다. 그러나 어머니날 선물로 아침식사 준비에 필요한 주방 기기를 추천하는 1950년대의 광고들, 1세기 전과 다름없이 "여성은 밝고 예쁜 모습으로 아침식사를 차려서 가족, 특히 남편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답습하는 1950년대의 요리책들을 보면 아침식사 준비 같은 가사노동은 여성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것이 보여 씁쓸해진다. 


 작가가 미국인이다 보니 유럽과 미국에서의 아침 식사를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서양 외 다른 지역의 아침식사에 대해서도 언급되지만 다소 뭉뚱그려져 나온 것이 아쉽다. 특히 아시아에서 수억 명이 먹고 있는 밥은 소단원 하나로 다뤄질 가치가 있는데 아침 식사 메뉴의 이야기에 곁다리로 나오는 것이 아쉽다.(원서에서는 다른 제목이었겠지만, 밥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 '밥 죽 빵'이라는 소단원 제목은 얼마나 기만적인가.) 그리고 작가가 역사가가 아닌 음식 전문 저술가이다 보니 큰 흐름을 잡고 역사책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내용들이 500여 페이지에 걸쳐 단순나열되는 느낌이라 읽다 보면 좀 지칠 수 있다. 하지만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의 선명한 사진들과 아침식사에 관련된 온갖 사소한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아침을 거르는 사람이라도 아침을 먹고 싶어질 것이다. 아침을 먹으면서 보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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