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로자 - 만화로 보는 로자 룩셈부르크
케이트 에번스 지음, 폴 불 엮음, 박경선 옮김, 장석준 해제 / 산처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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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는 1871년 파리 코뮌과 로자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1871년 3월 18일, 평범한 민중들이 봉기해 파리를 장악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정치를 펼치려 했다. 이렇게 시작된 파리 코뮌은 두 달간 계속되다가 프랑스 정부군에게 진압되면서 막을 내렸다. 봉기가 시작되기 13일 전인 3월 5일, 폴란드의 작은 도시 자모시치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에게 장미라는 뜻의 이름 '로잘리아 Rosalia'를 붙였을 때 부모는 아이가 정원의 장미처럼 아름답고 조용하게 살아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 로자 룩셈부르크 Rosa Luxemburg, 1871-1919 는 자기가 태어난 직후에 일어난 파리 코뮌처럼 짧고 격렬한 삶을 살았고, 혁명의 붉은 장미로 남았다. 

  『레드 로자』 는 영국의 만화가 케이트 에번스 Kate Evans 가 폴란드 출신의 사회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을 그린 만화다. 거의 모든 대사가 로자와 그녀의 가족, 동료들이 남긴 글을 재구성한 것일 정도로 이 책은 그녀의 삶을 충실하게 전달한다. 그것도 모자라 각 페이지마다 그녀가 했던 말의 원문을 싣고, 작가가 어떤 것을 각색하고 축약했는지까지 알려준다. 똑같은 글을 두 번 읽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로자에 대한 것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 전달되지 않게 하려는 작가의 성실함이 보인다.  

  로자는 어느 면에서나 소수자였다.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폴란드인이었고, 폴란드인들 중에서도 차별 받는 유대인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보통선거권도 가질 수 없는 여성이었고, 평생 한 쪽 다리를 절었던 장애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약자와 억압 받는 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았다. 로자가 살던 바르샤바에서는 빈부격차가 극심했고, 교수형당한 사회주의자들의 시체가 성문에 매달렸다. "구름과 새와 사람의 눈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내 집처럼 느낄 뿐이다." 이 말처럼 그녀는 고국을 떠나 살면서 세상 어느 곳에 있는 사람의 눈물도 외면하지 않았다. 

  경제학 박사 학위를 따고 마르크스의 경제 분석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녀는, 저서 『자본의 축적』 에서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폭로한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무력과 손을 잡고 자본주의가 아직 뿌리 내리지 않은 지역을 수탈하면서 부를 축적해 왔다.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패권과 이권을 놓고 경쟁하다 1차 세계대전을 치르기까지 했으니, 전쟁은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강요한 야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점점 발전하면서 자본주의 내부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로자는 자본주의가 내부 모순으로 스스로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작가는 로자의 이러한 자본주의 분석을 만화로 전달하고, 때로는 만화에 직접 개입해 보충설명을 하기도 한다. 

  로자는 혁명에 있어서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그녀가 몸을 담고 있었던 독일 사회민주당(로자는 폴란드 사회민주당원으로서 독일령 폴란드 지역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독일로 이주했다가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활동하게 되었다.)은 궁극적인 목표가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선언했으면서도, 자본주의, 제국주의와 타협하는 길을 걸어갔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 독일 의회에서 전쟁 예산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로자의 동료 카를 리프크네히트 의원이었다. 로자와 리프크네히트는 사민당에서 독립한 '독립사민당'을 창당하고 시대의 야만에 맞섰지만, 1919년 1월 15일 사회민주당 보수 세력의 명령으로 체포된 뒤 처형당했다. 


죽기 직전 로자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인생의 순간들이 흘러간다.


만화는 로자의 투쟁과 사상을 만화와 주석으로 꼼꼼하게 전달하면서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만화 고유의 장점도 놓치지 않는다. 설명들이 빼곡히 적힌 장면들과 로자의 삶을 가만히 묵상하게 만드는 서정적인 장면들이 공존한다. 로자가 감옥 안에서도 하늘을 바라보며 행복을 느끼는 장면, 로자가 죽기 직전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생의 수많은 순간들, 그녀가 영원히 떠난 후 애완 고양이 미미가 지키고 있는 빈 책상, 그 위에 있는 그녀의 마지막 글. "내일이면 혁명이 또 다시 일어나 치켜들 무기를 쟁강거릴 것이다. 그리고 찬란한 승리를 선포할 것이다. 나는 있었고, 으며, 있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없는 빈 책상 앞에서도 그녀는 여전히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다소 투박하고 과장된 극화체 때문에 '못 그렸다', '추하다'라는 평도 듣는다. 그리고 노골적인 성애 묘사 장면들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 휘날리는 듯한 손글씨로 쓰인데다 컷을 빽빽하게 메운 대사들은 가독성이 떨어진다.(원서에서도 대사들은 손글씨로 쓰여 있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조차 곱고 평탄하게 살기보다 평생 거칠고 험난한 길을 걸었던 로자에게 어울린다. 노골적인 성애 묘사는 그녀가 혁명뿐만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도 열정적이었고 자신의 뜻에 충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지만, 이 책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삶과 사상, 투쟁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입문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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