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과 안생
칭산 지음, 손미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 소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스포일러 포함


 올해 초에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를 보고 마음이 아렸었다. 서로를 소중히 여겼지만 서로 너무나 달라서 엇갈려야 했던 두 친구의 애증. 나에게도 그토록 지독하게 아끼고 미워했던 친구가 있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원작『칠월과 안생』이 우리나라에 번역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읽어야 할 책들이 산더미 같아서 이제야『칠월과 안생』을 읽게 되었다. 


"칠월七月이 안생安生을 처음 만난 건 열세 살 때였다. 입학식장에 길게 늘어선 낯선 얼굴들이 눈부신 가을 햇살에 어른거렸다. 그 중 한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이 첫 문단에서부터 맑고 싱그러운 영화의 분위기가 다시 떠올랐다. 영화 속 싱그러움, 두 친구 사이의 애틋한 감정은 원작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평범한 삶을 꿈꾸었던 모범생 칠월(마사순)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안생(주동우). 그러나 둘의 입장이 뒤바뀌어 둘은 상대가 원하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화 쪽을 더 높이 평가한다. 원작에서도 안생이 "왜 나는 칠월이 될 수 없을까"라고 부러워하는 말을 하지만, 평범한 칠월이 독특한 개성을 지닌 안생에게 일방적으로 매혹되는 느낌이다. 안생도 칠월을 아끼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칠월이 안생을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편이다. 심지어 안생이 자기 남자친구를 유혹해 그의 아이까지 가졌는데도 칠월은 임신한 안생을 지극정성으로 돌본다.(영화에서는 칠월의 남자친구 가명의 딸이 안생이 아니라 칠월이 낳은 아이로 설정이 바뀌었다.) 영화에서 두 친구가 상대가 원하던 삶을 살게 되면서 상대의 입장에 놓이게 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원작 속 안생이 공중에 붕 뜬 것처럼 살다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과 달리, 영화 속 안생은 칠월처럼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되면서 오히려 칠월을 돌보게 된다. 반면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안생을 돌보던 칠월은 안정된 삶을 버리고 여행을 떠난다. 현실에서는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나면서 칠월의 여행이 끝나지만, 안생의 소설 속에서 칠월은 여전히 자유롭게 여행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매혹된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지독하게 아끼다 못해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된 관계. 각본가들이 둘의 관계를 더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칠월과 안생」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개 단편은 하나의 이야기나 다름 없다. 안安(또는 란藍)이라는 이름의 아름답고 자유분방하지만 불안정한 여자와 린林이라는 잘생기고 따뜻한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린은 인내와 사랑으로 안을 감싸려 하지만 안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받은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현실에 발 붙이지 못한 채 붕 뜬 것처럼 살아간다. 린은 결국 현실에 지쳐 안을 포기하고, 안은 자살하거나 살해당하는 등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작가의 소설 속에서 사람은 세 부류다. 아름답고 불안정한 젊은 여성(안)과 잘생긴 외모에 그녀보다 경제적,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만 결국 그녀를 놓게 되는 남자(린), 그리고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 이 틀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벗어난 게「칠월과 안생」인데, 이름에 '안'이 들어가 있듯이, 안생도 '아름답지만 불안정한 여자 주인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남주인공 가명도 다른 소설 속 남주인공 린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소설 속 평범한 사람들이 여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독특한 여주인공을 이해하고 포용하려 하는 칠월이 이 소설집에서 가장 개성적인 인물이다.


  아련한 첫사랑과 가혹한 현실, 그 사이에서 무너지는 남녀의 사랑. 이런 비극적이고 애틋한 정서, 한없이 여린 풀꽃 같다가도 독을 내뿜는 독초 같은 여주인공의 매력. 이런 분위기와 정서의 묘사는 정말 뛰어나다. 그 덕분에 중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내용이 열 편 내내 반복된다는 것이다. A 단편의 안A를 B단편의 안B와 바꿔도 문제가 없을 만큼 비슷한 인물들,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정서가 반복된다. 처음 들을 때는 아름다워 매혹되지만 들을수록 지치는 음악 같다. '아름답고 청초하고 신비스럽지만 자기 고독에 잠겨 비극에 빠지는 여자'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둘러싼 세계에 작가 자신이 매혹되어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작가가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소설을 써도 자기복제만 하고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는 요즘 일본 애니메이터들이 현실에서 인간을 관찰하지 않고 애니메이션 캐릭터만 보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낸다고 지적했었다. 칭산 작가는 현실이 아니라 자기 세계 속 캐릭터들만 보면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느낌이다. 자기 세계에서 눈을 돌려 더 넓게 바라보지 않는다면, 작가의 동어반복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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