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 그람시 산문선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김종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그람시는 누구인가


"위험천만한 그람시. 우리는 이자가 앞으로 20년 동안 두뇌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1928년 이탈리아의 한 공안검사가 불법정당 활동 혐의로 기소된 정치인 안토니오 그람시 Antonio Gramsci 에 대해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그람시는 20년형을 선고받았고, 그 형량을 다 채우기도 전에 감옥 안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람시가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까지 경계하고 무거운 처벌을 내렸을까?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진. 그람시는 온화한 인상을 가졌으나 단호하고 신념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람시는 파시스트 정부의 지배 아래 있던 20세기 초의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지식인이자 정치인이었다. 그는 1913년 이탈리아 사회당에 입당하면서 사회주의 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사회당이 파시스트 정당의 행태를 방관하자 당에서 나와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립하고, 활발하게 반파시즘 운동을 펼쳐 왔다. 사회주의 계열 인쇄물에 기고한 글은 검열을 받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그는 쉬지 않고 자신의 사상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이 책에서도 검열로 삭제된 부분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람시는 온화한 인상을 가졌으나 단호하고 신념이 강한 인물이었고, 여당인 파시스트 정당 의원들의 의사 진행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회에서 무솔리니 총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결국 무솔리니 정부는 파시스트 국민당 이외의 모든 정당을 불법단체로 규정한 새 법안을 통과시켰고, 불법정당 활동 혐의로 그람시에게 20년형을 내렸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도 그람시는 역사와 현실 정치에 대해 노트 30권에 이르는 글을 썼다. 그는 죽을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은 시대의 양심이었다


그람시의 시대 비판이 우리에게 전하는 것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는 그람시가 당시, 즉 1910년대에서 20년대 이탈리아의 시대 상황과 변화에 대해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100여 년 전의 이탈리아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의 출간 시점이 힌트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2016년 3월,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가 폭로되기 전에 출간되었다. 그 때 한국 사회는 또 한 번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예술가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특정 대기업에 정부 차원의 혜택이 쏟아졌다. 


  그 때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국정을 농단했던 세력들을 몰아내어 민주주의의 승리를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갈 길이 멀다. 부는 소수의 특정 계층에만 집중되어 있고,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의회에서 통과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경계하지 않는다면 독재 권력은 또 다시 우리를 장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람시의 날카로운 시대 비판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람시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1920년대 초반 이탈리아는 1차 세계대전의 타격으로 의식주를 영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경제난을 겪게 되었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어떤 체제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들은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했고, 국민들은 현혹되었다. 그들은 먹고사는 문제 외의 것에 무관심했던 것의 대가로 파시즘 독재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그람시는 자신의 무관심 때문에 다른 무고한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었는데도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은 시민일 수밖에 없으며, 무언가를 지지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무관심은 무기력이고 기생적인 것이며 비겁함일 뿐 진정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무관심한 사람들을 증오한다."


  무관심한 사람들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나 존재해 왔고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도 역시 존재한다. 당장 우리 부모님만 해도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계엄령이 내려졌을 거라는 뉴스를 듣고 "계엄령이 뭐가 대수냐"는 반응을 보이셨다. 그런 무관심이 또 한 번 독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무관심은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나는 살아 있고 삶에 참여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나는 삶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증오하며, 무관심한 사람을 증오한다." 그의 말처럼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 있는지, 삶에 참여하고 있는지 늘 되돌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또 한 가지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그람시는 자본주의에 해악을 미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이탈리아 사회의 부르주아 조직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환경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부르주아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열중하는 무능함과 부패, 이기심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그는 폭주하는 부르주아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계층이 프롤레타리아라고 믿는다. 사회주의자들은 경제 체제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폐해를 개선함으로써 경제 체제를 개선시키려는 것이고, 가족 관계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더 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그람시에게 사회주의자는 기존 사회의 파괴자가 아니라 기존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존재였다. 사회주의를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보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겠지만, 자본주의가 폭주하지 않도록 제어해야 한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은 1925년 5월 16일 그람시와 무솔리니가 참석했던 하원 의회의 대화록으로 끝맺는다. 의회가 진행되기 몇 달 전인 1월 12일, 비밀결사에 반하는 법안 초안이 하원에 상정되었다. 공공의 안녕이라는 명목 아래 모든 결사체에 대해 강령과 규정, 목적 등에 대한 모든 사항을 제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었다. 여당인 파시스트 정당 의원들이 의사 진행을 방해하고, 총리 무솔리니는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공산주의자들의 폐해로 말을 돌리는 와중에도 그람시는 그 법령이 조직체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한다. 같은 소리를 반복하지 말라는 의장의 말에 그람시는 대답한다. "아닙니다. 오히려 계속 반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것을 혐오스러워할 때까지 계속해서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용기와 비판 정신은 10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의 우리에게, 진정 살아 있는 인간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


  각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번역자는 당시 사건과 사실, 이탈리아의 수많은 인물들을 평가하면서 써 내려간 글이기에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번역자의 시각과 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부분 재해석한 문장이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장을 재해석하는 게 아니라 당시 사건과 사실, 인물들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야 했다. 그람시 연구자라고 하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번역자가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면 출판사가 더 자세히 설명하게 요청해야 했다. 그래서 더 자세한 설명이 있는 그람시의 책들을 찾아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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