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궤적 - 과학과 이성은 어떻게 인류를 진리, 정의, 자유로 이끌었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김명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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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더 나아지고 있을까? 이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쉽지 않다. 폭력, 살인, 강간, 테러, 전쟁 등 악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서 새치기하는 사람부터 우리에게 부당한 처사를 일삼는 집주인이나 직장 상사,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고도 아주 적은 형량만 받는 정치인까지 세상은 크고 작은 불의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미국의 과학자 마이클 셔머는 저서『도덕의 궤적』에서 인류가 과학과 이성을 통해 지금까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도덕적으로 더 진보한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셔머는 어떤 근거로 세상이 도덕적으로 진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걸까? 그리고 도덕과 과학은 서로 별개의 영역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과학이 도덕의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일까? 과학보다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침을 제공하는 종교가 도덕의 진보를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셔머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역사가 도덕적 진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살펴보며, 도덕적 진보의 원동력이 종교가 아닌 과학과 이성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우선 셔머가 도덕과 과학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셔머가 생각하는 도덕은 감응적 존재의 생존과 번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감응적 존재는 감정, 지각, 감각, 반응, 의식이 있어서 느끼고 고통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모든 인류뿐만 아니라 동물들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과학은 이성을 토대로 일련의 논증과 경험적 입증을 거쳐 그 결론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하는 절차다. 


요하네스 얀 루켄, 안네켄 헨드릭스의 화형. 헨드릭스는 1571년 마녀라는 혐의로 화형당했다. 헨드릭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었다. 과학은 마녀사냥과 같은 미신적이고 종교적인 생각들을 허물어뜨렸다. 


  근대 이전 노예와 여성, 동물들은 주인과 남성,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응적 존재였음에도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재산이나 수단으로 취급받으며 폭력과 차별, 학대로 고통 받았다. 성소수자들은 신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도덕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박해 당했다.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들은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에 수천 년 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들을 박해하는 이들을 옹호하고 정당화해 왔다. 


프랑스 인권선언문. 계몽주의자들은 과학에서처럼 비판과 논쟁, 실험을 통해 민주주의와 민권의 원리를 정립해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은 정말 도덕적으로 진보했을까? 셔머는 통계자료들을 통해 세상이 도덕적으로 진보했음을 보여준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전쟁으로 인한 사망률을 비교해 보면 현대에 들어 전쟁 사망률은 크게 감소했다. 정치적 자유가 있는 나라들의 비율은 1970년대 이래 증가했고,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저자가 그 예로 우리나라와 북한을 비교한 것이 흥미롭다.) 남녀 간의 임금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동성애와 동성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더 포용적인 응답을 하는 사람의 비율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채식주의자들과 인도적으로 기른 축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도덕의 진보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앞으로도 세상은 도덕적으로 진보할까? 셔머는 그럴 것이라고 믿고, 우리가 닿아야 할 곳이 유토피아가 아닌 프로토피아(Protopia)라고 말한다. 프로토피아는 프로그레스(progress,·진보)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실제로는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이상향인 유토피아와 달리, 측정할 수 있는 꾸준한 진보가 일어나는 현실의 장소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서 탐욕과 폭력성이 유전적으로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모든 감응적 존재가 번성할 수 있는 사회의 특징들을 전 세계로 퍼뜨린다면 모든 사람이 차이를 넘어서 한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느끼는 문명 2.0에 이를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도덕의 영향권을 나 자신과 혈연관계로 맺어진 친족들을 넘어서 나와 다른 집단에 있는 타인들, 동물들, 즉 더 많은 감응적 존재들에게까지 확장해서 그들이 더 많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장소에서 진리와 정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또한 역사와 사회는 도덕적 방향을 향해 항상 진보하지만은 않고 때로는 퇴보한다. 미래에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악조건이 생겨 도덕의 진보를 막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지침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프로토피아와 도덕적 진보에 대한 셔머의 믿음이 도덕의 궤적이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데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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