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죽은 그녀
로사 몰리아소 지음, 양영란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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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3월 13일, 뉴욕에서 캐서린 제노비스라는 20대 여성이 살해당했다. 제노비스는 죽기 직전까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38명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 중 누구도 그녀를 돕지 않았다. 


 만약 우리 자신이 그런 상황에 놓이면 어떻게 될까. 괜히 나섰다가 자신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공포를 이기고, 다른 사람이 나 대신 나서주길 바라지 않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아름답고 죽은 그녀』는 이탈리아 어느 도시의 강가에서 발견된 한 여인의 시체를 통해 시체를 발견한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다섯 사람이 여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첫 번째 사람은 명품 매장에서 판매 직원으로 일하는 전직 모델. 그녀는 명문가의 자제인 남자친구와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심하게 말다툼을 해 헤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이런 일로 경찰서에서 고초를 겪고 싶지 않아 신고하지 않는다. 두 번째, 세 번째는 학교를 땡땡이치고 데이트 하러 나온 고등학생 커플. 그들은 대마초를 피우려 했기 때문에 경찰에 들킬까 봐 신고하지 않는다. 네 번째는 정신이상이 있는 노숙자. 그에게는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들을 구덩이 안에 숨겨 놓는 버릇이 있는데, 노숙자는 죽은 여자가 자신에게 점퍼를 건네주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녀를 기리기 위해 시신에서 핸드백과 구두만 벗겨 구덩이에 묻어둔다. 다섯 번째 사람은 기 치료사. 그는 기 치료와 안마를 해서 번 돈으로 감옥에 있는 동성 연인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자신까지 범죄에 휘말리면 감옥에 있는 동성 연인에게 해가 갈까 신고를 하지 않는다. 


 죽은 여인의 시신으로 인해 이야기가 시작하지만, 작가는 죽은 여인이 아닌, 죽은 여인을 발견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시체를 보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지만 일상에서 크고 작은 고민을 겪으면서 그들은 양심의 목소리에서 멀어지게 된다. 지금 약혼자와 헤어지게 생겼는데, 경찰서에 갔다가 내가 대마초를 피운 것을 들킬 수도 있는데, 내 인생이 엉망인데 다른 누군가를 신경쓸 여력이 어디 있어? 각자의 걱정과 고민거리에 밀려 다른 사람의 곤경은 외면해 버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짧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책 속 다양한 인간들의 비루하고 찌질한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의 비루함과 찌질함 또한 돌아보게 된다. 나는 저러지 않을 거야, 라고 다짐하지만 실천하는 건 언제나 어렵다. 


P.S. 이탈리아어 번역가들도 있는데 왜 굳이 프랑스어판을 중역했는지 모르겠다. 번역도 나쁘지 않고 역주도 꼼꼼히 잘 달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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