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 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
박찬일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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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을 하다 한국인이 자신의 외국 생활을 쓴 책을 추천해 달라는 글을 봤다. 그 글을 보니, 문득 몇 해 전에 서점에서 발견했던 책 한 권이 떠올랐다. 한국인 요리사 박찬일이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에서 실습을 하던 시절 이야기를 쓴 책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였다. 저자의 유쾌발랄한 문체 덕분에 읽다가 몇 번이나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났다. 기억 속에 묻혀 있던 그 책을 다시 정독해 보았다.

  시칠리아라고 하면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다 마을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시칠리아의 레스토랑 '파토리아 델라 토리'에서 매일 전쟁을 치렀다. 기름과 불, 칼을 다루는 데다 다혈질인 이탈리아 요리사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주방에는 욕과 고성, 폭력이 난무한다. 노동의 강도도 만만치 않다. 신선할 때 바로 다듬어야 하기 때문에 수북히 쌓인 버섯을 3박 4일 동안 대충 눈 붙여가며 다듬고, 손톱 밑에 상처가 나도록 새우 껍데기를 깠지만 소스 재료로 쓸 수 있는 머리와 껍데기를 버렸다고 욕을 한 다발 얻어먹는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여름 바캉스 시즌이 되면 하루에 16시간은 일한다. 시칠리아 레스토랑 주방에서의 실습생 생활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일러스트레이터 김중혁이 그린, 본문만큼이나 유쾌한 일러스트 

출처: http://ch.yes24.com/Article/View/15306


  이렇게 주방에서 분투하던 나날이었지만, 저자는 이 시절을 유쾌한 입담으로 풀어낸다.(입담만큼이나 유쾌한 일러스트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가 그 시절을 유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시칠리아와 그곳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만난 시칠리아 사람들은 거칠고 다혈질이지만 태양처럼 정열적이고, 요리와 자기 고향을 사랑한다. 특히 파토리아 델라 토리의 사장이자 셰프인 주제페는 요리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다. 동물을 학대하면서 대량생산해 내거나 물 건너오면서 변질되었을 식재료들은 믿지 않는다. "그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나의 재료로,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요리를 만들라'는 요리의 삼박자를 깨우쳐 주었다."(p. 284.) 그는 근처의 농가나 어장에서 직접 재료를 구해 와, 화려한 장식 없이 소박한 요리를 만든다. 이러한 요리 철학이 담겨 있어 이 책은 마냥 가볍지 않다.

  이 책이 출간된 연도를 보니 벌써 9년 전이다. 저자가 1999년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서 1년 동안 시칠리아에서 실습을 했다고 하니,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이제 20여 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저자가 있던 시절의 시칠리아와 지금의 시칠리아는 매우 다른 모습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책은 20여 년 시칠리아의 모습을 간직한 책이 되었다. 빠르게 산업화되는 세상 속에서도 전통과 자신만의 요리 철학을 지키던 주제페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시칠리아는 예전의 모습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 창비 특유의 된소리 발음을 살리는 외래어 표기법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쉽다. 하다 못해 바캉스, 퍼센트 같은 일상적인 외래어까지 된소리를 살려 바깡스, 퍼쎈트로 표기한다. 외래어 표기법은 원어의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어의 철자를 기준으로 표기를 통일해, 외래어 사용을 좀 더 편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최근 창비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외국 문학의 경우를 제외하고 일상적인 외래어의 경우 현행 외래어 표기법대로 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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