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미술관 -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
김태권 지음 / 창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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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크룩생크의 풍자화 <뉴 유니언 클럽>(1819). 클럽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흑인들의 모습을 통해, 흑인들의 인권이 신장되면 흑인과 백인이 맞먹게 될 것이라는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몸의 왼쪽 절반은 하얀색, 오른쪽 절반은 검은색인 흑백 혼혈 아기의 모습은 끔찍한 혐오표현이다. 이 그림을 통해 고민하게 된다. 혐오표현과 풍자의 정확한 경계선은 어디일까?(p. 174-176.)


  인권 문제를 다룬 미술 작품들을 이야기하는 책을 구상한 적이 있었다. 구상만 한 게 아니라 기획안도 만들었었는데, 지난 달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 책 또한 미술 작품을 통해 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확인해 보니, 내가 기획안을 만들기 이전부터 기획된 책이었다. 운 나쁘게도 기본 컨셉트가 겹쳐 내 기획안 하나가 날아갔지만, 내 기획안이 책이 되었다면 이 책과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고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미리보기로 몇 페이지를 봤을 때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이 책을 사게 되었다.

  내 기획안이 프란시스코 고야, 에드가 드가, 페르난도 보테로 등 각 화가별로 챕터를 나눈 반면, 이 책은 여성혐오 문제, 장애인 인권, 이주민의 인권, 성소수자의 인권 등 각 이슈별로 챕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미술'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 책은 '인권'에 방점을 둔 셈이다. 아무래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한 책이니 그랬을 것이다.(기획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하고, 집필은 김태권 작가가 했다.)  인권 안에서의 다양한 이슈들을 다루기에는 이 책의 구성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의 저자가 미술사학자가 아니라 만화가 김태권 작가라는 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태권 작가는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한겨레, 2009)라는 미술사 만화를 출간한 적이 있지만 미술사 전공자는 아니고, 이 책도 만화가 아니다. 이 책은 그가 처음으로 만화가 아닌 줄글 형태로 쓴 책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의 문장 중에는 줄글보다는 만화 지문에 가까운 짧은 호흡의 문장들이나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꽤 야해 보인다.", "크룩생크(헤르미온느의 고양이가 아니라 19세기 영국의 캐리커처 작가)를 만난다면, (영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치고) 어떻게 그를 설득해야 할까?" 등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듯 장난스러운 부분들도 많다. 김태권 작가의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허술하거나 진지하지 못한 건 아니다. 김태권 작가는 머리말에서부터 자신 또한 인권 문제에 있어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는 여러 모로 잠재적 가해자다. 남성이고 중산층이고 비장애인이며 이성애자다. 한국에 사는 한국 사람이니 국적 때문에 차별을 겪을 일도 없다. 이런 내가 조심하는 마음 없이 산다면, 여성이나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나 북한이탈주민 앞에서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내 언행도 주위 사람의 언행도 불편하다. 하나하나 고민하고 검토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p. 6.) 그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 , 『십자군 이야기』  속 무거운 주제와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만화 사이의 균형 감각을 줄글에서도 발휘한다. "왜 여성인권이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자기가 피해자라고 느끼는 남성들이 나타날까. 피해는 원래 여성의 몫이라고 생각해서 그럴까. 여성이 희생자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피해가 자기한테 떠넘겨진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p. 209.) 그는 장난스러운 듯하면서도 날카롭게 문제를 제기한다.

  3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인데다, 각각의 주제만 하더라도 깊이 파고들면 책 한 권은 쓸 수 있는 주제인데 한 챕터만으로 다루다 보니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한다. 특히 하나의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인권 이슈들에 대해 그는 문제 제기만 한다. 혐오표현과 풍자의 정확한 경계선은 어디일까? 히잡을 쓰자는 사람은 여성혐오에 빠진 근본주의자인가, 아니면 인종주의에 저항하는 무슬림 당사자인가? 히잡을 벗기려는 사람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여성주의자인가? 아니면 이슬라모포비아에 찌든 인종주의자인가? 이러한 그의 '치고 빠지기'가 못마땅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문제 제기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다했다. 정답이 없는 인권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서로 다른 답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합의점을 찾아내고 선택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미술 작품들은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인권 이슈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그저 아름다운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싶을 뿐인데 눈앞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미술 작품들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사람들, 자신이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권리들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기울인다면 우리가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하고 상처를 주는 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작가가 머리말에서 말한 것처럼 누구나 인권 문제에 있어서 잠재적 가해자다. 깊이 있는 분석까지 들어가지 못한다 해도, 이 책은 "불편함의 아주 작은 불씨'를 남겼다. 나는 기획안 하나를 잃은 대신 좋은 책 한 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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