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페미니스트 -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 쏜살 문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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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이에게

  하은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니 기뻐. 네 결혼식에 갔던 게 엊그제 같은데 네가 딸을 낳고 키우고 있다니, 실감나지 않아. 아이를 키워보지도 않은 내가 너에게 충고하는 게 우스울 거라는 거 알아. 하지만 이 험하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하은이가 더 잘 살아가게 하려면, 페미니즘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너에게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해.  

  이 책은 지금 내가 너에게 쓰는 편지처럼, 지은이가 딸을 가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나이지리아 출신 페미니스트인 작가는, 친구 한 명이 자기 딸을 페미니스트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을 받고 친구에게 몇 가지 제안을 편지로 써서 보냈대. 이 책은 그 편지들을 조금 수정한 거고. 너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책에 나온 제안 열다섯 가지를 알려줄게. 


첫 번째 제안. 충만한 사람이 될 것.
두 번째 제안. 같이할 것.
세 번째 제안. '성 역할'은 완벽한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
네 번째 제안. '유사 페미니즘'의 위험성에 주의할 것.
다섯 번째 제안. 독서를 가르칠 것.
여섯 번째 제안. 흔히 쓰이는 표현에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칠 것.
일곱 번째 제안. 결혼을 업적처럼 이야기하지 말 것.
여덟 번째 제안. 호감형 되기를 거부하도록 가르칠 것.
아홉 번째 제안. 민족적 정체성을 가르칠 것.
열 번째 제안. 아이의 일, 특히 외모와 관련된 일에 신중해질 것. 
열한 번째 제안. 우리 문화가 사회규범에 대한 '근거'를 들 때 선택적으로 생물학을 사용하는 것에 의구심을 갖도록 가르칠 것.
열두 번째 제안. 일찍부터 성교육을 할 것.
열세 번째 제안. 사랑이 반드시 찾아올 테니 응원해 줄 것. 
열네 번째 제안. 억압에 대해 가르칠 때 억압당하는 사람을 성자로 만들지 않도록 조심할 것. 
열다섯 번째 제안. 차이에 대해 가르칠 것.



 이 중에서 몇 가지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하고 싶어. 우선, 충만한 사람이 될 것. "엄마가 된다는 것은 너무나 멋진 선물이지만 엄마라는 말로만 자신을 정의해서는 안 돼."(p. 17.) 나도 네가 '하은이 엄마'로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넌 진선이고, 네가 하는 일들이 있잖아. 네가 하는 일과 엄마 노릇 모두 해내기 쉽지 않겠지만, 그 둘 다 완벽히 해내지 못한다고 자책하는 일이 없었으면 해. "우리는 여자가 '만능'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바깥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부모들을 지원하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해."(p. 20.) 제도적인 지원도 없이 엄마에게만 만능을 강요하는 건 가혹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같이 할 것. "'도움'이라는 표현은 거부"(p. 23.)해야 해. 네 남편이 "아이 돌보는 거 도와줄게."라고 말한다면, 그건 자기 일이 아닌 일을 도와준다는 뜻이야. 육아는 엄마만의 일이 아니라 엄마 아빠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얼마 전 아이를 서툴게 돌보는 아빠들을 그린 공익광고가 나왔었지. 그 공익광고에선 아빠들이 아이들을 돌봐줄 때 서툰 걸 너그럽게 봐 달라고 해. 경험이 없으니까. 하지만 경험이 없는 게 아빠뿐이겠어?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 엄마도 경험이 없고 육아에 서툴러. 그 광고에는 '육아는 당연히 엄마의 일이니까 엄마는 육아에 능숙할 것이다.'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거지. 네가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 번째로는, 성 역할은 완벽한 헛소리라고 가르칠 것. 성경에는 '여자의 머리는 남편이다', '여자는 예배당에서 잠잠해야 한다.'는 성차별적인 구절들이 있어. 그런 구절들을 이야기하면서 여자의 성 역할을 한정짓는 사람도 있고. '여자는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해. 하나님이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라고 하셨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네 결혼식 때 주례를 선 목사님이, "아이를 둘 이상 낳겠다고 약속하지 않으면 주례 서 주지 않겠다고 말했었다."라고 했던 걸 아직도 기억해. 하지만 네 딸이 결혼할 때 그렇게 말하는 목사님이 있다면 "주례 서 주시지 않아도 돼요."라고 거절해 버려. 사도 바울도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있다고 했잖아. 너에게 서운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하은이에게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지 않으면 낳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어. 성 역할에 하은이를 제한하지 말고, 하은이가 정말 바라는 걸 하게 해줘. 

  무엇보다 내가 바라는 건, 차이에 대해서 가르치는 거야. "아이에게 차이에 대해 가르침으로써...다양성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거야."(p. 102.) "아이에게 어떤 사람들은 동성애자이고 어떤 사람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가르쳐. 어떤 애는 아빠가 둘이기도 하고 엄마가 둘이기도 해.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어. ... 어떤 사람들은 모스크에 가고,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가고, 어떤 사람들은 또 다른 숭배의 장소에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숭배하지 않는다고 말해줘. 그냥 그게 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라고."(p. 102.) 기독교인인 너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말일 거야. 하지만 나는 기독교가 다양성에 대해 너무 닫혀 있다고 생각해. 다른 건 비정상적인 게 아니고, 자신의 기준이나 기독교의 기준에 모든 사람을 끼워맞출 순 없어. 난 하은이가 관대하고 마음이 열려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어. 

 이 모든 이야기들을 돌아보니, 아이가 있는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도, 아이가 아닌 나 자신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들이구나. 하은이와 너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한 사람으로서 온전히 내 삶을 살기 위해.  하은이가 더 평등한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너 또한 그러길 바라.

사랑을 담아, 
네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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