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정의, 판사 - 폭풍 속을 나는 새를 위하여
양삼승 지음 / 까치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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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로운 법조인이 되고 싶어 하던 친구가 있었다그 친구는 학교 축제에서 부패한 법조인들을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할 정도로 정의감이 강했다하지만 그 친구는 졸업을 하고 로펌에서 몇 년 일한 뒤세상은 썩어빠졌고 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회의감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그 친구는 법조계에서 어떤 일들을 보고 듣고 겪어왔기에 그렇게 변했을까종종 뉴스에 나오는 법조계의 비리 이야기를 통해 짐작할 뿐이었다.

 

  우리나라 법조계사법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걸까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양삼승의 저서권력정의판사를 읽으면서 뉴스로만 짐작했던 법조계의 맨얼굴을 보게 되었다저자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근까지 한국 사법부 역사상 의미 있는 판례 10개를 살펴본다한국 사법부가 처음으로 구성된 이래 사법부는 정치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저자는 사법부의 판결에 간섭하고 때로는 특정한 판결을 유도하며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정치권력을 비판한다. 1979년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했을 때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김재규에게 내란 목적의 살인죄를 뒤집어씌우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판사들에게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저자는 사법부를 억압한 정치권력뿐만 아니라정치권력에 굴복해 옳지 못한 판결들을 내렸던 사법부의 모습도 비판한다정치권력의 억압이 너무 심해서였다는 핑계는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자기 자리까지 내려놓으면서 정의를 위해 싸웠던 법조인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그는 지금의 법조인들이 권력자의 이해관계와 아무 상관없는 개인 간의 분쟁 해결에만 힘을 쏟으며 사소한 정의에 만족하는 것을 비판한다저자는 자신이 바꿀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고민하는 것은 진정한 개혁이 아니라 현실도피일 뿐이라는 쓴 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그는 실질적인 정의와 절차적 정의’ 모두가 지켜져야 함을 강조한다. 2006당시 제주도 도지사가 차기 도지사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제주도 소속 공무원들을 사적으로 부렸던 것이 적발되었다검찰이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었는데그 중 한 검사가 해당 사건에 연루된 공무원이 아닌 다른 공무원에게 영장과 검사 신분증을 제시하지도 않고강제로 그가 갖고 있는 서류를 압수했다그런데 그 서류에서 제주도 도지사가 선거법을 어겼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었다그러나 증거를 모으는 과정에서의 적법성이 문제가 되어 그 증거는 재판에서 인정받지 못했고제주도 도지사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도지사의 잘못이 명백한데도 절차의 적법성 문제 때문에 도지사를 처벌하지 못한 것이 일반적인 상식으로서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절차의 적법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면마구잡이로 사람들을 검거하고 법에 어긋나는 조사 방법을 쓰는 일들까지 허용되고인권은 보호되지 못할 것이다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실질적 정의와 죄의 유무를 따지는 절차에서 원칙을 지키는 절차적 정의 사이의 균형을 잡기는 어렵다그 두 가지의 균형을 잡으면서 정의를 지켜가는 것이 법조인들이 할 일일 것이다.

 

  70대의 법조인이 쓴 글답게 다소 딱딱한 문체이고대중 교양서적보다는 학술서적에 가깝게 느껴지는 서술과 편집이다그래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하지만 이 땅의 법조인들이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지키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법조인들뿐만 아니라 법과 상관없이 살아갈 수 없는 우리들법을 통해 정의가 지켜져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들 또한 이 책의 이야기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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