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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홍승은 지음 / 동녘 / 2017년 4월
평점 :
불편한 이야기 좀 해 보겠다. 아버지는 엄마나 내가 아프거나 바쁠 때도 둘 중 한 명이 밥을 차려줘야 식사를 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면접을 보러 가는 날에도 정장을 입고 화장을 한 채로 아버지 밥을 차려드리고 집을 나섰다. 요즘 들어 혼자 밥을 차려드시고 반찬을 치우는 것까지는 하신다. 아직까지 아버지가 먹고 버린 과자 봉지를 치우는 것도, 물 마신 컵 하나 씻는 것도 여전히 엄마와 내 몫이다. 그리고 한 번은 아버지가 갑자기 고향 친구 분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는데, 하필이면 그분들이 오는 날이 내가 속한 동호회의 정모 날짜와 겹쳤다. 나는 당연히 동호회 정모에 가고 싶었지만, 혼자 일할 엄마가 눈에 밟혀 집에 남아 엄마를 도왔다. 아니나 다를까, 즐겁게 웃고 떠들고 노는 것은 아버지와 친구 분들의 몫,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과 음식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엄마와 내 몫이었다. 우리를 도와준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 친구 분과 함께 온 부인이었다. 그분 또한 손님이었는데도.
홍승은의 페미니즘 에세이집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를 읽으면서 나 자신의 이런 불편한 경험들이 떠올랐다. 저자가 일상에서 겪은 불편한 경험들이 나의 불편한 경험들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이런 경험을 했구나’로 그치지 않고, 나만이 불편하게 느낀 것이 아니구나, 뭔가 잘못된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왜 아버지는 밥을 ‘챙김 받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내가 불효자식인가, 하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을 통해서 그것이 나만 겪은 일이 아니라는 것, 일상에 뿌리 내린 차별적 관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밥을 차리는 일뿐만이 아니었다. 일상 속에 수많은 차별과 폭력이 숨어 있었다.
이런 불편한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저 개인적인 불평으로 여겨질 수 있다. 더 큰 대의를 위해서 그런 사소한 불편함은 참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다.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을 수는 없다고. 하지만 개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이룬 대의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개인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사회인데. 게다가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의 불편함은, 만족해하는 다수의 목소리에 가려지기 쉽다. 불편해하는 소수만 무시하면 불편함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러나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불편해하는 것이 잘못된 것처럼, 아무 문제도 없는데 분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여기는 무신경함 자체가 거대한 폭력이다. 그 폭력은 일상의 작은 곳까지 뿌리 내리고 있고, 폭력으로 여겨지지 않아서 더 위험하다.
그 거대하고도 미세한 폭력에 대한 저항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은 존재가 스스로 목소리 낼 때, 세상은 딸꾹질 한다.”(p. 15.) 그 목소리는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 옳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다른 목소리를 부른다.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불평쟁이다, 프로불편러다, 라는 비난을 받을까 두렵다. 그러나 함께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있고, 불편한 이야기가 세상의 고통을 줄이고 우리를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음을 믿을 때 용기를 얻는다. 그래서 나 또한 저자와 함께 소망한다. “나는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다. 그래서 함께 자유로우면 좋겠다.”(p.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