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짓말쟁이
E. 록하트 지음, 하윤숙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숨은글에 스포일러 포함. 모바일과 앱에서는 숨은글이 적용되지 않으니 스포일러 표시 전까지 읽으시면 됩니다.


옛날 옛날이 아닌 얼마 전 미국 어느 곳에아름다운 세 딸을 둔 부자 노인이 있었다.

세 딸은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낳았다.

노인은 대서양의 어느 작은 섬을 사서 그곳에 저택 네 채를 지었다.

한 채는 자신이 갖고나머지 세 채는 세 딸과 딸들이 낳은 손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세 딸과 손주들은 여름마다 섬에 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뒤로 그들은 영원히 행복했을까?

 

  이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옛날 이야기의 형식을 빌어 이 책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이렇다주인공 케이든스(애칭은 캐디)는 부자 노인의 첫째 손녀즉 상속녀이다그리고 제목에서 말하는 '우리', '거짓말쟁이'들은 케이든스와 이종사촌 미렌과 조니이모의 연인의 조카 갯이다넷은 어린 시절부터 섬에서 여름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쌓아 왔다케이든스는 가족들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을 듬뿍 받으며 부족함 없이 자랐고갯과 첫사랑에 빠졌다여기까지만 보면 예쁘고 풋풋한 하이틴 로맨스다.

 

  그러나 케이든스가 어느 날 사고를 당하면서 무엇인가가 달라졌다부분 기억상실증으로 사고를 당한 그 해 여름에 일어난 일들만 기억 못하는 케이든스사고를 당한 지 2년 만에 섬으로 돌아간 케이든스는 사고의 진실을 찾아 나선다다른 사람들은 케이든스가 기억 못하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지만 케이든스에게 숨기는 듯하다미국 출판사의 편집자는 "부유한 집안이 등장한다는 건 알려줄 수 있지만 그 이상 말하면 작품을 망쳐 버릴 것이다그냥 읽어보라."고 말했다그래도 나는 굳이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하겠다.


  그건 바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소설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의 진상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스릴러인 동시에돌이킬 수 없는 일을 직시하고 극복하게 되는 성장소설이다그 과정에서 케이든스의 할아버지가 만든 동화 같은 세상의 실상이 드러난다그 세상에서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케이든스와 친구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거짓말을 한다그들이 각자 무엇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지 알게 됐을 때는 여러 가지 감정이 엇갈릴 것이다그러나 거짓과 망각을 극복했을 때 성장하게 된다이 책이 나 말고도 많은 독자들에게 스릴러로서의 재미와 성장소설로서의 메시지 모두를 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두 번째로 읽으면 처음 읽었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면서 새롭게 읽히기 때문에 두 번 읽어볼 것을 권한다.


* 스포일러










접힌 부분 펼치기 ▼

 

영화 <장화홍련>의 스포일러 포함


  돌이킬 수 없는 일의 진실은 이렇다케이든스는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할아버지의 저택에 불을 질렀다그러나 케이든스의 실수로 다른 친구들은 불타는 저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다친구들은 2년 전에 이미 죽은 것이다.


  할아버지는 더 없이 인자하고 딸들과 손주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사실은 유산을 빌미로 딸들과 손주들에게서 사랑과 복종을 강요하고 있었다딸들은 겉보기에는 부족함 없어 보이지만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아버지의 재산에 의존해 왔다그래서 조금이라도 아버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첨하고자기 자식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자매나 조카를 헐뜯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게다가 할아버지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다오바마를 뽑았다고는 하지만 미국 원주민의 피가 흐르는 갯을 교묘하게 차별해 왔고큰손녀 케이든스와 갯이 사랑에 빠진 것을 눈치채고 갯을 협박했다아이들은 자라면서 이러한 어른들의 거짓과 위선을 눈치채게 된다할아버지가 손주들을 곁에 둘 것인지 다른 지방 대학의 기숙사로 보내버릴 것인지까지 정하려고 들자케이든스를 비롯한 '거짓말쟁이'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가진 권력의 상징인 저택에 불을 질러할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의 위선에 반항한 것이다.


두번째로 읽어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복선이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우선책 표지의 성냥갑 그림.



  성냥갑 자체가 아이들이 저택에 불을 지른 것이라는 진실을 상징한다그리고 타지 않은 성냥 세 개는 한쪽에 모여 있고다 타 버린 성냥 하나는 따로 떨어져 있다실제로는 불에 타 죽은 것은 친구 세 명이지만타 버린 재 속에서 다시 일어나 살아가야 하는 것은 케이든스다.


  두 번째친구들은 자신들이나 케이든스 외에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케이든스를 만나자마자 자신들은 쿠들다운 저택에서만 지낼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는 핑계를 만들어둔 것이다아무리 친구들끼리 그렇게 하자고 정했어도엄마나 이모들은 자기 자식이거나 조카인데 할아버지 댁으로 와 보라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는다할아버지 댁에 와서 식사를 하라는 이야기는 케이든스 혼자만 듣는다친구들은 케이든스가 아니면 자기들끼리만 시간을 보내고친동생들과도 대화 한 마디 하지 않는다눈치가 빠른 사람은 여기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세 번째친구들은 2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다.

 2년 전 친구들은 열다섯 살이었고 지금은 열일곱 살이니 한창 자랄 나이다특히 남자아이들은그런데 남자아이인 갯도 자라지 않고 케이든스만 자라 둘의 키가 비슷해졌다친구들은 죽었으니 자랄 수 없었을 것이다.


  네 번째케이든스가 사고를 당한 뒤로 2년 동안 친구들은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케이든스가 사고를 당한 뒤 친구들은 한 번도 케이든스를 보러 오지 않았고케이든스가 아무리 이메일을 보내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당연하다친구들은 죽었으니까미렌은 케이든스 앞에서 케이든스가 보낸 이메일들을 모두 읽으며 "미안하다는 소리도 못하겠다"고 말하는데미렌의 영혼이 케이든스를 위로하기 위해 한 행동이거나 케이든스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꿈꾼 망상일 것이다"미안하다는 소리도 못하겠다"는 말은 사실 케이든스가 친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다섯째케이든스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이상하다.

  엄마와 이모들은 케이든스를 부자연스럽게 보일 정도로 과잉보호한다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케이든스가 진실을 기억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모두가 의심하지만 겉으로 말하지 않는 진실. 케이든스가 불을 질러서 아이들이 죽고 저택이 불탔다는 것사촌동생들은 어른들이 입단속을 했기 때문에 사고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하지만케이든스를 이상하게 보거나 케이든스에게 적의를 드러낸다할아버지는 케이든스를 보호하기 위해 집이 불탔다는 것을 철저히 숨기지만, 손주들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정신이상이 생겨 종종 케이든스를 죽은 손녀 미렌으로 착각한다.


  사건의 진상 부분을 읽고 떠오른 것은 영화 <장화홍련>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힌트도 <장화홍련>의 OST '돌이킬 수 없는 걸음'에서 떠올렸다.


  케이든스도, <장화홍련>의 주인공 수미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잊어버린다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했다는 진실을그들 앞에 나타난 이미 죽은 사람들의 정체는 그들의 망상이거나 죽은 사람들의 영혼일 것이다아니면 둘 다이거나둘 다일 수 있다는 단서는 두 작품 모두에서 나타난다죽은 친구들은 케이든스가 기억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케이든스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 준다당연히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하지만 미렌의 영혼은 이승에 있는 것을 감당 못하고 괴로워한다수연도 수미가 기억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동생의 모습으로 나타나고오직 수미나 수미의 또 다른 인격인 계모와만 소통한다그러나 실제 수연의 원혼이 다른 사람들 앞에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작품이 가장 닮은 것은 마지막에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다. <장화홍련>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뭔가 잊고 싶은 게 있는데도저히 잊지도 못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거 있지근데 그게 평생 붙어다녀유령처럼."


  케이든스도 수미도 지독하게 잊고 싶어하는 것이 있고 잠시 동안 잊어버리지만의식이 기억 못해도 무의식이 기억하기에 괴로워한다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다시 기억하고 그 기억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수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없다그러나 케이든스가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 있다그녀 스스로는 말한다"나는 견디며 살아간다."


  사실 근본적인 책임은 그녀들에게 잊지 않다어른들의 욕심과 위선이 그녀들을 비극으로 몰아간 것이다그럼에도 이미 비극은 일어났고 돌이킬 수 없다케이든스는 자기가 한 일을 직시하고 계속해서 견디며 살아갈 것이다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더 없이 슬픈 성장소설이다.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