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화학자 1 - 이성과 감성으로 과학과 예술을 통섭하다, 개정증보판 미술관에 간 지식인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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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섭(統攝)은 '서로 다른 것을 한 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과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말한다. 그런 통섭이 이루어지는 책을 만들고 싶어 참고할 만한 책들을 찾아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미술사와 과학의 만남이라니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미술사 전공자이자 과학알못인 내게 이 책이 어떻게 다가올지도 궁금해졌다. 나는 미술사 전공자로서도, 과학알못으로서도 이 책에 만족했을까?


(위)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아래)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우선 미술사 전공자로서는 만족하지 못했다. 교양 서적에 전공 서적 수준을 바랐다가 실망한 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 책이 교양 서적으로서 미술사 지식들을 잘 정리했고 재미있게 전달한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교양 서적들에도 나온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책 내용 중 몇 가지 오류가 있다. 이 책에서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1889)이 아를의 노란 집에서 그린 작품이라고 했는데, <별이 빛나는 밤>은 반 고흐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그림이다. '아마도 그의 마지막 그림으로 여겨지는'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이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소개했는데, 최근의 미술사 연구를 통해 반 고흐가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이후에도 작품 몇 개를 더 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화가의 생몰년도가 잘못 표기된 것도 몇 개 보인다. 책 내용을 좀 더 꼼꼼하게 교열했어야 했다.


(위) 렘브란트, <야경>, 1642.

(아래) 피에로 디 코시모, <프로크리스의 죽음>, 1486~1510년경.


그럼 과학알못으로서는 만족했을까. 과학알못으로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책의 내용 중 렘브란트의 <야경>이 그려졌을 당시보다 훨씬 어두워져 밤 풍경으로 오해받게 된 이유는 흥미로웠다. 18세기에 그림 보존을 위해 덧칠한 갈색 바니시(Varnish, 물감에 섞거나 그림 표면에 발라 윤기를 내고 내구성을 높이는 마감재. '니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와 납을 포함한 안료와 황을 포함한 안료가 만나면 검게 변색된다는 특징 때문에 그림이 원래 모습보다 훨씬 더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부터 시작된 연금술이 화학에 어떤 기여를 했고,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디 코시모의 그림 <프로크리스의 죽음>에 어떤 연금술적 상징들이 숨어 있는지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이렇게 미술사와 화학이 제대로 만나는 챕터들은 흥미로웠지만, 기존의 교양 미술사 책에 나오는 내용에 과학 이야기는 아주 조금만 곁들여진 챕터들도 많았다. 전반적으로도 미술사와 과학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미술사에 과학이 조금 곁들여진 정도다. 


 그리고 과학알못으로서 좀 더 알기 쉽게 설명되었으면 하는 부분들도 있었다.


"불포화지방산은 지방산 사슬 중에 불포화기를 포함하고 있어서 녹는점이 낮아 상온에서 액체 상태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표화기가 가교결합을 하며 굳어져 단단한 도막을 형성하는데, 바로 이 점을 그림물감에 이용한 것이다."

"기하이성질체에는 시스-트랜스 구조가 있다. 탄소에 각기 다른 네 개의 치환기가 결합되어 있을 때 그 탄소를 비대칭 탄소라고 하며, 비대칭탄소가 있어야 광학이성질체가 존재한다."


 불포화기? 가교결합? 시스-트랜스 구조? 치환기?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내가 정말 과학에 무지해서 모르는 것이긴 하지만, 이런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있어야 했고, 과학 원리에 대한 설명도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좀 더 자세해야 했다. 


『미술관에 간 화학자』의 목차. 목차에도 해당 챕터의 대표 이미지들을 넣었다. 

이미지 출처: https://blog.lgchem.com/2014/12/book-recommend/


『미술관에 간 화학자』는 즐겁게 읽으면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이고, 목차에 텍스트만 넣지 않고 해당 챕터의 대표 이미지들을 넣는 등 책의 만듦새에도 공을 들인 책이다. 하지만 미술과 과학의 동등한 1 대 1 만남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미술사에 과학을 조금 곁들인 정도로 느껴진다. 과학 원리에 대한 설명도 아주 친절하지는 않다. 그래서 미술과 과학의 통섭을 이루었다고 하기에는 조금 아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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