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란다 나무의 아이들
사하르 들리자니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 포함

  행복한 나라는 서로 닮아 있고, 불행한 나라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러나 서로 닮아 있다.『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변형시킨 이 문장들로 우리와 이란을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국가 독재로 인해 불행했다. 반면 이란은 1979년까지는 팔레비 왕조의 부패와 독재, 1979년 이후로는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의 독재로 인해 불행했다. 하지만 우리와 이란이 독재로 인해 겪은 상처는 닮아 있다.  1980년대 한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5.18 민주화 운동에서 희생당했고, 1980년대 이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정권에 저항하다 희생당했다.『자카란다 나무의 아이들』은 그렇게 우리와 닮은 이란의 1980년대를 그리고 있다.

 『자카란다 나무의 아이들』은 1980년대 이슬람 정권에 맞서 투쟁했던 세대들과 그들의 부모, 자녀 세대까지 3대에 걸친 가족사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정치범 부모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났던 작가 자신의 가족사가 반영되어 있다. 민주화를 위해 직접 투쟁했던 세대들은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에빈에 끌려가 몇 년 동안이나 수감되거나 고문당하고 처형당한다.  그들을 감시하는 간수들은 이슬람 교리에 따라 형제, 자매라고 불리지만, 그들에게서 형제애나 자매애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한 여자 간수는 좋아하는 남자 간수를 빨리 보고 싶어서, 이제 막 출산하고 심한 자궁 출혈로 입원해야 하는 여성 정치범을 바로 수용소로 데리고 돌아간다. 형기만 채우면 나와서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젊은 정치범들은, 2차 재판 일주일 뒤 새벽, 어떤 통보도 없어 처형되었다. 그렇게 1988년 7월에서 8월 사이 약 4,5천 명의 젊은 남녀가 처형되었다. 각 교도소마다 설치된 3인 위원회의 면담에서 '뉘우침이 없는'것으로 판단된 죄수들을 일제히 처형한 것이다. '뉘우침이 없다'는 것의 기준은 매우 자의적이고 주관적이었을 것이다. 


강경 진압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사진과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이란인들.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paullee338/20071198760


  그들의 부모나 형제 자매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대신 키워준다. 부모 없이도 아이들은 조부모나 이모의 손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몇 년만에 출소해서 돌아온 낯선 부모에게 적응하거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부모의 부재를 견뎌내며 아이들은 자란다. 부모들의 운명은 아이들에게도 대물림된다. 2009년 이슬람 보수주의자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란에는 다시 민주화 운동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젊은 세대로 성장한 아이들은 시위에 나섰다 30년 전과 다름없는 국가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고통 받는다. 시위를 해서 얻은 성과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살아간다. 

  

  이 소설은 여러 면에서 한강의 소설『소년이 온다』를 떠올리게 한다. 두 소설 모두 1980년대 자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과 그것이 남긴 여파를 소재로 하고 있다. 반성의 기미가 없다는 이유로 처형된 뒤 구덩이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이란 젊은이들의 시신들은, 어느 숲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졌던 광주 사람들의 시신 더미를 떠올리게 한다. 시위를 하다 경찰들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아이를 유산한 젊은 여성의 이야기는, 진압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목숨을 잃은 광주의 임산부 이야기와 닮아 있다.  『소년이 온다』에서 주인공 동호가 '왜 사람들은 애국가를 부를까.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죽은 게 아닌 것처럼'이라는 의문을 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의문을 품었다. 왜 이란 사람들은 시위를 하면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을까. 사람들이 신의 이름으로 죽지 않은 것처럼.  우리가 한낱 고깃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야, 가 동호의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면,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친 이유는 신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들에 대한 풍자였다.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자카란다 나무. 사진 출처: http://www.essentialdayspa.com/forum/viewthread.php?p=6533700


  두 소설 모두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꽃이 핀 쪽이다.『소년이 온다』에서 주인공 동호는 어린 시절 엄마에게 꽃이 핀 쪽으로 가자고 말하곤 했다. 이 소설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 몇 년 간 수감되었던 엄마를 둔 네다는 연인 레자를 자카린다 나무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한다. 자카란다 나무는 보라색 꽃이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피는 나무로, 이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라고 한다.  부모님이 끌려간 뒤 아이들이 자랐던 외가에도 자카란다 나무가 있었다. 어떤 풍파를 겪어도 자카란다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는 그들을 위로한다. 어떤 것도 더 밝은 쪽, 아름다운 쪽을 향해 가려는 마음은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두 소설 모두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인 면에서도 이 소설은『소년이 온다』와 닮아 있다.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준 역사적 격랑에 대해 여러 명의 시점으로 묘사되는 형식, 정갈한 문장, 과거형으로 쓸 문장을 현재형으로 써 독자가 등장인물의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중요한 단어와 문장을 강조하는 것(『자카란다의 아이들』은 굵은 글씨로,  『소년이 온다』는 이탤릭체로)까지『소년이 온다』를 연상시킨다. 단정하고 정갈한 문장들, 과거형 대신 현재형 문장을 쓰는 것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과도 닮아 있어, 이 소설은『소년이 온다』와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들을 섞은 느낌이다.(마침 할레드 호세이니가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소년이 온다』가 일상까지 잠식하는 트라우마를 보여주며 독자들까지 숨이 막히게 한다면, 이 소설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도 큰 비중으로 그려져 감정적 무게는 비교적 가볍다. 하지만 우리와 닮은 이란의 상처를 보면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싸우는 사람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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