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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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나도록 서평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에 담긴 고통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그것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좋은 서평을 썼는데 내가 서투른 글 하나를 더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냥 읽은 것으로 끝내는 것보다 감상을 조금이라도 적어야 남는 것이 있을 테니, 두서없이 몇 자라도 적어보려고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5.18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 제목만 들어왔던 『소년이 온다』가 5.18에 대한 소설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택시운전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문앞까지 갔다면,  『소년이 온다』를 통해서는 그 병원 안으로 들어가 희생자들의 시신 앞에 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신들 앞에서 눈을 돌릴 수 없다. 더 이상 시신을 놓을 자리도 없는 병원, 희생자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쌓여 썩어가는 숲 속, 말하기도 끔찍한 고문들이 이루어졌던 취조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 희생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또는 살아 있어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증언될 수 없었던 일들을 책을 통해서나마 목격했다.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읽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고 역겨울 정도로 잔혹한데, 그 일들을 이야기하는 문장은 단정하고 정갈하다. 검열 때문에 배우들이 소리 내어 대사를 말하지 못하고 입만 뻥긋거려야 했지만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소설 속 연극. 그 연극처럼 이 소설은 고요하지만 큰 울림을 남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여기 직선으로 쓰러져 죽어 있는 아이들에 대해 선생에게 말해야 합니까? 
무슨 권리로 그걸 나에게 요구합니까?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 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소설 속 증언을 수집하는 연구자에게 던져진 이 질문의 무게는 읽는 나까지 압도한다. 그저 종이 위의 글씨로 그때의 광주를 알게 되는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대답할 자격은 있을까. 하지만 적어도 그때의 광주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소년의 형은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 주세요, 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들을 모독하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폭력배들이 사람들을 선동하는 바람에 광주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믿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은 것은 알고 있고 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폭력배들까지 민주화 유공자로서 특혜를 받고 있는 것이 싫다고 하신다. 이제 30대밖에 되지 않은 선배는 페이스북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이 북한의 사주로 일어난 일이라는 글을 공유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직도 멀쩡히 살아서 자신이 저지른 짓을 그린 영화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평범한 사람의 무지부터 가해자의 뻔뻔함까지 다양한 모독이 숨을 막히게 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면 이러한 모독들이 사라질 날도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

  학살이 오고, 고문이 오고, 강제진압이 오지만 소년도 온다. 응달진 길을 싫어해 늘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가자고 했던 소년이 온다. 소설 속 문장처럼 그 소년이 이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우리를 이끌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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