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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1. 보온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ㅣ 오리진 시리즈 1
윤태호 지음, 이정모 교양 글, 김진화 교양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미생』의 윤태호 작가가 4년 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이번에는 교양 만화다. 그것도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모든 것의 기원(오리진)’을 100권의 만화로 그려내겠다는 거대한 시리즈다. 한 권에 한 주제씩을 다룰 예정이라는데, 첫 번째 권의 주제는 ‘보온’이다. 왜 수많은 주제 중에서 ‘보온’을 첫 번째 주제로 삼았을까?
윤태호 작가와 함께 첫 번째 권을 맡은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은 보온이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은 열이 있는 곳에서 기원했고, 일정한 온도 범위 안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다른 누군가가 보살피고 온도를 유지해 주었기 때문에, 인간을 비롯한 생명들이 지금까지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윤태호 작가와 이정모 관장에게 보온은 다른 누군가를 보살피는 마음, 즉 인간다움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518/pimg_7978711981910145.png)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미래에서 보내진 로봇 '봉투'
작가는 1권에서 ‘보온’을 통해 ‘인간다움’을 이야기하려 한다. 먼 미래에 과학기술의 발달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되면서 사람들은 오히려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삶의 의미를 다시 찾기 위해 미래에서 21세기로 파견된 로봇 ‘봉투’는, 시공간의 경계를 넘을 때의 충격으로 연민이라는 인간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봉투가 처음 보여준 인간적인 행동은 추위에 떠는 길고양이들과 과학자들을 따뜻하게 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에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이 버틸 수 있는 온도를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온도로 맞춘다.(“같은 따스함이면 너와 같아질 수 있을까.”(p. 198.)) 이렇게 인간 못지않게 인간적인 봉투는 사랑스럽고 따뜻한 캐릭터이다. 캐릭터 디자인 또한 독자들의 마음을 끌 만큼 귀엽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메시지와 봉투 캐릭터의 매력 외에, 다른 교양 만화와는 차별되는 장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윤태호 작가는 이 책에서 지식과 정보는 수단일 뿐이라고 했지만 1권에서의 지식의 깊이는 너무 얕다. 봉투와 과학자들, 이정모 관장이 전달하는 지식은 초등학생 대상 교양서적 수준의 지식이다. 또한 윤태호 작가의 만화와 이정모 관장의 설명은 아예 분리되어 있어 만화 부분과 설명 부분은 서로 다른 책처럼 느껴진다. 이정모 관장의 설명이 만화 중간 중간에 들어가서 만화와 설명이 더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리고 보온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도 다른 인간들뿐 아니라 ‘지구의 온도를 지켜서 지구 위의 모든 생명과 함께 살아가자’는 것인데, 수많은 환경 관련 서적들이 이야기하는 메시지와 다르지 않다. 한 권이라는 분량의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좀 더 신선하거나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이야기의 신선도나 재미 측면도 아직은 뛰어나지 않다. 주인공이 자신의 후손이 보낸 로봇과 만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는 설정은 일본 만화 <도라에몽>을 연상시키고, 일종의 작동 오류로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 로봇이라는 설정도 <A.I>, <바이센테니얼 맨> 등의 영화에서 쓰여 익숙한 설정이다. 그냥 지식, 정보만 나열하기보다 하나의 서사를 중심으로 말하고 하는 바를 풀어나가는 것은 좋은 전략이지만, 봉투와 인간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아직은 그렇게 흥미롭지 않다. 봉투 외의 다른 인간 캐릭터들의 매력이나 캐릭터들의 관계가 빚어내는 케미스트리와 드라마도 아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시리즈의 시작이라기에 『오리진』 1권은 조금 아쉬운 시작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뚜렷이 정했으니,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더욱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 시작이니 모든 것의 기원에 대한 더 깊이 있고 신선한 성찰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